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곤충이야기 ② 재물과 복, 신의의 상징 벌

도1 <화조도>, 20세기, 지본채색, 68×29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예부터 성실하게 일하며 꿀을 모으는 꿀벌은 재물과 복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귀중품이나 돈주머니 등에 벌 문양을 수놓곤 했는데,
민화에서 벌은 또 어떤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편집자주)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민화 속 벌은 꿀벌이다

민화에서 벌은 배의 굵은 황갈색 가로띠, 혹은 황백색의 잔털로 된 가로띠의 모양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꿀벌을 구별하는 주요 기준이 바로 배의 굵은 황갈색 가로띠 모양의 유무이다.

양봉꿀벌,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민화에서 나비 다음으로 많이 그려진 곤충이 벌인데, 민화에 그려진 벌들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배 부분에 황갈색 가로띠 모양이 있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민화 속 벌은 꿀벌이다.
꿀벌은 꿀벌속(Apis)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으로, 꿀벌과에 속한다. 또한 꿀벌은 이름 그대로 꿀을 저장하고 생산하는 벌로, 꿀벌로부터 채취한 꿀을 벌꿀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야생 꿀벌로부터 꿀을 채취해 먹었으며, 이는 기원전 13,000년 전의 암각화에서도 드러난다. 꿀벌은 식물의 수정과 벌꿀의 채집을 위해 사육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벌꿀, 로열 젤리, 밀랍, 프로폴리스 등을 얻기 위해 사육되어 왔으며, 국내에서는 축산법상 ‘가축’으로 명시된 유일한 절지동물이다. 일반적으로 벌꿀을 얻기 위해 사육되는 것은 유럽 원산의 양봉꿀벌이 주종이지만 재래종 및 야생도 있다. 천적으로는 말벌과 개미, 사마귀, 거미, 잠자리 등이 있다. 특히 말벌은 벌꿀과 애벌레, 꿀벌을 약탈하고 포획하기 위해 꿀벌의 집을 습격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꿀벌의 역사

인류가 꿀벌을 사육한 것은 5천 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인주나 왕의 무덤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성경 기록에도 자주 나온다. 한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꿀벌을 사육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삼국시대부터 중국에서 동양종 꿀벌을 수입해 양봉이 보급되었다.

(왼쪽) 도2 <화조도>, 20세기, 지본채색, 68×29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3 <화조도>, 20세기, 지본채색, 83×32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재물과 복, 신의의 상징

예부터 조상들은 곤충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각 곤충들의 특성에 맞게 나비는 장수, 개미는 부지런함, 매미는 불멸의 상징이었다. 성실하게 일하며 꿀을 모으는 꿀벌은 재물과 복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 귀중품이나 돈주머니 등에 재물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벌 문양을 수놓는 경우가 많았다.
꿀벌은 신의와 의리의 상징이기도 했다. 벌 여러 마리가 여왕벌 한 마리를 따르는 습성 때문에 왕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신하의 충절을 지녔다고 여겼다. 모란그림에 벌을 그려 넣으면 이는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를 표현하는 것이 된다(도1).

왕족과 군주제 시스템의 상징

고대 중동, 그리스, 이집트에서 꿀벌은 왕족과 군주제 시스템의 상징이었다. 이집트에서 벌은 태양신 라(Ra)의 눈물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겼고, 힌두교에서 꿀벌은 환생의 상징이다. 또한 고대 에게(Aegean) 해의 문화에서 양봉을 한 것이 발견되었으며, 벌이 지하 세계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신성한 동물이라 여겼다.
<화조도>(도1)를 보면 다섯 송이의 만개한 모란꽃과 한 송이의 모란꽃봉오리가 있고, 가장 위쪽의 모란꽃과 모란꽃봉오리 위에 각각 두 마리씩 짝 지은 벌들이 노닐고 있으며, 가장아래쪽 바위 근처에는 꿩 한 쌍이 그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암수 한 쌍을 이룬 새나 곤충은 부부화목이나 가정화목을 의미한다. 모란꽃과 함께 벌이 그려진 것은 신의나 의리, 충절을 상징한다. 꿀벌의 신의와 윗사람을 섬기는 충성심이 표현된 시가 있다.

나라 위해 헌신하는 꿀벌들의 그 정성 [殉國忘身卽至誠]
마음 다해 위를 섬겨 꽃들을 사냥하지 [勞心事上獵羣英]
모란꽃 떨기 속엔 어찌 아니 오는 걸까 [牧丹叢裏何曾到]
꽃 중에 부귀하단 명성 피해서라네 [應避花中富貴名]
―이익, <모란이 만개하자 많은 벌들이 다투어 모여드는데,
꿀벌은 한 마리도 오지 않으므로 이에 느낀 바 있어 짓다[牧丹盛開羣蠭競集惟蜜蠭一不到感而賦]>

