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곤충이야기 ⑨ 특유의 조직력을 지닌 곤충 개미

도1 전傳 신사임당申師任堂 필筆, <초충도草蟲圖> 중, 조선, 지본채색, 32.8×28.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 마리 한 마리 개미의 생김새는 인간과는 전혀 다르지만, 개미들로 구성된 조직의 모습은 인간조직과 유사하다.
개미의 매력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인간을 뺨칠 정도로 조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그들의 정신세계에 있다.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개미는 인간생활과 가장 밀접한 영역에서 존재하는 곤충이다. 신화에서 개미는 아주 약한 미물이지만 우리나라의 홍수신화에서는 은혜를 갚는 의리의 곤충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개미는 인간의 배은망덕함과 비교되는 보은의 교훈을 보여준다. 한편 15세기 문헌에는 ‘가야미’로 표기되어 있다. 가야미는 ‘가아미’로 소급되는데 가아미의 ‘-아미’는 접미사이다. ‘갈암’이 ‘가암→가아미→가야미→개미’로 변천한 것이다.
개미는 근면을 나타낸다. 중국에서는 ‘정의의 곤충’이라고 한다.
이는 개미를 나타내는 한자 ‘蟻(개미 의)’와 ‘義(옳을 의)’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어 질서 바름, 덕, 조국애, 복종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개미는 대지에서 자라는 곡물, 특히 밀의 성장과 땅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여신 데메테르의 부수물이다. 힌두교에서의 개미는 현세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홍수신화에서 개미는 은혜를 갚는 의리의 곤충으로 나타난다. 하찮은 미물이나 살려 준 은혜를 갚을 줄 알며 인류가 땅에 재탄생하는 근거를 마련한 조력자이다. 무속에서 개미는 앞일을 예시하는 신통력을 가졌다고 여긴다. 개미가 가진 집 구멍을 막거나 행렬을 이루어 이사를 가면 장마가 진다고 하였고 담을 쌓거나 진을 쳐도 비가 온다고 하였다. 실제로 개미는 습도를 싫어하며 대기 중 습도가 높아지고 토양의 수분이 증가되면 이동한다. 하여 개미는 민간에서 비나 장마를 예시하는 예보자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부지런하기가 개미와 같다”는 속담에서 말하듯 자기 몸보다 몇 배 더 큰 짐을 협동으로 옮기는 데서 힘을 상징하거나 집단을 뜻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곤충

개미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개미는 특유의 조직력을 살려 여왕개미를 모시는 기발한 정치 구조를 만들었다. 개미들의 군왕정치 구조는 고대 국가와도 비슷하다. 개미들은 다른 사회의 개미와 싸우기도 하고, 전쟁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여 효율적인 전략을 짜기도 한다. 여왕개미 간에 갈등이 생기면 개미들이 분열하기도 한다. 한 마리 한 마리 개미의 생김새는 인간과는 전혀 다르지만, 개미들로 구성된 조직의 모습은 인간조직과 유사하다. 개미의 매력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인간을 뺨칠 정도로 조직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그들의 정신세계에 있다.
그냥 일반 곤충처럼 음식을 찾는 개미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개미는 스스로 농장을 경영하기도 한다. 잎꾼 개미들의 농장 경영이 대표적인 예다. 이 때문에 대지나 농사 등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부수물로 개미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잎꾼 개미들은 버섯을 잎 위에 깔아 농사를 짓는다. 곤충이면서도 버섯 농사를 통해 나름의 경영을 한다. 굉장히 독특한 조직 경영과 식생활 문화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다른 곤충인 진딧물을 키워 사회를 유지하는 개미들도 있다.
경영과 창조적 협력의 공통적 상징이자 현명한 통찰을 의미하는 개미는 겨울에 대비해 밀이나 보리를 저장해놓는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실제로 개미가 열심히 나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곡물이 아닌 개미 군락의 유충이다. 서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개미와 흰개미는 번식과 관련된다. 개미집이 대지의 생식기로서 태초의 시간에 하늘과 결합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어 개미가 생식을 상징하게 되었다.
개미가 한 지도자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길을 양보하는 것을 유교의 왕이 정치에 비유하기도 했다.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유교 이념과도 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불교 설화에 구슬을 꿰어야 하는데 그 실이 통과하는 관이 굽어 꿸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아하는가’란 물음에 개미가 흥미로운 해답으로 등장한다. 반대쪽 구멍 입구에 꿀을 발라 놓고 다른 쪽에서 허리에 실을 맨 개미를 굽은 관으로 들여보내면 꿀의 단맛을 아는 개미가 반대쪽 입구로 찾아 나와 구슬을 꿸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문화 속 개미가 지닌 상징

