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곤충이야기 ③ 군자의 상징, 매미

군자를 상징하는 매미는 예부터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였을 뿐만 아니라
뭇 문인묵객들의 시화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옛 선인들은 매미를 작품 속 어디에,
어떻게 그려 넣어 의미를 더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편집자주)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고려대학교 강사)


군자의 상징, 매미 그림

매미를 가장 이상적으로 미화시킨 사람들은 동양의 선비들이었다. 진晉나라 육운(陸雲, 262~303)은 <한선부寒蟬賦> 서문에서 매미가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의 오덕五德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머리에 갓끈 무늬가 있으니 문인의 기상을 갖춘 것이요 [頭上有緌則是文也].
천지의 기운을 품고 이슬을 마시니 청정함을 갖춘 것이요 [含氣飮露則其淸也].
곡식을 먹지 않으니 청렴함을 갖춘 것이며 [黍稷不食則其廉也]
거처함에 둥지를 만들지 아니하니 검소함을 갖춘 것이요 [處不巢居則其儉也].
때에 응하며 자신의 할 도리를 지키어 울어대니 신의를 갖춘 것이다[應候守節則其信也].
-육운 <한선부寒蟬賦> 서문

유교에서 매미는 머리가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文이 있고, 이슬만 먹고 살므로 청淸이 있고,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 있으며, 집을 짓고 살지 않아 검儉이 있고,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절도를 지키니 신信이 있어, 군자가 지녀야 할 오덕五德을 갖추었다 하여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문인을 상징하는 책과 문방구류들을 함께 그린 책거리에 장식 문양으로 매미가 등장하기도 한다(도1).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를 쓴 호메로스(Homeros) 또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피도 나지 않으며, 배설을 하지 않는 매미를 신神과 같다며 극찬했다.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歐陽脩를 비롯한 옛 선비들은 매미를 군자로 여기며, 그 미덕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도2 <송림한선松林寒蟬> 부분, 1742, 견본담채, 29.5×21.3cm, 간송미술관 소장
(이미지 출처: 최완수, 2009, 《겸재 정선2》, 현암사)
도3 <백선병> 6폭 병풍 부분, 지본채색, 각 772×543cm, 독일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이미지 출처: 정병모, 2015, 《한국의채색화2》, 다할미디어)
도3-1 도3 백선병 부분

쓸데없는 의론과 형편없는 문장의 비유, 매미 울음소리

장마 후 맴맴 우는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무더위와 때를 같이 한다. 더위를 가르는 매미의 비파줄처럼 팽팽한 울음소리는 무더위에 시원함을 주고 때론 여유로움을 갖게도 한다. 이처럼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뙤약볕과 함께 한 우리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한여름이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요란하게 들리곤 한다. 그래서인지 매미의 울음소리는 부정적인 비유로도 사용되곤 했는데, 쓸데없는 의론과 형편없는 문장을 두고 개구리와 매미의 울음소리[蛙鳴蟬俳]에 빗대기도 했다.

불사不死와 재생, 생성과 소멸을 반복

땅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6년을 지낸 후 번데기가 되고,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일련의 변태기로 되었다가,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매미의 변태과정은 불사不死와 재생을 상징하며, 고대인에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작용과 동일시되었다. 매미는 허물을 벗음으로써 신생을 누리므로 재생과 부활과 탈속의 상징으로 찬미되었다.
매미는 대략 6~7년간 땅속에서 살며 수차례 탈피를 하다가 성충이 되어 땅 위 나무로 올라가 우화羽化한다. 이처럼 매미의 수차례 탈피는 재생과 때론 탈속의 상징으로 여겨져, 신선으로 비유될 정도로 칭송받아왔다. 또한, 매미의 짧은 삶은 우리에게 덧없는 목숨으로 은유되기도 하였다.

(왼쪽) 도4 <어락도>, 19세기, 지본채색, 54×30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5 <석류한선도>, 조선시대, 지본채색, 경기대학교소성박물관 소장

