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곤충이야기 ④ 다산과 승리의 상징, 잠자리

커다란 눈과 그물 모양의 맥이 있는 투명한 두 쌍의 날개, 가느다랗고 기다란 배를 가졌으며 벌레를 잡아먹어 사람에게 이로운 곤충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잠자리다. 잠자리는 어떤 상징으로 옛 그림에 등장했을까?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지구상에서 날아다니는 곤충들의 원조, 잠자리

쥐라기 시대의 잠자리 화석이 종종 발견된다(도1). 잠자리는 대표적인 화석 곤충으로 지구상에서 최초로 하늘을 비행한 곤충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11월 중국에서 1억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잠자리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 잠자리 화석은 1억 1천만년~1억 3천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1억년 이상 된 화석임에도 불구하고 잠자리 날개부분의 주름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주목된 바 있다.
고대의 잠자리는 현재의 잠자리보다 매우 컸다. 고대 잠자리 중 메가네우라(Meganeura)는 약 2억 9천만년 전의 고생대 석탄기에 생존했던 고시하강古翅下綱 곤충이다. 형태는 현재의 잠자리와 유사하나 다른 목에 속했으며, 날개를 편 크기가 약 50~70cm 정도였다.

잔자리에서 잠자리로

‘잠자리’는 조선 중종 때 번역한 《두시언해》 초간본에 ‘잔자리’로 나오다가 그 후로 잠자리로 기록된 것을 미루어 봤을 때, 잔자리가 잠자리(Dragonfly)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잠자리를 대부분 ‘청정蜻蜓’이라 표기했는데 간혹 ‘청령蜻蛉’이라 표기하기도 했다. 그 외 별칭으로는 호려狐黎·청아랑青鴉娘 등이 있고 고추잠자리로는 적졸赤卒·강추絳騶·적의사자赤衣使者·적변장인赤弁丈人이 있다.


도1 잠자리 화석, 미국, 중생대, 32cm×20cm, 영인산산림박물관 소장


청정蜻蜓, 호려狐黎, 적졸赤卒

조선후기 민노행(閔魯行 1777~1845)의 《명수지문名數咫聞》에 따르면 잠자리는 세 종류[蜻蜓三種]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첫째 색이 푸르고 큰 것을 청정蜻蜓이라 하고, 둘째 작고 누런 것을 호려狐黎라 부르며, 셋째 작고 붉은 것을 적졸赤卒(고추잠자리), 한편으론 강추絳騶라 말한다[色靑而大者曰 蜻蜓 小而黃曰 狐黎 小而赤曰 赤卒 一曰 絳騶].
잠자리는 세계 각지에서 널리 볼 수 있으며 약 5,000종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는 107종이 알려져 있다. 잠자리 무리(잠자리목)는 길쭉한 몸과 기다란 날개를 지니며 머리에는 매우 큰 겹눈이 있다. 유충은 ‘수채’라고 불리며 물속에서 생활한다. 번데기 과정은 거치지 않고 탈피를 반복해 날개가 있는 성충이 된다. 일본에는 190종, 한국에는 107종이 알려져 있다. 잠자리의 생태적 특징이 그대로 시에서 묘사된 부분이 있어 주목된다. 조선 중기 문인 이응희李應禧의 《옥담시집玉潭詩集》에 실린 시가 그 예이다.


물속에 들어가서 알을 낳고 [潜蟲蕃水底]
진창에서 나와서 허물을 벗네 [蛻脫出泥濘]
푸른 껍질은 푸른 옥玉 같고 [靑殼騰蒼玉]
붉은 머리는 자줏빛 구슬 같구나 [紅頭散紫瓊]
집 주위에서 가지런히 위아래로 날아다니다가 [屋邊齊上下]
두건頭巾 위에 혹或 날아와 앉네 [綸首或來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수없는 잠자리들이 날아서 [最愛飛無數]
해 질 녘 푸른 부평초 위에 점점이 내려앉는 것이로다 [斜陽點綠萍]
– 이응희李應禧, 비충류飛蟲類 청정蜻蜓(잠자리),
<만물편萬物篇>, 《옥담시집玉潭詩集》

중국의 시성, 두보, 잠자리를 노래하다

중국에서 시성詩聖이라 칭하는 두보杜甫는 <곡강曲江>이란 시편에서 “꽃 사이로 나비는 깊이깊이 보이고, 물 점찍는 잠자리 팔랑팔랑 나누나[穿花蛺蝶深深見, 點水蜻蜓款款飛]”고 읊었다. 반쯤 취한 퇴근길에서 그의 눈길이 가는 곳은 꽃밭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나비들과 잔잔한 수면 위로 꽁지를 살짝 꼬부려 점 하나를 톡 찍고 날아가는 잠자리였다. 여기저기 들쑤시며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부산스레 돌아다니자, 두보는 자꾸만 그들이 부러워 그 뒤를 따라 꽃밭 사이와 수면 위를 기웃기웃하며 아름다운 봄날 풍광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물을 좋아하는 잠자리, 연못과 함께 그려지는 경우 多

중국 서진西晉의 최표崔豹는 《고금주古今注》라는 책에서 “청정 즉 청령은 물 위에 모여서 날기를 좋아한다[古今注 蜻蜓卽蜻蛉 好飛集水上]” 하였고, 1182년 중국 남송의 양극가梁克家가 지은 <순희삼산지淳熙三山志> 일명 <장락지長樂志>에서 언급하길 “청정은 한편으론 강추絳騶라 말하고, 한편으로 적의사자赤衣使者라 불리며 또한 적변장인赤弁丈人이라 칭하기도 하고, 세속에서는 청아랑青鴉娘이라 불린다[蜻蜓 一曰絳騶 一曰赤衣使者 又曰赤弁丈人 俗呼青鴉娘]”고 했다.
물잠자리는 물가를, 실잠자리는 수풀을 선호한다. 잠자리가 유충시절을 물속에서 지내기에 물가나 연못의 연꽃과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도2, 도3, 도4).