개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개미는 정당한 행위나 애국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완벽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개미의 힘은 매우 보잘것없지만 끝내 큰일을 완성한다는 뜻에서 “개미가 태산을 옮긴다”고 하여 협동을 의미한다. 일본 속담에 “개미 단 것에 끼이듯 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곳에 모여드는 것, 즉 기회주의를 의미한다. “큰 방죽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고 하는 원인의 의미를 담고 있는 구절도 있다.
근면의 상징 개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에서 ‘정의의 곤충’이라 불린다. 이는 개미를 나타내는 한자와 정의를 나타내는 한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유교에서는 질서와 예절, 불교에서는 지혜의 상징이다. 동양문화, 특히 중국에서 개미는 애국심을 상징하며 매우 보잘 것 없지만 끝내 큰 일을 완성한다는 뜻에서 “개미가 태산을 옮긴다”고 표현한다. 소형 기계로 큰 작업을 해내는 모습을 “개미가 큰 뼈를 갉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는 “개미 금탑 모으듯”, “개미 메 나르듯”이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는 개미의 완벽함과 협동의 상징이 함축되어 있다.

도2 <삽화교정본[물새와 종달새와 개미]>, 일제강점, 양지에 수묵, 8.5×14㎝,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붕몽의생鵬夢蟻生

붕몽의생이란 ‘꿈은 붕새처럼 크게 꿀 것이며 생활은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아야 함’을 뜻한다. 붕새는 용과 같이 어마어마하게 큰 상상의 동물이다. 날개의 길이가 3천리이며, 하루에 9만리를 날아갈 만큼 큰 새이다. 개미는 작은 미물이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근면함과 끈기를 비유할 만큼 부지런함의 대명사다. 젊은 청소년들의 머나 먼 삶의 원정 장래는 붕정만리鵬程萬里라 표현한다. 학문에 힘쓰는 사람이나 사업에 정진하는 사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등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꿈과 더불어 목표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세의 덧없음을 상징

힌두교에서 개미는 현세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그 예는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의몽蟻夢’이란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다. 의몽이란 ‘개미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한때의 꿈’이나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양산의 길 내 알지는 못하지만 [不識陽山路]
신선 사는 지역에서 그대 만나 기쁘네 [仙區喜見君]
풍진 세상 개미 꿈에 놀라는데 [風塵驚蟻夢]
거문고와 술로 자연에 누웠네 [琴酒臥湖雲]
어조와 오래도록 친압하기 어렵고 [魚鳥難長狎]
천리마가 어찌 무리 속에 늙어가랴 [驊騮豈老群]
지난 날 소범 노자처럼 [他年小范子]
서융이 이름만 듣고도 겁먹었네 [西賊怯名聞]
– 황준량黃俊良, <환선정으로 연안을 방문하다[訪延安於喚仙亭]>, 《금계집錦溪集》


춘당대에서 문예 다투어 [戰藝春臺上]
문성으로 우두머리 차지하고 [文星壓斗魁]
붕새의 포부 원대히 기약했건만 [鵬圖期遠展]
개미 꿈 먼저 재촉해 의아했지요 [蟻夢訝先催]
새벽달 떠 관청에서 시간 전할 즈음 [曉月傳官漏]
가을바람에 뜰의 홰나무 잎이 졌으니 [秋風落院槐]
처량해라 옛날 노닐었던 땅에서 [凄涼舊遊地]
묵은 자취 문득 슬퍼할 만하구려 [陳跡轉堪哀]
지난해 금강산 정상에서 [去歲蓬萊頂]
가을바람에 우의 날리며 [秋風振羽衣]
신선 만나 나루 물으시더니 [還逢仙侶問]
백옥루로 재촉해서 가셨네 [催向玉樓歸]
붉은 바위에 이름 남겼지만 [丹石留名在]
푸른 신 자취 더듬을 길 없나니 [靑鞋撫跡非]
천추세월 동해 바닷가에 [千秋東海上]
좋은 글 구슬처럼 흩어지리 [咳唾散珠璣]
– 김수항金壽恒, <동곽 이제경을 곡하다[哭東郭李濟卿]>, 《문곡집文谷集》