매미와 나무

매미 성충은 대부분의 생활을 나무 위에서 한다. 빨대처럼 생긴 주둥이를 나무에 찔러서 수액을 빨아 먹는다. 알은 마른 나뭇가지에 낳으며, 부화한 유충은 땅속에서 나무 뿌리즙을 빨아 먹으며 성장하고, 다 자라면 땅 위로 나와 풀이나 나무에 올라가 번데기를 벗고 성충이 된다. 갓 성충이 된 무렵에는 몸이 유연하지만 곧 단단해진다.
매미의 삶의 형태와 그 생김새로부터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읽어낸 선비들은 청고淸高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초건貂巾을 초선貂蟬 또는 초선관貂蟬冠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군자를 상징하는 매미는 이후 많은 시문과 그림의 소재로 사랑받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매미그림의 대표로는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송림한선도松林寒蟬圖>를 들 수 있다(도2).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앉은 매미만을 크게 부각하여 주제를 강조하였다. 특히 이 그림은 뛰어난 관찰력이 돋보이는데, 매미의 다리나 눈동자는 물론 커다란 투명 날개 안의 작은 날개까지 상세히 그려 넣었다. 주제를 제외하고 비워둔 화면과 솔잎 등에 가해진 담채는 시원함을 전해준다.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내면 깊숙이 선비의 포부를 간직했던 정선 자신의 마음을 매미에 의탁하여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매미 애벌레들은 땅속에서 버드나무, 미루나무 등 각종 활엽수의 뿌리를 흠집 내어 수액을 먹고 산다. 그래서 매미는 통상 나무나 나뭇가지 등에 매달린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백선도의 부채그림에 그려진 매미그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도3). 또한 매미는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린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도4).
조선시대 군자를 상징한 매미그림으로는 17세기에 활동했던 월봉月峰 김인관(金仁寬, 1636~1706)의 <화훼초충화권축花卉草蟲畵卷軸> 12폭 그림 중 세 번째의 <유선도柳蟬圖>가 있다.
매미가 버드나무와 함께 그려진 예가 많은 이유는 바로 매미의 생태적 특성과 연관된다. 버들은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고향에 은거하며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부른 이래로 은자의 삶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소재였다. 고목에서 새롭게 돋아난 버들가지와 그 가지 끝에 앉아있는 매미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버들가지 아래의 텅 빈 공간과 수채화 같은 맑은 담채, 경쾌하게 흔들리는 버들잎 등은 시원하고 맑은 분위기를 만들어내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준다. 매미는 새롭게 돋은 가지처럼 새로운 각오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선비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소나무나 버드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의 모습을 주로 그리는데, 이는 민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어락도>(도4)에는 커다란 잉어도 함께 그려져 있어 흥미롭다. 물고기[魚]는 여유餘裕의 여餘와 동음동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길상으로 여겨져 옷감, 건축, 여러 기물 등에 각종 물고기와 비늘이 도안화된 문양이 사용된다. 즉 이 그림에는 물고기 한 마리를 더 그려 넣음으로써 길상적 의미가 더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매미는 불수감나무나 석류나무가지에 매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도5).
매미는 연꽃과 함께 그려지기도 하는데(도6), 이 경우 매미의 오덕 중 하나인 청렴함이 연꽃의 상징 중 하나인 청정함과 만나 그 의미가 더욱 강조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청정함은 연꽃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데, 민화에서는 이러한 상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그림에선(도6) 연꽃이 매미와 함께 그려짐으로써 청정함을 의미하는 그림이 되었다.

도6 와타나베 가잔(渡邊崋山,1793~1841) 필, 화금도중 중 <우화봉선>, 일본-에도시대, 지본담채, 22.2×35.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류선성高柳蟬聲

매미와 버드나무는 많은 문인들에게 시적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인 문학적 표현이 바로 ‘고류선성高柳蟬聲’이다. 고류선성高柳蟬聲이란 높은 버드나무의 매미소리라는 말로 청량함을 뜻한다(김윤식金允植의 《운양집雲養集》 참고).
한편 이색(李穡, 1328~1396)은 <매미 소리[蟬聲]>에서 “매미 소리 귀에 들자 내 마음이 움직인다[蟬聲入耳動吾情]”고 썼으며, 윤기(尹愭·1741~1826)는 <매미 소리를 듣다가[聽蟬]>에서 “빈 산에 해묵은 나무가 많아, 여기저기 매미 울음 그윽도 하다. 그대여 시끄럽다 싫어 말게나, 시끄러운 가운데 고요함 있네[空山老樹多, 處處蟬聲邃. 請君莫嫌喧, 喧中有靜意]”라고 썼다.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시 <신거新居>에도 “키 큰 버들 매미 소리 여름에도 서늘한데, 석양 무렵 난간에서 바람 이슬 노래하네. 성 가득 자옥한 검은 먼지 가운데, 이곳만 초연하게 깨끗한 땅 차지했네[高柳蟬聲夏亦寒, 談風吟露夕陽欄. 滿城滾滾緇塵裏, 地位超然占淨乾]”라는 문장이 있다. 이는 서울로 이사한 벗의 새집을 축복한 글로 “그대가 서울로 이사를 오니, 자네 집 버들엔 매미가 울어 시원하군. 티끌뿐인 서울에 특별한 청정 구역이 만들어진 느낌일세”의 내용을 지녔다.
한편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을 위해 쓴 만시는 이렇다. “여러 날 매미 소리 맑더란 얘기, 글에 써서 어른께 보내드렸지. 그 어른 이제는 계시지 않으니, 이 마음 마침내 뉘게 말할까[數日蟬聲語, 書之寄丈人. 丈人今不在, 此意竟誰陳]?”

