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신이한 이야기 ⑥ 민화 속 수파水波 표현

도8 <화조도> 부분, 19세기, 지본채색, 115×31㎝,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산수화에서 물 그림은 그 비중이나 역할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물 그림을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의 미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지금까지 물 그림에 대한 연구는 산수화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역할에 비해 다소 미약하게 다루어진 측면이 없지 않다. 민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민화 속 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저 동아시아 그림에서 물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민화 속 수파水波 표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산 높고 물 맑은’ 우리의 산야에서 느낄 수 있는 맑은 햇빛과 깨끗한 공기가 감도는 상쾌한 자연, 특히 그 아침의 정취는 역사의 시작부터 한국인의 생명에 스며들어 자연스레 민족의 미적 정서의 바탕으로 자리하였다. 우리는 이미 예술의 가장 높은 차원의 가치인 ‘맑은 분위기와 고요한 투명성’이 체질화된 민족이다. 자연조건에 의해 형성된 미적 감수성은 역사가 전개되는 동안에도 그 조건이 늘 같아서 이에 반응하는 전통적 성향이 항상恒常하는 것이 가능하다. 같은 성격의 자연환경 아래 사람들의 반응하는 성향이 늘 유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추구해온 미적 가치이자 문예의 최고 가치인 ‘맑음’과 ‘투명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그림은 바로 산수화이다. ‘산수화山水畵’의 ‘산山’ 자와 ‘수水’ 자에서도 알 수 있듯 물은 산과 같은 위상을 지닌 산수화의 주요 구성 요소로써 의미가 크다. 산수화에서 물의 역할은 나무의 수액이나 인체의 혈액이 하는 역할과 같다. 산수화에서 물 그림의 역할과 그 중요성은 《개자원화원芥子園畵傳》의 다음과 같은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바위는 산의 구조를 형성하고 폭포는 바위의 구조를 형성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물은 그 본성이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물이 어떻게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나는 “물이 어떻게 산을 치고 바위를 뚫는지 보라”고 말하노라. 물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 무엇도 이보다 강할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조공이 말하기를 “물은 구조적이다”라고 하였다. 더욱이, 천지간의 혈이요 골수인 강과 바다에서 떨어지고 흐르고 품고 형성하고 튀기고 하는 것이 바로 물이 아닌가. 혈은 태아를 키우고
골수는 뼈를 채운다. 골수가 없는 뼈는 죽은 뼈이며, 그러한 뼈는 마른 흙과 같아 더 이상 뼈라 할 수 없다. 물이 산을 이룰 때, 비로소 산은 살아 있는 뼈가 된다. 그리하여 선인들은 폭포 그림에 주의를 기울였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림에 물을 배치하기를 닷새 동안 하라.”

