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신이한 이야기 ① 민화에서의 유불선 그림

도1 이인문, <절친한 벗과 아끼는 고동>, 조선, 127.3×56.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민화를 읽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도상에 대한 깊은 이해다. 이에 2018년부터 민화 속 도상별 특징과 상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간 민화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화제 중 하나인 화조화부터 곤충 도상을 쭉 살펴보았다면 2022년, 신년호부터는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이름하여 ‘민화 속 신이新異한 이야기’로 그 첫 번째는 바로 ‘민화에서의 유불선 그림’이다.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도1-1 도1의 부분

자유로운 민화의 세계

민화에는 새롭고 신기하고 기이한 도상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상상의 동물이나 새, 꽃 혹은 인물, 물건일 수도 있는데 생물의 종이나 물건의 종류에 얽매이기보다는 흥미롭고 신이한 민화 속 도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를 통해 가장 민화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이한 도상들의 뜻을 읽어냄으로써 자유로움을 함축하고 있는 민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조금 더 넓은 범위의 도상을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그동안 다루어지지 못했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도상들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민화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기여가 되기를 바라며 민화 속 신이新異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교·불교·도교, 삼교三敎 통합관은 동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적 감성을 지닌 화가들의 작품 활동이 본격화된 남북조시대 이래로 유불도儒佛道 삼교三敎에 대한 깊은 성찰은 한·중·일 미술 문화 이해의 기반이 되어 왔다. 이는 민화 제작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미술의 보편적 흐름 속에서 민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민화에 그려진 도상들의 상징성과 그 의미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민화 연구의 폭이 넓어지고 더욱 깊어져 가고 있는 만큼, 이제는 동아시아 문예의 흐름이 반영된 보편적 주제가 그려진 민화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민화 속 신이한 이야기’의 첫 회인 본호에서는 ‘민화에서의 유불선 그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동아시아 문예를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유불선 삼교 통합관이 민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지고 이해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유불선 삼교 통합관은 옛 그림에서 어떤 식으로 도상화, 시각화되었을까? 사실 공자와 장자와 석가가 한자리에 모여있기란 불가능한 일이기에 일반회화에서는 유학자와 도사, 승려가 함께 있는 장면으로 묘사된 예가 많다(도1). 이러한 그림을 삼성도三星圖(도2), (도3), 혹은 복록수福祿壽 삼성도三星圖라 한다. 그러나 민화는 다르다. 민화에서는 석가와 공자와 장자가 함께 만나는 것은 물론 공자와 석가와 예수가 만나기도 한다(도4). 한자리에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을 함께 그리고 심지어 동서양의 성인을 한자리에 함께 그려 넣는 자유분방함은 민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유불선 삼교 통합관을 그림으로 묘사하거나 시각화하기에 민화만큼 잘 맞는 것도 없을 것이다.

도2 《성명규지性命圭旨》 중 <삼성도> (도판 출처: 이윤희, 《性命圭旨 : 儒佛仙 三敎一致 丹學指針》)

유불선도儒佛仙圖

인류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꿈꾸어 왔다. 장생불사를 향한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성을 추구한 유교보다는 불교나 도교 등의 신앙체계가 원용될 수밖에 없었다.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과 관념체계는 도교의 신선 신앙과 관련이 깊다.
일반회화와 민화의 유불선도 도상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 도안으로 《성명규지》의 55점의 삽화는 주목할 만하다. 《성명규지》는 심신 수련의 비법을 체계적으로 논술한 도교서道敎書이다. 심신 수련의 1차적 목적은 장생불사에 있다. 《성명규지》의 특색은 도교의 수련 방법을 설명하면서 불교 고승의 어록이나 유교 성현의 명언집에서 관련 부분을 인용하여 도교적 방법의 정당함을 입증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성격을 말해주듯 처음 나오는 작품은 <삼성도三聖圖>이다(도2). 이는 민화에서 유교와 불교와 도교, 유교와 불교, 불교와 도교, 도교와 유교적 도상을 함께 그린 예를 상기시킨다. 동시에 함께 등장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상징적으로 함께 나타나는 이 삽화는 민화뿐만 아니라 일반회화 장르에서도 제작된 유불선도儒佛仙圖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회화 장르에서 유교적, 불교적, 도교적 인물이 함께 그려진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민화에서도 유교와 불교, 불교와 도교, 도교와 유교, 유교와 불교와 도교적 도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발견된다. 이는 삼교 통합관을 시각화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불교·도교적 인물이 함께 그려진 그림은 대개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이다. 삼교 통합관을 시각화한 조선후기 그림으로 이인문의 <유불선도儒佛仙圖>와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전김홍도필傳金弘道筆 삼성도三星圖>가 그 예이다(도1), (도2).
<삼성도>를 보면 각기 유교나 불교, 혹은 도교를 상징하는 세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태극도 두루마리를 들고 보고 있는 인물이 도교의 도사이고, 중앙에 나발과 백호가 있으며 합장 혹은 수인을 하고있는 인물이 부처, 좌측에 와룡관 형태의 머리 모양을 한 인물이 유학자이다(도2). 태극도 두루마리를 보는 모습은 유교·불교·도교적 인물이 한 화폭에 그려진 경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편인데 도교의 도사가 펼쳐 보이는 그림으로 그려진 예도 있지만 유불선의 인물들이 다함께 살펴보는 예도 있다.
민화에서는 일반회화 장르와는 달리 유불선에 대한 그림을 좀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성향이 강하다. 적나라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도교가 그 형성 과정에서부터 여러 종교와 사상의 특징을 포용하여 온 만큼 삼교 통합관이 견지되어 온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민화의 특성상 사상이나 그것을 담은 글의 내용보다는 그림의 영향에 더 민감할 수 있다. 따라서 도교적 민화이든 도교와 유교나 불교의 도상이 함께 나타나는 민화이든 《성명규지》 삽화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생불사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서이면서 이에 대한 삽화까지 갖춘 거의 유일한 예이기 때문에 민화에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좌) 도3 전김홍도필(傳金弘道筆), <전김홍도필傳金弘道筆 삼성도三星圖>, 조선, 지본담채, 130.3×5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도4 <만법통일萬法統一>, 지본채색, 74×46㎝,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5 <산신도山神圖>, 조선, 견본채색, 80×67㎝,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무신도와 유불선도