《성호전집》 제3권



송宋나라 학자 주돈이周敦頤(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에 “국화는 꽃 중에 은자이고,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에 군자이다[菊花之隱逸者也 牧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해 이익은 윗사람을 섬기는 충성심이 강한 꿀벌들이 모란이 부귀한 자라는 명성을 듣고 찾아가지 않는다는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다.
한편, 모란꽃과 복사꽃을 함께 그리고 모란꽃과 복사꽃이 어울려 핀 곳에 벌 두 쌍이 그려있다. 신의나 의리의 의미뿐만 아니라, 돌 옆에 모란꽃과 복사꽃을 배치하면 생일을 축하하면서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장명부귀長命富貴의 의미까지 더해져 민화에서 가장 많이 추구된 상징인 장수, 부귀영화의 의미도 지니게 된다.
꽃과 함께 그려진 벌 그림을 보면 대개 한 쌍을 이룬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두 <화조도>(도1,
도2)의 경우처럼 꽃 한 송이 위에 좌우로 한 쌍의 벌이 그려지곤 한다. 꿀벌은 국화꽃과 함께 그려지기도 하는데(도3), 국화는 사실 군자를 상징하는 대표적 도상이지만, 민화에서는 군자의 의미로는 해석되지 않으며 거의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민화는 군자나 고상한 삶, 신선같은 삶보다는 솔직하고 세속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원숭이[猴]가 인수印綬를 단풍나무[楓樹] 가지 위에 걸고 있는 그림을 ‘봉후괘인封侯卦印’이라 한다(표 참조, 도4, 도4-1). 후작候爵에 봉해진 다음에는 또 이른바 ‘제봉提封’(봉해진 영토를 관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수印綬)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제봉提封의 관인官印을 갖춘 관리만이 명예와 실권을 함께 지닌 출세한 관리이다.


[표] 벌의 여러 상징

신의
의리
왕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신하의 충절
모란그림에서 벌은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를 표현
재물 성실하게 일하며
꿀을 모으는 꿀벌은
재물과 복의 상징
귀중품이나 돈주머니 등에
재물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벌 문양을
수놓음
ë³µ
성실함
오욕
세속의
단맛
꿀의 단맛에서 꿀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주식으로 삼는 벌과 달콤한
꿀을 연관시켜서 달콤함을 인간의
오욕, 세속의 달콤함(단맛)으로
이해한 것인데, 이러한 비유는
주로 불교에서 인용된다.
사찰의 벽화에 많이 그려짐
<안수정등도>
입신출세
고위관직
봉후괘인封侯卦印
◎ 명예와 실권이 겸비된 최고의
지위에 오르기를 축원하는 도안

원숭이[猴]가 인수印綬를 단풍나무
[楓樹] 가지 위에 걸고 있는 그림

* 출처 노자키 세이킨 저, 《중국미술상징사전》, p561-562


원숭이[猴]는 후侯와 동음동성이다. 단풍나무[楓]는 봉封과 동음동성이다. 또 단풍나무 위에 하나의 벌집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벌[蜂]이 봉封과 동음동성이기 때문이다. 인수印綬를 나무 위에 거는 것은 바로 ‘괘인掛印’의 의미이다. 단풍나무(혹은 벌집)에 원숭이를 그려 ‘봉후封侯’라고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또 학 옆에 벌집[蜜蜂]을 첨가하여 그리고 ‘일품가봉一品加封’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일품조가밀봉一品鳥加蜜蜂’의 발음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도안은 대부분 옛날 관청의 담장이나 벽 위에 그려졌지만, 그림의 본, 여러 기물, 문구 등에 응용된다.
벌은 왕족과 군주제 시스템의 상징에서 기인하여 높은 관직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것이 봉후괘인封侯卦印이다. 민화에서는 원숭이가 등장하지 않고 벌과 단풍나무 그림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화조도>(도5)의 경우 꿩 한 쌍도 함께 그려졌는데, 꿩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존재로 받아들여져 왔던 새로, 학이나 공작과 함께 높은 관직을 상징하기도 한다. 학[仙鶴], 꿩[雉鷄], 공작孔雀을 함께 그려 ‘위열삼대位列三臺’라고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학은 일품관一品官(협대協臺)의, 꿩은 이품관二品官(도대道臺)의, 공작은 삼품관三品官 (부대府臺)의 예복 휘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도4, 도4-1 <원숭이>, 19세기, 견본채색, 30×25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벌꿀에 취해 죽음을 잊다, ‘안수정등岸樹井藤‘(도6)

이 비유는 석가가 인도 왕에게 한 얘기로 불교 교리의 핵심을 설한 것이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간단히 한 가지 비유로써 생사의 맛과 그 근심스러움을 말하리니, 왕은 지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시오. 한량없이 먼 겁怯전에 어떤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는데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 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소.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소. 그런데 그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왕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보잘것없는 맛을 탐할 수 있었겠습니까?” 석가는 말하였다. “대왕이여,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한 것이요, 우물은 생사에 비유한 것이며, 그 험한 언덕의 나무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비유한 것이며,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 찰나로 목숨이 줄어드는 데 비유한 것이요,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오욕五欲에 비유한 것이요, 벌은 삿된 소견에 비유한 것이며, 불은 늙음과 병에 비유한 것이요,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알아야 하오. 생·노·병·사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명심하고 오욕五慾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그리고 석가는 다시 다음 게송偈頌으로 말하였다. “…떨어지는 꿀은 오욕의 비유요 벌이 쏘는 것 삿된 생각의 비유며…생(生)의 재미를 곧 싫어하라. 오욕五慾에 집착 없어야 비로소 해탈한 사람이라 하나니……..”

(왼쪽) 도5 <화조도>, 19세기, 지본채색, 75×41.5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6 안수정등岸樹井藤, 백련사 벽화

성실한 사람들의 상징인 꿀벌

꿀벌은 꽃의 꿀을 모아 둥지에 가져가는 성질(일)이 있기 때문에 일과 관련된 관계를 나타낼 수 있다. 꿀벌은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여왕벌과 수벌, 일벌의 신체구조에서부터 역할까지 철저하게 분리되어 조직적인 생활을 하며 뛰어난 집의 건설 기술과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꿀이 달콤함의 대명사가 되고 불멸과 중생, 다산, 근면, 조직사회, 기술, 능력, 사회성의 건설 등을 나타나는 데 벌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