산수화에서 물 그림은 그 비중이나 역할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물 그림을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의 미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지금까지 물 그림에 대한 연구는 산수화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역할에 비해 다소 미약하게 다루어진 측면이 없지 않다. 민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민화 속 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저 동아시아 그림에서 물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민화 속 수파水波 표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도1 전 이정, <한강조주도漢江釣舟圖>, 17세기 초, 산수화첩 中 2葉, 지본수묵, 19.4×25.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아시아 그림에서 물의 의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아시아 미술 가운데 물의 의미가 가장 명확하게 잘 드러나는 장르는 산수화이다. ‘산수화山水畵’의 ‘산山’ 자와 ‘수水’ 자에서도 알 수 있듯 물은 산과 같은 위상을 지닌 산수화의 주요 구성 요소로써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그림에서 물의 의미를 산수화의 물의 의미 속에서 파악해보려 한다.
산수는 근본적으로 ‘와유臥遊’와 연결되는 것이다. 와유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종병(宗炳, 375~443)에 이르러 와유라는 용어로 한층 발전된 내용을 갖추어 제시된 것이다. 와유사상은 창신暢神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그 주된 이론적 근거는 종병의 《명불론明佛論》에 나타나듯 불교적 가치에 두고 있다.
종병(宗炳, 375~443)은 산수화를 의미하는 두 단어인 ‘산山’과 ‘수水’가 ‘도道’의 가장 고결한 현현이며, 도는 조정과 재생의 법칙이므로 만물에 내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조화를 이루는 궁극의 진리라고 하였다. 종병은 자연의 생동하는 기운을 회화적 체계로 전환함으로써 감상자가 상상의 여행을 떠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세속에 물든 마음을 고결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산과 계곡에 깃든 정신과 교감하여 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곽희(郭熙, 약1020~약1090)는 와유를 감상적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여기에서는 산수화가 자연 본체의 ‘구현’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즉 산수화는 자연 본체가 현상화되고 있는 세계이며 개인의 정신이 ‘와유’할 수 있는 공간이고 또한 그 정신이 초월적 세계로 지향하는 방편이 된다.
산수화는 문인들이 현실을 벗어나지 않고 정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문인들은 그림이 도道 그 자체도 아니며 진리는 더더욱 아니지만 그 도와 진리에 상반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내야 했으며, 그 노력 끝에 산수화는 도와 진리에 상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도를 향해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산수화는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것이 지닌 높은 가치가 증명되어 왔다. 회화사에서 대종을 이루는 산수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물’의 의미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물은 생명을 제공하고 땅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솟아올라 저절로 움직이며, 고요한 상태가 될 때 완전한 수평이 되는 동시에 스스로 침전 작용을 하여 맑아진다. 또 그릇의 모양에 따라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가장 조그마한 틈도 뚫고 들어가며, 강압에 양보하지만 가장 단단한 돌도 닳게 하고 얼음이 되어 단단해지고 증기가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물은 우주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개념을 위한 모델이 되어 왔다.
물은 생명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갖추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면모를 지닌다. 물은 유연함이 강함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우주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꿔온 것은 강력한 무력이 아니라 유연함과 부드러움이었다. 물의 맑고 투명한 성질은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체질화된 미적 감수성인 ‘맑음, 투명성’과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은 한국성을 이해하고 문예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도2 <어락도>, 20세기, 지본채색, 53×29㎝,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4 <화조도> 부분, 20세기, 마본채색, 각 94×32㎝,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물은 형체가 있으되 머물러 있지 않으며, 그 모습이 보이되 소유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허虛하며, 그러하기에 물을 통해 공空을 체득할 수 있으며, 물을 보고 물을 이해함으로써 더 높은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동진東晉의 승려 혜원(慧遠, 334~416)은 《명보응론明報應論》에서 형形이란 사대四大의 실체 즉 흙, 물, 불, 바람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 세속에서의 어떠한 상像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물’인 것이다. 또한 그는 “바위와 숲은 희미하고 바람과 물은 허虛하다. 이를 가슴에 가득 담고 나가면 오히려 확 트여 텅 비게 되어 공空이 된다. 때문에 옛날에 허한 자연을 따라서 도에 들어간 경우도 많았다. 하물며 성인이 공하게 되어 허의 가르침으로써 사람에게 베풀어줄 때 그 가르침을 듣는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마음을 맑게 하여 식識의 다함을 즐기지 않겠는가”라고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물은 형체를 만드는 주된 요소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는 허하여 공한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물 표현은 앞으로 물결로 표현되기 마련이지만, 여백으로 물을 표현한 경우도 적지 않다. 《명보응론》에서 물이 허하고 공하다는 것과 이정(李楨, 1578~1607)의 <한강조주도漢江釣舟圖>에서의 여백으로 표현된 물은 이론과 회화적 장치가 연결되는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도1). 여백으로 물을 표현하는 것은 민화 <어락도>와 <고사인물도> 등에서도 보인다(도2), (도3).
여백으로 물을 표현한 경우는 소식(蘇軾, 1036~1101)이 훌륭한 그림이란 형사보다는 내면의 이치 즉 상리常理를 그린 그림, 또한 그린 이의 뜻을 표현하는 사의寫意의 그림이라고 한 것과도 관련된다.

