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신이한 이야기 ③ 극락정토의 새, 가릉빈가迦陵頻伽

도3-1 도3 부분



가릉빈가는 일반 회화에서는 그려지지 않던 종교적 측면이 매우 강한 도상이다. 이러한 도상이 20세기 잡화병에 나타났다. 이번 호에서는 민화 잡화병에 그려진 가릉빈가 도상이 갖는 의미와 그 표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기에 서울화단을 중심으로 지방화단에 이르기까지 화훼花卉, 괴석怪石, 초충草蟲, 화조花鳥, 어해魚蟹, 영모翎毛, 산수山水, 기명절지器皿折枝 등의 여러 화목을 각기 다른 화폭에 담아 병풍으로 꾸민 잡화병雜畵屛이 크게 유행한다(도1), (도2). 이 시기 잡화병의 출현과 유행에는 신흥자본의 발전과 서화유통공간 성행의 역할이 컸다.
민화가 가지는 해학성과 잡화병이 갖는 다채로운 장식성이 함께 작용되어 그 기복성과 장식성이 더욱 개성적으로 강화되는데, 민화 잡화병의 개성 강한 자유로움은 <화조도 10폭 병풍>에서 단연 돋보인다(도3). 화조, 화훼, 어해, 인물 등 여러 화목을 각기 다른 화폭에 담아 병풍으로 꾸민 이 작품은 민화의 해학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인물의 표현이나 각종 도상이 개성 있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10폭의 의인화된 새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도3-1). 사람의 머리와 새의 몸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도상은 가릉빈가迦陵頻伽의 모습과 닮았다. 가릉빈가상은 주로 부도, 불단, 와당, 단청의 장식 문양이나 열반이나 극락세계가 묘사된 불화에서 보인다. 가릉빈가는 일반 회화에서는 그려지지 않던 종교적 측면이 매우 강한 도상이다. 이러한 도상이 20세기 잡화병에 나타난 것이다. 잡화병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크게 성행하여 그 수요가 많던 이 시기 유행 화목 중 하나이다. 잡화병 수요자의 신분과 취향에 따라 그 화풍이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근대기 유행 화목 중 가장 다양한 수요층의 사랑을 받았던 화목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잡화병에 그려진 가릉빈가 도상은 단순히 이 작품에만 나타난 우연한 도상이라기보다는, 당시 다른 회화 작품에도 그려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잡화병이 장식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도상의 차용만이 아니라 그 의미의 수용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1 장승업, <산수영모10첩병풍山水翎毛十帖屛風>, 견본담채, 각 148.5×35㎝, 서울대박물관 소장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의미 – 다름 아닌 부처의 또 다른 화현化現

가릉빈가迦陵頻伽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인 칼라빈카(kalavinka)를 음역한 것으로 한자음으로는 가비가迦毘伽, 가미라迦尾羅, 가릉迦陵, 가릉가迦陵伽, 가릉빈迦陵頻, 가릉가의迦陵伽衣, 가릉비가迦陵毘伽, 갈수가라鞨隨伽羅 등으로 부르며 줄여서 빈가頻伽라고도 한다. 가릉빈가의 모습은 봉형鳳形에서 발전한 형상으로 소리가 아름답다 하여 미음조美音鳥, 호음조好音鳥, 극락조極樂鳥, 묘음조妙音鳥라 불리기도 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제381에서는 “발언완약發言婉約에 있어서 빈가頻迦 음音과 같다”라 하였고, 《아미타경阿彌陀經(Sukhāvatīvyūha)》에는 “극락정토極樂淨土에 가릉빈가가 살고 있다”고 되어있다. <정토만다라淨土曼茶羅(mandala)>에 인두조신人頭鳥身의 도상이 묘사된 예가 있다.
가릉빈가가 부처님께 꽃과 열매를 공양하는 모습은 극락을 상징하여 제작한 불단이나 불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기원정사의 가릉빈가 이야기는 태평성대의 상징인 요순시대堯舜時代에 봉황이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 앞뜰에 나타나 춤을 추었다는 중국 고대 설화 내용과 유사하다.
가릉빈가에 대하여 《능엄경楞嚴經》에서는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미친다”고 하였으며, 《능엄경》 <정법엄경正法念經>에서는 “그 소리가 극히 신묘하여 하늘과 사람과 긴나라緊那羅(음악신音樂神)도 흉내 낼 수 없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대지도론大智度論》 권28에 “가릉빈가는 알에서 깨어나기 전에도 울음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여타 새들의 것보다 미묘하고 뛰어나며, 보살마하살의 소리와 같다”고 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범음이란 대범천왕이 내는 음성으로 그 음이 정직하고 화아和雅하며 청철淸徹하고 심만深滿하며, 그 음심만 편주遍周하여 멀리 들리는 음성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소리는 부처만이 낼 수 있는 소리이다. 따라서 범음을 내는 가릉빈가는 다름 아닌 부처의 또 다른 화현化現이라 할 수 있다.