김수항金壽恒의 <동곽 이제경을 곡하다[哭東郭李濟卿]>라는 시에서 ‘의몽蟻夢’은 인생사 한바탕의 헛꿈이라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를 말한다. 당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술에 취하여 회화나무 아래에서 잠을 잤는데 꿈에 대괴안국大槐安國의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리면서 20년 간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나서 보니 남가군은 바로 다름 아닌 회화나무 남쪽 가지 아래에 있는 개미굴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개미를 현세의 덧없음의 상징으로 표현한 예는 우리 옛 문헌에서도 종종 보인다.


개미보다 더 작은 미물은 없으되 [微莫微於蟻]
벌레를 끌고 잘도 달아나누나 [曳蟲猶善走]
크거나 작거나 모두가 일반이라 [大小若等視]
호랑이가 온갖 짐승을 제압하듯 [如虎制百獸]
– 이규보李奎報, <고율시古律詩-개미가 벌레를 끌고 가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굴속에 떼 지어 사는 건 타고난 본성인데 [穴聚群居性自然]
항오 나누고 진영 이루어 자주 옮겨 다니네 [分行成陣屢移遷]
미약한 힘으로 큰 나무를 누가 흔드리오 [力微大樹人誰撼]
누린내 좋아하는 구구한 뜻이 가소롭구나 [可笑區區志慕羶]
– 서거정( 徐居正, 1420~1488), <정미년(1487, 성종18)에 손수 정리한 시고[[丁未手稿]]>,
《사가집四佳集》 사가시집보유 제1권

그림 속 개미

개미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많이, 자주 만나게 되는 곤충이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에 개미가 그려진 예가 종종 보인다. 하지만 개미가 워낙 크기가 작고 눈에 띄는 화려한 외형이 아닌 데다가 화면 하단 한구석 땅바닥 위를 기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예가 대부분이라 그림 속에 그려져 있어도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사임당의 전칭작으로 알려진 <초충도草蟲圖> 중, 가지가 여러 곤충과 어울려 그려진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 속에 개미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가지는 우리가 흔히 보는 가지뿐만 아니라 흰 가지도 함께 그려졌다. 또한 여러 가지 곤충들이 어울려 그려져 있는데 붉은 나방과 흰 나비 한 마리, 벌과 개미가 각각 두 마리, 방아깨비 한 마리, 오른쪽 자줏빛 가지 줄기에 무당벌레 한 마리, 바닥의 산딸기 덩굴, 쇠뜨기풀 등 9가지 소재들이 동원되었다(도1). 여기에서 개미는 벌과 같이 ‘임금께 충성함’을 상징하는 곤충들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魏伯珪, 1727∼1798)는 그의 문집 《존재집存齋集》에 <개미를 깨우치는 글[諭蟻文]>을 남겼는데, 개미의 생태적 특징을 바탕으로 개미의 충성이나 의리, 지혜와 근면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 흥미롭다.


너희에게는 군주와 신하의 의리가 있고 수시로 흙을 물어 나르는 예禮가 있고 집을 짓는 지혜가 있으니
꿈틀거리는 다른 어리석은 벌레와는 비교할 수 없다.
– 위백규(魏伯珪, 1727∼1798), <개미를 깨우치는 글[諭蟻文]>, 《존재집存齋集》 제18권


개미가 그려진 그림 중에는 삽화도 남아있는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삽화교정본>이 그것이다. 이 삽화는 출판사에 보내는 교정문구가 쓰인 삽화다. 종이 가운데 그려진 사각 테두리 안에는 전래동화인 ‘욕심쟁이’를 나타내는 삽화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테두리 밖에는 ‘물새와 종달새와 개미’라는 삽화의 제목이 쓰여 있다. <물새와 종달새와 개미>라는 제목의 삽화본은 물새와 종달새가 땅 위를 기어가고 있는 개미 한 마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것이다(도2).

참고자료
송순, <곤충의 상징에 관한 연구>, 《모래상자치료연구》 제7권, (한국모래상자치료학회, 2017, 2)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1994)
최재천, 《개미제국의 발견: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 (사이언스북스, 1999)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편, 《韓國文化 상징사전》, (서울:東亞出版社, 1992)
이공좌(李公佐), 《남가기南柯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 당대唐代〈학기學記〉, 《예기》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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