서자徐子가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자주 물을 칭찬하시어 ‘물이여, 물이여’ 하셨으니 어찌하여 물을 취하셨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근원이 좋은 물이 용솟음쳐 흘러 밤낮을 그치지 아니하여 구덩이가 가득 찬 뒤에 나아가서 사해四海에 이르나니, 행실에 근본이 있는 자가 이와 같다. 이 때문에 취하신 것이다. 만일 근본이 없다면 7, 8월 사이에 빗물이 모여서 도랑이 모두 가득하나 그 마름은 서서도 기다릴 수 있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침을 군자는 부끄러워하는 것이다[徐子曰 仲尼亟稱於水曰 水哉水哉 何取於水也 孟子曰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苟爲無本 七八月之間雨集 溝澮皆盈 其涸也 可立而待也 故聲聞過情 君子恥之].”

소나기로 떨어져 햇빛에 쉽게 말라버리는 물과 원천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물을 대비해 원천이 없는 물을 과장된 명성을 누릴 때 내재하는 부끄러움을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 물과 같이 깨끗하고 맑게 살아가면서 좋은 근본을 쌓아 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명예와 부를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햇빛에 금세 말라버리는 소나기 같은 것일 뿐이다.


도3 <고사인물도> 부분, 20세기, 지본수묵, 66.5×31.5㎝,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공자孔子께서 시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 도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샘은 끊임없이 다시 채워진다. 땅으로부터 솟아 나와 계속 흘러나가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물의 특성을 찬미해 마지 않았는데, 이는 위에서 살펴본 맹자와 서자의 대화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는 동적動的이며 인자는 정적靜的이며, 지자는 낙천적이고 인자는 장수한다[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물의 성질은 우주의 운행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지자가 그것을 좇는 것이다. 끊임없이 더 높은 가치를 향해 진전해야 하는 지자에게 끊임없이 더 큰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은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할 대상이 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孔子께서 노魯나라 동산에 올라가시어 노나라를 작게 여기셨고, 태산太山에 올라가시어 천하天下를 작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구경한 자에게는 큰물이 되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유학한 자에게는 훌륭한 말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을 구경하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이 밝음이 있으니, 빛을 용납하는 곳에는 반드시 비추는 것이다. 흐르는 물의 물건 됨이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으니, 군자가 도를 뜻함에도 문장을 이루지 않으면 통달하지 않는다[孟子曰 孔子 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 觀水有術 必觀其瀾 日月 有明 容光 必照焉 流水之爲物也 不盈科 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 不達].”

물이 가득 차야 흘러넘쳐 나와 바다로 흘러갈 수 있듯이, 큰 뜻을 보고 배우고 익혀서 문장을 이루어 도를 통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물의 성질을 통해 우주 만물에 대한 이해는 물론 배워 익히는 자세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부와 굴원屈原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을 보면,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漁父莞爾而笑 鼓而去 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어부가漁父歌’, 또는 ‘창랑가滄浪歌’라 불렀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탁족’과 ‘탁영濯纓’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새겼다. 이 의미에 대해서 맹자는

유자孺子(동자童子)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소중한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더러운 발을 씻겠다’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小子들아, 저 노래를 들어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르면 발을 씻는 것이니, 이는 물이 자취自取하는 것이다’하였다[有孺子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孔子曰 小子聽之 淸斯濁纓 濯斯濯足矣 自取之也].

