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곤충이야기 ⑤ 천하天下에 비길 데 없는 용사, 사마귀

옛 문인들은 어리석음의 상징이면서 영웅의 상징이기도 한 사마귀의 면모에 매력을 느꼈고 사마귀에 대한 시문을 남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옛 그림에는 사마귀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사마귀는 머리 모양이 삼각형이며 겹눈은 크고 정면을 향한다. 암컷이 수컷보다 크며 앞다리는 낫 모양과 같은 형태를 띤다. 새 등의 천적에게 들키지 않고 먹잇감을 기다리기 위해 생활하는 환경에 동화되는 색이나 무늬를 띄는 종류가 많다. 주로 동남아시아의 열대지방에 서식한다. 아프리카 부시먼 사이에서 버마재비 즉 사마귀는 협잡꾼을 뜻한다.


도1 심사정, <화훼초충도>, 지본채색, 58×31.5cm,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모하리만치 대담하고 용감한 사마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다.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라는 말로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분수를 생각하지 않은 채 강자에게 함부로 덤빈다는 뜻으로 기술돼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견식의 부족이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당랑거철은 특히 분수를 모르는 이에게 자주 사용된다. 급이 다른 상대에게 주제를 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당랑거철에는 실은 또 하나의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회남자淮南子》 인간훈편人間訓篇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기원전 7세기경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은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중 벌레 하나가 팔을 도끼처럼 휘두르며(당랑지부螳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 덤비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에 장공이 마부에게 어떤 벌레냐 묻자 마부는 “저것은 당랑(사마귀)이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융통성이 없어 물러설 줄을 몰라 제 힘을 생각지 않고 앞을 가로막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비는 습성이 있사옵니다” 이에 장공은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용사일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비켜 가도록 하라.”
이는 《장자莊子》에 나온 해석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이처럼 본래 당랑거철에서 사마귀는 군주의 경의를 받은 생물이다. 당시 군주의 경의는 군주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존대다. 비록 사마귀는 《장자莊子》에 기술된 것처럼 제 분수도 모르고 강자인 수레에 덤볐을지 모른다.
당랑거철의 사마귀는 분수를 모르는 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영웅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분수를 알고 처신을 삼가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대성大盛하기 위해서는 이 분수를 뛰어넘어 도전의식으로 부딪혀 나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랑거철은 물러설 줄 모르고 자기 힘은 헤아리지 않은 채 강자强者에게 덤비는 사마귀의 습성처럼 분수를 모르고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물러설 줄 모르는 강인한 담력과 용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마귀는 어리석음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영웅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분수를 모르고 강자에게 덤비는 어리석음을 이야기할 때 사마귀에 빗대어 표현한 시로, 조선 중기 문신, 차천로(車天輅, 1556~1615)의 《오산집五山集》에 게재된 시 <약포藥圃의 시운에 따라 시를 짓다>가 있다.

복별의 광채가 들판에 드리우니 [伏鼈星垂野]
천병이 달마다 세 번씩 승전했지 [天兵月捷三]
호거를 사용하여 곧바로 돌진하니 [虎車方直擣]
사마귀가 앞발로 막을 수 있겠는가 [螳斧詎能堪]
백사장엔 요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白磧氛全滅]
청산에는 태양이 반쯤이나 걸렸지 [靑山日半銜]
무능한 선비가 필봉을 휘둘러 [腐儒揮健筆]
후일의 이야깃거리로 남기네 [留與後來談]
-차천로(車天輅, 1556~1615), <약포藥圃의 시운에 따라 시를 짓다>, 《오산집五山集》 속집 제1권

기회를 노리고 때를 기다리는 사마귀

당선작탄螳蟬鵲彈은 서로 잡아먹으려고 기회를 노린다는 의미로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까치는 사마귀를 노리고 사람은 까치를 노린다는 뜻이다. 《장자》 〈산목(山木)〉에 “장주가 조릉雕陵의 율원栗園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서남쪽에서 날아오다가 장주의 이마를 부딪치고 지나가 밤나무 숲속에 앉았다. 장주가 말하기를 ‘무슨 새가 저렇단 말인가.

도3 <전 신사임당필 초충도> 부분, 지본담채, 전체길이 136.0cm, 전체너비 408.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3의 부분

방대한 날개를 가지고도 멀리 날지 못하고 큰 눈을 가지고도 사물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하고 빨리 달려가 새총을 가지고 와서 그 새의 동정을 엿보았다. 그때 한 마리 매미가 좋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자신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사마귀가 나뭇잎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먹이가 눈에 띄자 자신의 형체를 망각해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 생긴 까치가 기회를 틈타 이롭게 여기다가 이익에 탐닉되어 진성眞性을 잃어버렸다. 장주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말하기를 ‘아, 동물이 서로 해치는 것은 양쪽이 서로 불러들여 이익을 탐하는 소치이다’하고 활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하였다.
당포선螳捕蟬은 당랑포선螳螂捕蟬 또는 당랑규선螳螂窺蟬이라고도 한다. 버마재비(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엿본다는 말로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뒤에 따를 걱정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 ‘당랑포선螳螂捕蟬 황작재후黃雀在後’라는 말로 널리 회자된다. 이는 버마재비[螳螂]가 매미를 잡으려고 노리고 있는데, 그 뒤에 참새가 버마재비를 잡아먹으려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전한前漢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정간正諫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자莊子》 <산목山木> 편에 나오는 당랑박선螳螂搏蟬,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당랑재후螳螂在後 등도 같은 뜻이다.
조선 중기 문신 차천로(車天輅, 1556년(명종 11)~1615년(광해군 7)) 또한 이와 관련된 시를 남겼다.