도2 서울 성 베네딕트 대 수도원 내 잡화병 모습 (사진출처: 《민족의 사진첩1:민족의 심장 정도 600년 서울의 풍물》)



도3 <화조도10첩병풍花鳥圖十幅屛風>, 지본채색, 한국-광복 이후, 각 75×27㎝,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가릉빈가迦陵頻伽 도상 표현

가릉빈가가 갖추고 있는 인수조신人首鳥身 형태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인도 기원설, 그리스 기원설, 그리고 한대漢代 화성석에 보이는데 우인羽人 기원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릉빈가의 형태에 관한 한 다원발생적인 측면보다는 ‘동서문화의 교류와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 길을 따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파급된 그리스 문명은 현지 문명과 융합하여 제3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동서문화의 교류와 융합’이라는 문화의 흐름 속에서 가릉빈가도 고대 인도신화 전설의 기초 위에, 그리스로마 신화 속 천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제3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가릉빈가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오늘날 사찰 곳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대개 가릉빈가의 다리, 몸체, 날개는 새의 형상이고, 얼굴과 팔은 사람의 형상이다. 몸체는 깃털로 덮여 있으며, 머리에 새의 깃털이 달린 화관을 쓰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자세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가릉빈가 도상은 덕흥리德興里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古墳壁畫, 안악1호분安岳一號墳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으로 대개 날개를 활짝 펼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좌) 도4 <효제문자도>, 20세기, 지본채색, 90×34㎝,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우) 도5 <효제문자도>, 20세기, 지본채색, 59×29.5㎝,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다른 새와 마주 보는 모습으로 묘사된 가릉빈가는 20세기 잡화병 <화조도십폭>에서도 나타나며 이러한 가릉빈가 도상은 잡화병뿐만 아니라 문자도에서도 보이는데, 주로 가릉빈가와 파랑새(청조靑鳥)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가릉빈가가 내는 아름다운 소리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불교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불화불교나 불교를 장엄하기 위한 도상으로서 등장했고, 불교미술이 아닌 일반 미술 장르에는 겨의 볼 수 없었던 가릉빈가 도상이 19세기에 화단의 구조가 크게 변해가면서 다작되고 유행한 민화 잡화병, 또는 문자도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특기할만한 일이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도6 하피(Harpy), c. 500 BC, 소아시아 Xanthus
아크로폴리스 무덤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또한 흥미로운 것은 문자도에서 가릉빈가 도상이 그려지는 글자는 대개 믿을 신信자라는 점이다(도4), (도5). 고대 동양에서 ‘파랑새[靑鳥]’는 영조靈鳥로서 길조吉兆를 상징해 왔고, 서양에서도 행복을 부르는 새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한무고사漢武故事》를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7월 7일, 한무제가 승화전承華殿에서 제를 올렸다. 정오가 되자 파랑새 한 마리가 서방에서 날아왔다. 한무제가 동방삭에게 묻자, 동방삭이 말했다. “이것은 서왕모가 오려는 조짐입니다.” 그러니 조금 있자 서왕모가 도착했다.
이렇듯 서왕모가 나타날 징조로 파랑새가 출현했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파랑새는 ‘온다는 언약’과 ‘믿음’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때문에 파랑새는 서왕모의 사자使者로 표현되어 얼굴은 사람, 몸은 새의 형상인 신조神鳥로 그려지게 된 것이다. 조선후기 효제문자도 가운데 믿을 신信 자에는 대부분 청조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두 마리의 새를 그리고 있다. 요지춘궁瑤池春宮으로부터 서왕모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청조가 인두조신人頭鳥身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릉빈가迦陵頻伽는 히말라야 설국雪國에 사는 인두조신의 일종이다.
일본에서는 불교미술뿐만 아니라 전통 축제 의상이나 공예품에도 가릉빈가 도상을 묘사한다. 시미즈 난잔(淸水南山, 본명은 龜藏, 1873-1948)은 <새의 모습을 한 천녀 문양[迦陵頻伽文鉢]>에서 가릉빈가라는 소재와 어자문魚子文이란 기법을 선택하여 아시아의 전통을 부활시켰다.

서양의 인두조신 도상

가릉빈가와 상징성은 다르지만, 유럽의 그리스 신화에 상반신이 사람이고 하반신은 새인 하피(Harpy,Harpyia)라는 존재가 있다(도6). 본질적 특성과 의미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인간의 머리와 새의 몸통이라는 특징적인 도상이 다소 비슷하다는 점은 가릉빈가 도상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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