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곤충이야기 ① 장수와 부부화목의 상징, 나비

길상성이 특징인 민화를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도상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꽃을 중심으로 민화 읽기를 연재해온 김취정 박사가 이번호부터 곤충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민화에 그려진 작은 생명을 통해 인간의 삶과 욕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붓으로 그린 곤충도감 <초충도>

성리학자들은 사람이 본래 받은 본성[性]이 하늘의 이치[理]와 같다는 전제를 가진다. 성리학자들은 하늘이 준 본성을 터득하기 위하여 하늘의 이치를 탐구하며, 하늘의 이치는 천지간의 만물을 관찰함으로써 깨닫는다. 만물 가운데 ‘초충’ 즉 풀벌레는 가장 작은 것이기에, 만물 중 미물微物이며 말단이다. 따라서 신사임당이 초충에까지 관찰과 사랑이 이르러 이를 그렸다는 것은 성리학자들이 보기에 매우 바람직하고도 품위 있는 주제였다.
초충을 그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 《당시화보唐詩畵譜》 등을 비롯한 명·청대의 화보들이라 하겠다. 사실상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작품들이 그러한 중국 화보들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민화 속 곤충 그림은 그 상징하는 뜻과 의미가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면이 많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비의 꿈, 호접지몽

민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곤충은 나비이다. 가장 잘 알려진 나비 이야기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 호접지몽은 나비의 꿈이라는 말로,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거나 나와 나 아닌 그 무엇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를 표현하는 말로 쓰이곤 한다. 장자의 호접지몽은 동아시아의 문인들에게 큰 감흥을 주었으며, 이에 많은 문인들이 장자의 나비 꿈과 관련된 시를 짓는 경우가 많았다.

한낮 창가에 앉아 졸다 장자의 꿈을 꾸며
봄 찾아 나선 나비를 따라 십리 먼 길을 가네
– 이재형, <처음 나비를 ë³´ê³  감회가 일어[初見蝶有感]>,《송암집》 제2권

나비 그림의 의미

나비는 한자로는 호접蝴蝶·협접蛺蝶·접蝶이라 하였고, 분접粉蝶·압접·달말橽末·서胥·옥요노玉腰奴·옥비전玉飛錢·풍접風蝶·봉자鳳子·봉차鳳車·귀차鬼車·촌이래村裏來 등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말로는 1481년에 나온 《두시언해》에 ‘나비’ 또는 ‘나뵈’로 나오고, 1527년에 나온 《훈몽자회》에는 ‘나뵈’로 나오며, 숙종 때 나온 《시몽언해물명》에는 남ᄋᆡ로 나온다. 그 뒤부터는 ‘나뵈’ 또는 ‘나비’로 불리어 오늘에 이르렀다.
나비 그림은 주로 장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보이는 도상의 상징성은 대개 한자음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나비[蝶]와 노인이나 여든 살을 뜻하는 질耋이 동음이성이기 때문이다. 《예기禮記》에 “70세를 모耄라 하고, 80세를 질耋이라 하며, 100세를 기이期頤라고 한다[七十曰耄 八十曰耋 百年曰期頤]”고 하였다.

[표1] 초충도의 나비


<석죽호접石竹胡蝶> 부분
《춘곡앵상春谷嘤翔》 부분


[표2] 나비 도안의 상징
* 출처 노자키 세이킨 저, 《중국미술상징사전》, p292, p350, p397




장수

수거모질壽居耄耋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도안

◎ 돌[壽石] 옆에 국화, 호랑나비,
고양이를 배치한 그림으로 도안


부귀
장수

부귀모질富貴耄耋
부귀와 장수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도안

◎ 모란 옆에 고양이와 호랑나비를 배치


자손 번성
[다남]

과질면면瓜瓞綿綿
자손이 번성하여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축원하는 도안

◎ 호박 위의 호랑나비[蝴蝶]
또는 호박만의 그림으로 도안
민화 속 나비

나비가 그려진 민화를 살펴보면 대개 크고 화려한 색과 문양을 지닌 호랑나비나 비단나비류가 주를 이룬다. 특히 산호랑나비는 양지바른 곳에서 날개를 편 채로 일광욕하는 습성이 있고, 관찰이 용이해서 다른 나비보다 많이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생태적 습성 덕분에 자세히 보고 비교적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나비 종류인 것이다.