사마귀가 매미를 덮치려고 [螳螂搏蟬]
먼저 몸을 숨기고 있었도다 [執翳而先]
먹이를 보고 자신을 망각하니 [見得忘形]
먹으려는 욕심이 전일했도다 [飮欲於專]
기필하지 않아야 할 일에 기필하며 [必於不必]
스스로 만전萬全하다고 여겼도다 [自謂萬全]
탐욕에 빠져 주위를 돌아보지 않으니 [貪而不顧]
앞에 좋은 먹이가 당도했도다 [快全當前]
어찌 알았으랴 이상한 까치가 [詎料異鵲]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엿보다가 [狙闚樹顚]
이 상황을 이롭게 여겨 [從而利之]
기회를 틈타 잡아채려 할 줄 [乘機擬焉]
한번 쪼면 떨어질 터인데 [一啄而抎]
늙은 손을 쓸 것 뭐 있겠는가 [何勞老拳]
…(중략)…작은 것에는 영리하고 큰 것에는 어두우니 [小黠大癡]
너희들의 마음은 변하기 어렵도다 [爾心難遷]
사마귀야 사마귀야 [螳乎螳乎]
화를 당할 만도 하구나 [其及宜然]
– 차천로車天輅, <《칠원경(漆園經)》을 읽다가 당선작탄螳蟬鵲彈의 설에 감동 받아 〈당랑찬螳蜋贊〉을 짓다>, 《오산집》 제5권

뒤에 있는 참새는 못 보고 앞에 있는 매미만 보고 있으니 눈 앞의 이익에 어두워 뒤에 따르는 걱정거리는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내용의 시는 조선 후기의 학자 정운희丁運熙의 <당랑포선도螗蜋捕蟬圖>에도 보인다.

“可笑螗蜋子, 如何上樹顚, 都忘跟後鵲, 惟覘咽前蟬,
未補微腸血, 先添利啄涎, 初非圖彼計, 性命爾應全.”
-정운희丁運熙, <당랑포선도螗蜋捕蟬圖>, 《고주집孤舟集》 권1

그런데 시의 제목이 <당랑포선도螗蜋捕蟬圖>인 것을 미루어 봤을 때 정운희가 그림 <당랑포선도螗蜋捕蟬圖>를 보고 쓴 시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당랑포선도螗蜋捕蟬圖>에 남긴 제시일 가능성도 있다. 현재 어떤 그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운희가 당랑포선 그림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조선시대 시문으로 안정복의 <매미에게 묻고 매미가 대답한다[問蟬蟬答四絶]>가 있다.

묻노라, 너 무엇 때문에 그리도 울어대며, [問爾緣何嘒嘒鳴]
뜰 나무에 날마다 와 다정한 듯 구는 거냐. [日來庭樹似多情]
대답하길, 나 역시 무심한 자인데, [答云余亦無心者]
고상한 이를 벗하여 이 생 마치려고 그런다오. [欲伴高人送此生]
내가 무슨 고상한 사람이냐? 네 말이 망발이지, [余豈高人爾語妄]
재주 없고 덕도 없어 산 속에 누웠단다. [無才無德臥邱樊]
버마재비가 너를 찾아 네 소리 듣고 오는데, [螳螂窺爾尋聲至]
어찌하여 소리 그치고 잎에 숨어 살 궁리를 하지 않느냐? [何不藏音翳葉存]
지극한 가르침 삼가 받들매 미망에서 깨어나 [至訣恭承可發蒙]
소리 그치고 잎에 숨어 내 몸을 보전합니다. [藏音翳葉保吾躬]
듣자하니 세상에는 무서운 덫이 깔려 있다는데, [亦聞世上危機伏]
위험 피해 살 길 찾는 것은 피차가 같지요. [趨避元來物我同]
너는 비록 미물이지만 고상하고 맑아 [爾雖微物本高淸]
자연의 섭리 따라 살며 네 갈 길도 아는구나. [動以天機理自明]
진중한 네 말을 내 잊지 않으리니 [珍重爾言當不忘]
우리 서로 훈계하여 깊은 교분 맺자꾸나. [胥敎胥訓託深盟]
-안정복安鼎福, <매미에게 묻고 매미가 대답한다[問蟬蟬答四絶]>, 《순암집順菴集》, 제1