도7 심사정, <화훼초충도>, 조선시대, 지본채색, 163×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앞의 구절은 전거가 있다.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편지를 보냈다. “며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들을 때마다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이 17자가 편지의 전문이다. 송시열은 앞선 편지에서 조속에게 이 편지의 사연으로 그리운 마음을 전했는데, 이제는 그런 편지를 쓸 곳마저 없어져 서운하다는 이야기다.
《예기禮記》의 <월령月令> 편을 보면, ‘초가을 달(음력 7월)에 선들바람이 부니, 이슬이 내리고, 한선寒蟬이 운다[孟秋之月, 凉風至, 白露降, 寒蟬鳴]’는 구절이 있다. 한선寒蟬이란 가을 매미를 일컫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 진晉나라의 문사였던 육운陸雲은 <한선부寒蟬賦>의 서序에서 매미의 오덕五德을 이야기하였다.
이후 매미는 많은 문인묵객들의 시화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은 <명선부鳴蟬賦>를 조선의 선비들이 자주 읊었으며, 화가들 역시 매미를 자주 그렸다.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 등의 화보에도 매미 그림이 있어, 이를 참고하여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
정선, 조영석(趙榮祏, 1686~1761)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선비화가로 손꼽히는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역시 매미의 상징성에 자신의 심정을 의탁한 그림을 제작하였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심지원(沈之源, 1593~1662)이 영의정을 지냈을 뿐 아니라 왕실과 혼인으로 연결되는 등 명문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심익창(沈益昌, 1652~1725)의 과거 부정 사건과 왕세자 시해 미수사건 등으로 인해 집안이 완전히 몰락하여 과거에 진출해 선비의 포부를 펼칠 꿈을 일찍부터 접어야만했다. 그는 그림으로 얻은 명성으로 영정모사도감影幀模寫都監의 감동監董이라는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 역시 역적 심익창의 손자라는 이유로 그만두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해 평생 그림에 몰두하여 그림을 팔아야했던 그는 정신적 고뇌가 컸을 것이다.
심사정은 <화훼초충도>에서 화면 오른쪽 아래 한결같이 굳건한 바위를 그려 넣었고, 그 뒤로 화면의 좌우를 가르며 배치된 나뭇가지와 가지 중앙에 앉은 매미를 그려내었다(도7). 짙은 먹선으로 괴석과 나무를 거침없이 간략하게 그린 반면 매미는 눈동자, 날개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6~7년간의 땅속생활을 끝내고 나무에 올라온 매미가 막 우화羽化를 끝낸 뒤 아침 이슬을 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선비로서 펼치고자 했던 심사정은 늘 때를 기다렸으나 그에게 그 때는 결국 오지 않았다. 바위, 나뭇잎 등에 가해진 푸른색은 이 그림에 화사함과 경쾌함을 주기보다는 우울함을 느끼게 하여 화가의 무거운 마음을 전해주는 듯하다. 심사정은 바위와 매미에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이입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의 선비들에게 바위와 고목 등은 형태를 닮게 그리는 것[形似]보다 자신의 마음을 그려 내는 것[寫意]을 강조하는 데 중요한 표현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군자의 미덕을 갖춘 매미의 등장은 선비의 지고지순한 지조를 더욱 더 강조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매미그림은 배경의 나무나 바위 등은 강한 필선으로 간략하게 상징적으로 그려낸 반면, 이를 배경으로 한 매미는 보다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이렇게 극명한 시각적 대비를 통해 주제는 더욱 부각되었다.


[표] 매미의 상징


군자                      유교
문文: 매미의 머리는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文이 있음
청淸: 이슬만 먹고 살므로 청淸이 있음
염廉: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 있음
검儉: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이 있음
신信: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절도를
          지키니 신信이 있음
군자가 지녀야 할 오덕五德,
즉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을
갖추었다 하여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상징
쓸데없는 의론과
형편없는 문장의
비유
매미 울음소리
불사不死와 재생,
생성과 소멸을
반복
매미가 땅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6년을 지낸 후에 번데기로 되었다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일련의 변태기로 되었다가,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변태과정
탈속 신선 수차례 탈피는 재생, 때로는 탈속의 상징
인생의 덧없음 6~7년간 땅속에서 살며 수차례 탈피를 하다가 성충이 되어 땅 위 나무로
올라와 짧은 성충의 삶을 살다 죽음

 

[참고자료]
《움직이는 도감 Move 곤충》, 고단샤, 루덴스미디어, 2019
《간송문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2004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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