민화는 생활 주변 및 현실의 모든 물상을 제한 없이 소재로 하고 있으며 현실만이 아니라 상상의 내용, 전설과 설화 등의 다양한 소재들이 그려져왔다. 유가와 불가, 도가의 인물이 함께 등장하는 유불선도는 주로 무신도巫神圖에 등장한다. 현존하는 무신도의 종류는 130종류로 자연신을 그린 그림과 인신을 그린 그림으로 나눌 수 있다. 이외에도 벽사, 명부 계통의 신과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와 관련된 인물이 그려진 무신도도 있는데 불교 계통이 제일 많다. 무신도는 종교화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오랜 세월 민족 고유의 전통 속에서 발전해 오면서 민화의 특징도 상당 부분 내포하고 있다. 민화가 무신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 이에 무속화를 종교화로서만 보고 민화와 분리해서 보기보다는 민화의 범주 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신도山神圖>는 무속에서 섬기는 신상神象을 표현하여 굿당이나 신당에 걸어 놓은 그림이다(도5). 산신山神이 복건을 쓰고 시선은 측면을 향하며 호랑이 등 위에 앉아 있는데, 적색 상의를 반쯤 걸친 채 녹색 바지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다.
뒤쪽에는 쟁반에 복숭아를 들고 있는 보살과 소나무를 그렸다. 유불선 도상이 모두 등장하진 않지만 무속화에 불교적 도상과 도교적 도상이 함께 등장하는 예는 상당히 많다. 이는 불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며 경주 천왕사의 산신 탱화 등이 그 예이다. <천왕사 산신 탱화>는 불교적 도상과 도교적 도상을 함께 그렸다. 왼쪽 호랑이 위에 서 있는 도상은 누가 보아도 보살의 모습이다. 불교적 인물과 도교적 인물이 함께한 화폭에 그려져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러한 점은 무속화에서 자주 보이는 예이다.
유독 불교적 도상과 무속적 도상이 함께 그려진 예가 많은 것은 아마도 중국을 통해 불교가 유입되었을 때 한국에서의 토착화 과정에서 무속과 만났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불교와 유교, 무속 도상이 함께 등장하는 예로 <감로탱화甘露幀畵>를 들 수 있는데(도6), 이 같은 현상은 20세기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그림 상부 중앙에는 칠불七佛과 우측에는 북과 징, 바라를 치고 나비춤을 추는 승려들이 각각 배치되었다. 하부 중앙에 아귀의 모습이 크게 그려지고 좌측엔 현세의 여러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스승과 제자가 학문을 닦고 있는 서당의 모습을 그린 유교적 도상도 그려져 있다. 그림 하부에는 무당이 굿을 하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는 불교와 무속신앙과의 결합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성당에는 맹인을 신으로 삼는 작품이 있다. <맹인도사>가 그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와룡관을 쓴 맹인이 가슴 부근에 금거북이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 와룡관은 중심이 높으면서 세로골이 진 형태인데 대부분 5개의 골이 지게 되어있으며 사대부들만이 쓰던 관모로 학창의와 함께 착용했다. 제갈량의 별호가 와룡臥龍·복룡伏龍으로 그가 쓰고 다녔다는 데서 유래된 관모이다.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별도로 지은 사당祠堂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사당도祠堂圖라고도 한다. 집집마다 조상에 제사 지내는 사당을 별채로 갖출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당이 없는 후손들은 사당을 그림으로 그려 마치 사당이 앞에 있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 이 그림은 유교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가당도家堂圖, 족영族影, 또는 조종화祖宗畵라고 불렀으며 중국의 가당도는 우리의 사당에 해당하는 가당 안에 위패를 그려 넣었는데 위패 대신 조상 부부의 초상화를 그려 넣은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의 감모여재도는 사당만 그려진 것과 사당과 제단이 함께 그려진 것 두 형식이 있다.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수박, 석류, 복숭아, 모란 등 축수나 기복적 성격의 상징물들이 강조되고 증가되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유교와 불교, 기독교적 도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주목할 만하다(도4). 이와 같은 자유로운 구성은 민화가 갖는 특수성이라 할 수 있겠다.

도6 <감로탱화甘露幀畵>, 광복 이후, 견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참고자료]
김기주, <동양화-그림이란 무엇인가?>, 《미술사학보》
이규보, <노무편老巫篇>, 《동국이상국집》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김태곤, 《한국무신도》, 《한국의 무속》, 《한국문화의 원본사고》
윤열수, <한국의 민화-무신도를 중심으로>, 《제25기 박물관 문화강좌:종교를 통해 보는 한국문화》
정병모,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서울역사박물관, <생활 속에서 자리 잡은 제사 문화, 감모여재도>, 《반갑다 우리민화》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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