도4 <전 신사임당필 초충도> 부분, 지본담채, 전체길이 136.0cm, 전체너비 408.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4의 부분

옛 문인들은 어리석음의 상징이면서 영웅의 상징이기도 한 사마귀의 면모에 매력을 느꼈고 사마귀에 대한 시문을 남기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당랑포선’과 관련된 시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림에서도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사마귀와 매미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 한 예로 심사정의 <화훼초충도>(도1)를 들 수 있다.
중국에서는 청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당선작탄螳蟬鵲彈을 화제로 그려진 그림이 적지 않다. 청대부터 이 화제의 그림이 많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당랑권법이 청대 초기에 창시된 것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랑권법은 청대 초기, 산동성 묵현墨縣의 반청복명反淸復明 지사인 왕랑王朗에 의해 창시됐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에도 머문 적 있고 이후 대만에서 무술을 전수했던 정상삼張詳三 노사老師의 말을 인용해보면 “왕랑은 소림사에서 권법을 배웠으며 절을 떠나 수행 중 단통이라는 권법가와 겨루었다. 왕랑은 3일에 걸쳐 그와 싸워보았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 시합 후, 나무 아래에서 왕랑이 쉬고 있는데 매미 소리가 요란해 그쪽을 보니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해(당랑포선螳螂捕蟬) 나뭇가지를 주워 사마귀를 찔러 방해하자 매미는 도망가 버렸고 사마귀는 나뭇가지를 향해 공격 태세를 취했다. 흠칫 놀란 왕랑은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찌르고 사마귀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양 앞발을 자세히 보니 때로는 오른쪽이 앞, 왼쪽이 뒤, 때로는 왼쪽이 앞, 오른쪽이 뒤였다. 한동안 지켜보니 사마귀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었다. 왕랑은 이때 짧은 것을 가지고 긴 것을 치는 극의를 깨달았다. 그 뒤 왕랑은 사마귀를 가지고 소림사로 돌아가 아주 세밀하게 그 움직임을 분석하여 결국에는 권법의 모든 것을 깨우쳤다”고 한다.
민화에서는 사마귀 그림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 연유는 민화의 특징과 관련이 깊다. 민화는 이상적인 정신적 향상보다는 세속에서의 행복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민화는 세속적 욕망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길상화이다. 따라서 사마귀 관련 주제처럼 어리석음을 꾸짖는다거나 용기를 칭찬하는 식의 화제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회화에서는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게 그려져 왔고 한국회화에서도 조선시대 회화 중 사마귀 도상이 그려진 것이 있기에 동아시아의 곤충 화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우리 옛 그림 속에 사마귀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 옛 그림 속 사마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8폭 병풍[草蟲圖八幅屛風]>에 사마귀가 그려져 있다(도2, 도3, 도4). S자형으로 구부러져 피어 올라간 꽃 주위로 잠자리와 벌이 날아들고, 땅 위에는 사마귀가 기어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도2).


도5 <초충도草蟲圖>, 지본채색, 조선,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5의 부분

덩굴식물은 줄기가 곧게 자라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지면이나 다른 식물 등에 기대어 자라나는 식물을 일컫는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포도나무나 나팔꽃 등을 들 수 있다. 덩굴식물은 일반적으로 생장이 빠를 뿐 아니라 덩굴식물을 가리키는 한자어가 만대曼代인 까닭에 옛사람들은 덩굴식물이 상징하는 바를 만대萬代로 여기고 모든 것이 이어져 단절되지 않음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보통 의장적인 요소가 강한 덩굴식물 무늬는 당초로 명명하며 그 상징하는 바도 당초와 다름이 없다.
종류의 변별이 가능한 회화작품의 경우 가장 많이 그려지는 덩굴식물은 포도로, 포도는 자손이 많음을 의미하고 포도 덩굴은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 자손이 창성하기를 축원하는 의미의 그림이 된다. 그 밖에 나팔꽃이나 딸기 등이 덩굴식물의 주요 소재로 쓰였다.
영적인 신비한 힘, 강인함을 의미하는 사마귀와 장수 또는 기쁨을 의미하는 나비와 함께 덩굴식물이 그려진 경우 만대까지 자손이 강인하고 영적인 힘을 받으며 번성하는 기쁨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마귀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는 ‘αλογάκι της παναγίας’인데 이는 예언자(παναγίας)라는 뜻이며 영적인 신비한 힘을 상징하였다. 사마귀의 먹이 사냥에서 보이는 행동에서 고요함, 조용함, 평온, 인내, 균형의 모습이 보이며 행동개시의 시점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에서 묵상과 명상의 상징이 생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그림에서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거나 먹이를 노리는 여러 움직임을 보이는 곤충들 사이에서 홀로 고요하게 움직임 없이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마귀를 그린 경우가 많은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초충도草蟲圖>(도5)가 그 예이다.


참고문헌
《움직이는 도감 MOVE 곤충》, 루덴스미디어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Cooper, J.C(진 쿠퍼) 저 이윤기 역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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