(왼쪽부터) 도1의 나비부분 / 도2의 나비부분 / 신호랑나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나비와 함께 등장한 꽃과 새

민화의 나비 그림은 주로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도안이나 장수와 부귀를 함께 누리기를 축원하는 내용의 도안이 대부분이다. 가장 많이 그려진 나비 관련 그림은 모란과 나비 그림, 괴석과 모란과 나비 그림이다. 향기 없는 꽃 모란에 대한 이야기는 선덕여왕과 당시 사람들이 중국의 화풍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사절단을 보내면서 선덕여왕에게 벌과 나비가 없는 모란화를 그려 보냈다. 선덕여왕은 이 그림이 남편이 없는 자신을 농락한 것이라 했지만, 당시의 중국의 화풍을 알면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모란은 장수를 의미하고, 나비는 80세를 의미한다. 때문에 모란과 나비를 같이 그리게 되면, ‘80세까지 장수하라’는 의미로 한정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모란과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는 달리, 나비가 80세라는 나이보다는 장수라는 넓은 범위에서 이해되었기 때문에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려진 작품의 예를 상당히 많이 그려졌으며, 특히 민화에서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과 장수를 상징하는 나비를 함께 그려서 부귀와 장수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화조도>(도1)의 경우처럼 모란과 나비 그림에 수탉이 함께 그려져 부귀와 장수뿐 아니라 입신출세도 축원한 그림도 보인다. 수탉[雄鷄]은 영웅[雄]의 기상을 상징한다. 또한 수탉이 우는 것을 한자로 공계명共鷄鳴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공명은 공을 세워 이름을 드날린다는 공명功名과 발음이 같다.


도2 <화조도>, 19세기, 지본채색, 45×24㎝,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왼쪽) 도3 <화조도>, 20세기, 지본채색, 69×29.5㎝,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4 <화조도>, 19세기, 지본채색, 75×41.5㎝,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모란과 나비 그리고 꿩 암수 한 쌍이 함께 그려진 작품도 있는데(도3), 보통 암수 한 쌍의 새 그림은 부부화목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도2). 따라서 모란과 나비와 꿩 한 쌍의 도안은 장수와 부귀, 부부화목을 축원하는 의미를 지닌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꿩은 강인한 생존력을 자랑하며, 꿩의 꼬리는 무궁한 발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로 나비 그림은 나비 한 쌍이 국화꽃이나 모란꽃 주변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화조도>(도4)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괴석과 함께 어우러져 부부가 화목하게 부귀를 누리며 장수를 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또한 나비와 꽃과 괴석을 그린 그림은 여러 폭의 병풍으로 꾸미기도 하였다(도5). 화려한 색과 선명한 문양을 갖춘 나비가 많이 그려졌지만, 묘사하기 비교적 수월한 단색의 큰 나비도 자주 그려졌으며 나비 그림은 부채에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킬 뿐 아니라 병이나 삿된 것을 쫓는다고 믿어 부채의 나비 그림은 길상성이 배가 됐다.
나비 그림은 화원을 비롯한 직업전문화가나 문인들도 즐겨 그린 소재 중 하나였다. 백은배, 김석희, 서병건, 송수면 등에 의해 즐겨 그려졌고, 특히 남구만의 5대손인 남계우(南啓宇, 1811-1888)는 조선시대에 나비 그림의 일인자로 꼽혀 남나비[南蝶]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주로 나비를 즐겨 그렸으며 섬세하고 사실적인 필치를 보여준다(도6).


도5 <화조도>, 20세기, 지본채색, 51.5×26㎝×10,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6 <남계우필 군접도> 부분, 지본채색, 각 13.3×10.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풍습에 연유한 나비 도상의 상징성

나비는 그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과 길상적인 상징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림 소재 중 하나이다. 민화에 그려진 곤충 중 가장 많이 그려졌으며, 주로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그린 연유에 관해서는 나비의 생태적 특징뿐 아니라 나비 관련 풍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침에 호랑나비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고, 이른 봄에 호랑나비를 보면 신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길상적 회화인 민화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나비가 그려진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민화의 나비 그림은 민화에서 많이 그려졌던 호랑나비나 비단나비류의 크고 화려한 나비의 형태를 그리되 그 문양이나 채색은 참신한 상상력을 가하여 그려졌기에 세상에 없는 상상의 존재를 만들어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밖에 나비 도상은 풍류를 대표하는 도상이기기도 하며, 동아시아에서는 꽃과 나비를 연인 사이의 행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좋은 의미를 두루 담고 있는데다가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덕분에 나비 그림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다양한 화격을 지닌 그림으로 남아 있다.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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