남근男根을 상징하는 길쭉한 생김새의 잠자리
-예로부터 양기에 좋다하여 다산과 득남을 상징

잠자리는 커다란 눈과 그물 모양의 맥이 있는 투명한 두 쌍의 날개, 가느다랗고 기다란 배를 가졌으며 벌레를 잡아먹어 사람에게 이로운 곤충이다. 《동의보감》에는 잠자리를 ‘청령’ 또는 ‘청낭자靑娘子’라 했으며 성질이 약간 서늘하며 독이 없다. “양기를 강하게 하고 음경을 따뜻하게 하며… 약으로 쓰려면 말려서 날개와 발을 떼고 볶아서 사용한다. 눈이 푸르고 큰 것이 좋은데 고추잠자리는 더욱 좋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옛사람들이 잠자리를 정력제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약용으로서의 잠자리가 정력제였다면 상징으로서의 잠자리는 길쭉한 생김새 때문에 남근男根을 의미한다. 남근을 상징하는 다른 상징들이 그러하듯이 이는 곧 다자多子, 득남得男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수놓는 잠자리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면 잠자리는 푸른 가을 하늘을 수놓곤 한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후기 문인이자 실학자였던 이덕무(李德懋, 1741~1793)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에 그는 잠자리의 모습을 시로 표현하였다.


자잘한 담장 무늬인가 질항아리 금이 간 듯 [墻紋細肖哥窯坼]
어지러이 흩어진 댓잎인가 개자个字 모양으로 푸르네 [篁葉紛披个字靑]
우물가 가을볕에 그림자 어른어른 [井畔秋陽生影纈]
가는 허리 하늘하늘 고추잠자리 [紅腰婀娜瘦蜻蜓]
– 이덕무李德懋, ‘고추잠자리 그림자를 희롱함’,
<아정유고雅亭遺稿一>, 《청장관전서》 제9권


입은 옷의 무늬가 미세하니 가요哥窰가 갈라진 듯하고 [墻紋細肖哥窰坼]
어지러이 흩어진 얇은 날개는 낱낱이 푸른 글자로다. [篁葉紛披个字靑]
우물 두둑의 가을 햇살이 비단무늬 광채를 만들어 [井畔秋陽生影纈]
요염한 붉은 허리 고추잠자리가 하늘하늘 거리네. [紅腰婀娜瘦蜻蜓]
– 이덕무李德懋, ‘고추잠자리가 희롱하는 모습을 보고’,
<아정유고雅亭遺稿一>, 《청장관전서》 제9권

일본에서 잠자리는 승충勝蟲

일본에서는 과거 승충勝蟲이라 부르며 무사들이 자신의 투구나 무기 등에 잠자리 모양 장식을 달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잠자리는 오직 전진만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전쟁에 나가서도 후퇴 없이 전진만을 하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러한 상징은 무사들의 시대가 끝난 뒤 2차 대전 시대의 일본군에서도 일부 활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유사품이 많기는 해도 검도용품에 잠자리 문양을 그려 넣는 브랜드가 있다. 그 외에 진검수집가들 사이에서 잠자리 장식의 쯔바(가드) 부분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왼쪽) 도4 <연화어락도>, 견본채색, 84×35cm, 19세기,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5 <초충도>, 지본채색, 조선시대, 경기대학교소성박물관 소장

타협보다는 명분을 중요시하는 소론을 상징



거미가 거미줄을 치니 [蜘蛛結綱罟]
가로지른 다음엔 위로 아래로 [橫截下與上]
날 위해 잠자리에게 말을 해 주렴 [爲我語蜻蜓]
절대로 처마 밑엔 가지 말라고 [愼勿簷前向]
– 윤증(尹拯 1629~1714), <거미줄을 읊다[蜘蛛網詠]>, 《명재유고明齋遺稿》


윤증尹拯이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어 활동할 때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과 비난, 변명의 대립관계가 지속되어 많은 어려움을 당한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거미는 노론을, 잠자리는 소론을 뜻한다. 송시열을 비롯한 노록측은 현실과의 일정한 타협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데 최우선의 의미를 두었던 것이고, 윤증을 내세운 소론측은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명분을 고수하려 했던 것이다.
다산, 다남을 상징하는 잠자리와 벼슬을 상징하는 맨드라미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경기대학교소성박물관 소장의 <초충도>가 그 예이다(도5). 이 작품은 맨드라미를 중심으로 나비와 잠자리 등을 소재로 한 초충도이다. 중앙에 한 떨기의 맨드라미가 위로 뻗어 붉은 꽃을 피웠고, 맨드라미 주위에 푸른색의 키가 낮은 꽃 등의 잡초가 올라와 있다. 탐스러운 맨드라미를 향해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려한 색채의 나비와 고추잠자리가 맨드라미를 향하고 있고, 화면 화단의 땅 위에는 기어 다니는 곤충이 배치되었다. 구조를 보면 중앙의 맨드라미를 중심으로 공중의 나는 곤충과 땅 위의 기는 곤충이 상화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구성이 독특하다. 쇠똥을 굴리는 쇠똥구리들의 모습이 해학적이며, 소박한 소재에 붉은색·푸른색과 초록색의 색채가 조화롭게 사용되었다. 맨드라미[鷄冠花]의 관冠은 관官과 동음동성으로 벼슬을 상징한다. 맨드라미와 그 주변을 날고 있는 잠자리가 함께 그려지면, 아들을 많이 낳고 벼슬길에서 관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 혹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높은 관직을 얻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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