라고 해석하였다.
군자가 물을 탐구하는 이유는 그가 열망하는 모든 원리들이 물의 여러 종류의 형태 속에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의 원리와 인간 행위의 원리를 동일시하는 것은 같은 원리가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합리적으로 지배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공자는 물을 탐구했고, 순자도 물의 여러 가지 형태와 사람의 도덕적 특질 사이의 관게를 체계화하고 시도했던 것이다. 모든 곳으로 퍼져 나아가고, 의도적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물의 이미지는 《노자老子》의 몇몇 구절에서 명백히 보인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이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만인이 싫어하는 곳에 거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은 도와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여기에서 도와 동등한 개념이며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물은 《장자莊子》뿐만 아니라 《묵자墨子》나 《한비자韓非子》 등 모든 고대 중국 철학 저서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5 <화조도> 부분, 19세기, 지본채색, 58.5×36㎝,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6 <어락도> 부분, 20세기, 견본담채,
118×36㎝,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고자告子가 말하였다. “성性은 여울물과 같다. 이것을 동방東方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방西方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니, 인성人性이 선善과 불선不善에 구분이 없음은 마치 물이 동서東西에 분별이 없는 것과 같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은 진실로 동서에 분별이 없거니와 상하上下에도 분별이 없단 말인가? 인성이 선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으니, 불선한 사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없다. 지금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하면 이마를 지나게 할 수 있으며, 격激하여 흘러가게 하면 산에 있게 할 수 있거니와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本性이겠는가? 그 세勢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사람이 불선하게 함은 그 성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告子曰 性猶湍水也 決諸東方則東流 決諸西方 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孟子曰 水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也 人之可 使爲不善 其性 亦猶是也].”

원천에서 솟아 나온 물은 함부로 아무 방향으로나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로를 따라 흐른다. 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물의 존재는 항상 출렁거림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보는 물은 고요하고 잔잔한 물결이든 물살이 센 파도든 물은 항상 움직임의 순간이다. 정적의 상태로 보이는 순간이라도 옅은 바람과 물과 맞닿은 언덕이나 바위, 모래 등에 의해서 작은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끊임없이 흘러 더 큰물로 들어가는 물이 움직임이 없고 정체되어 있다면 화학적으로는 물일지 모르지만, 물의 본질을 상기한다면 이미 물이 아닌 것과 다름없다.
물은 일상적인 것으로서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물은 우주 만물의 생명 유지와 직결되어 있어 생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운생동이 핵심인 회화에서 물이 지닌 생명성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회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동아시아 미술 속 물 그림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민화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민화 연구에도 물 그림 연구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민화 속 물 이야기

그렇다면 민화에서 물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화에서도 물을 여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산수나 인물 등을 그릴 때 물을 여백으로 표현하는 예가 많다(도4).
민화에서 물을 여백이 아닌 선묘나 담채 및 채색으로 표현하는 예는 주로 화조화나 어해도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연못에서 노니는 물새를 표현한다거나 민화 화조화 중 많이 그려진 꽃의 소재 중 물 속에서 자라나는 연꽃 그림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도5). 또한 물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 그림에서도 물고기와 물이 닿는 부분을 선묘나 포말을 포함한 수파묘로 표현하는 예가 많다(도6), (도7).
한편 민화 어해도에서만 보이는 물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물고기 주변을 담채나 채색으로 표현하는 경우이다(도8). 궁중장식화에서 보이는 정교한 선묘와 맑은 담채로 표현한 예도 보이는데(도9), 이는 작가가 화원과 관련되었거나 나름대로 그림 공부를 전문적으로 했던 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러한 물 표현을 좀 더 간략하게 표현한 예도 있어 흥미롭다(도10).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도7 <약리도> 부분, 19세기, 지본채색, 115×31㎝,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9 <장생도> 부분, 20세기, 견본채색, 112×36㎝,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10 <장생도> 부분, 20세기, 지본채색, 105×59㎝,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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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섭, <조선 전기 화론 이해의 몇 가지 문제>, 《민족문화연구》 32(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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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알란, 오만종 역,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예문서원, 1999)
慧遠, 《明報應論》
成百曉 역, 《(懸吐完譯)孟子集註》(傳統文化硏究會, 2008)
成百曉 역, 《(懸吐完譯)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1990)
屈原(楚) 等 著, 劉向(漢) 編, 朱熹(宋) 集註, 楊上林 校刊, <漁父篇>, 《楚辭》, 英祖年間(1725-1776), 고려대학교 한적실 소장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저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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