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교수의 ‘짧은 글 긴 생각’ ⑧ 근대 민화 전개 방향에 영향을 준 채색표현주의 작가들Ι

근대 민화 전개 방향에 영향을 준 채색표현주의 작가들Ι

우리 민화가 근대적 변모를 드러내는 데는 ‘채색표현주의’ 작가들의 영향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잇는 근대기의 한국화는 크게 채색표현주의, 수묵표현주의, 심상표현주의로 구분된다.
이중 채색표현주의는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1853〜1920),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1919)과 연결되는 정재靜齋 오일영吳一英(1890∼1960), 춘전春田 이용우李用雨(1902∼1952),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1892〜1979),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1899〜1978) 등의 작품경향과 표현수법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채색표현주의 전문 작가들의 세련미와 격조 높은 〈고사·도석인물화>,〈동물화>,〈화조화>, <어해도〉, <기명절지도〉 등이 다름 아닌 민화의 주요 제재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설명하게 되는데, 민화의 범주에는 전문 작가들의 그림도 아주 많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알고 있듯이 이미 조선시대에도 궁중에 소속된 도화서 화원을 비롯한 일반 관官에 소속된 화원들이 품격 있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시대가 내려온 근대기에도 도화서는 폐지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으며 여전히 채색주의 전문 작가들에 의해 수준 높은 그려졌다. 이른바 근대기의 채색표현주의 작가들은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이나 관官에 소속된 화원들처럼, 민화의 범주에 속하는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고사인물화>,〈동물화>,〈화조화〉 등을 중점적으로 그려냈다.
추적해 살펴보면, 1894년에 단행한 갑오경장 개혁 과정에서 도화서는 거의 힘을 잃어버렸으며, 이후 반식민지로 떨어진 1905년 무렵에는 도화서가 완전 폐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때부터 채색표 현주의 전문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화 전문 작가들이 얼마간 국가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담당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1920년 창덕궁 재건 당시 조선왕실 최후의 궁중 채색화의 대작 벽화 6점을 그린 작가들은 다름 아닌 김규진, 노수현, 김은호, 오일영, 이상범, 이용우 등의 전문 직업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왕가의 명에 의하여 새로 지은 창덕궁 대조전을 비롯한 희정당, 경훈각 벽화를 놀라운 기량으로 그려냈다.
구체적으로,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의 좌우 벽에 걸린 가로 5m, 세로 2m 크기의 비단 채색화 〈봉황도鳳凰圖(등록문화재 제242호)>는 오일영과 이용우가 함께 그린 것으로 군왕의 덕치와 조선 왕실이 위엄을 기원한 작품이다. 또한 〈백학도白鶴圖(등록문화재 제243호)〉는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하얀 학 16마리가 날아와 장생을 상징하는 소나무에 앉는 모습을 화려하게 그린 작품이다. 아무튼 이 두 작품은 민화의 핵심적인 화제로 오늘날 우리 민화 작가들에게 하나의 교본처럼 인기리에 그려지고 있다.

 

글 : 김용권(문학박사/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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