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êµìˆ˜ì˜ â€˜ì§§ì€ ê¸€ 긴 ìƒê°â€™ ⑦ ì´ë°©ì¸ì˜ 눈으로 본 ê·¼ëŒ€ê¸°ì˜ ìš°ë¦¬ 민화Ⅱ

ì´ë°©ì¸ì˜ 눈으로 본 ê·¼ëŒ€ê¸°ì˜ ìš°ë¦¬ 민화Ⅱ

지난 호ì—서는 ê·¼ëŒ€ê¸°ì— ìš°ë¦¬ë‚˜ë¼ë¥¼ 왕래한 화가, 외êµê´€, êµ°ì¸, ì˜ì‚¬, êµìœ¡ìž, ìƒì¸, ì„ êµì‚¬, 여행가, íƒí—˜ê°€ 등
ì´ ì“´ ì±…ì´ë‚˜ 여러 기ë¡ë¬¼ì—는 우리 ì„œë¯¼ë“¤ì´ ì£¼íƒì„ 장ì‹í•˜ëŠ” ê´‘ê²½ì— ëŒ€í•œ 설명과 함께 다양한 ê·¸ë¦¼ì´ ë‚˜ì˜¨ë‹¤ê³  언급한 ë°” 있다. 1902ë…„, 프랑스 화가 ì¡°ì…‰ 드 ë¼ ë„¤ì§€ì—르(Joseph de la Nézière)ì˜ ì €ì„œ 『극ë™ì˜ ì´ë¯¸ì§€(Lʼextrême-Orient en Image)ã€ì— 그가 ê³ ì¢…ì„ ë§Œë‚˜ 그린 고종 í™©ì œì˜ ì´ˆìƒí™” ë°°ê²½ì˜ ã€Œì¼ì›”오봉ë„ã€ë¥¼ 통해서, 우리 ê¶ì¤‘ 장ì‹í™”ê°€ 계ì†í•´ì„œ ì´ì–´ì ¸ ì™”ìŒì„ 알 수 있다. 1919ë…„ì— ë°©ë¬¸í•œ ì˜êµ­ ì—¬ì¸ ì—˜ë¦¬ìžë² ìФ 키스(Elizabeth Keith, 1897〜1956)는 “한국ì—서는 ë°© ì¶œìž…ë¬¸ì˜ í° ë²½ì— ê°’ì‹¼ 종ì´ì— 그린 전통ì ì¸ ë¬¸ì–‘ì„ ë¶™ì´ëŠ”ë°, ì²˜ìŒ ë¶™ì˜€ì„ ë•ŒëŠ” ìƒ‰ê¹”ì´ ìœ ì¹˜í•˜ê²Œ ë³´ì´ì§€ë§Œ ì‹œê°„ì´ ì§€ë‚˜ 퇴색하면 아름답고 부드러운 색으로 변한다. í”히 여러 가지 ìƒ‰ì˜ ã€ˆìƒˆ 그림>ì´ ë“¤ì–´ê°€ëŠ”ë° ì´ëŠ” í–‰ë³µì„ ìƒì§•한다고 한다. 개는 ë„ë‘‘ì„ ë°©ì§€í•´ 주고, 사납게 ìƒê¸´ 사ìžë‚˜ 호랑ì´ì˜ 그림ì€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진다.â€ë¼ê³  아주 ìžì„¸ížˆ 기ë¡í•´ 놓았다. ë¿ë§Œ ì•„ë‹ˆë¼ ê·¸ëŠ” ì¡°ì„  ì‚¬ëžŒë“¤ì˜ ëª¨ìŠµê³¼ í’습 그리고 ê²½ê´€ì„ ì‚¬ì‹¤ì ìœ¼ë¡œ 그린 ê²ƒì„ ë‚¨ê²¨ 놓았다. 계ì†í•´ì„œ 엘리ìžë² ìФ 키스가 1945ë…„ì— ì“´ 《옛 조선고요한 ì•„ì¹¨ì˜ ë‚˜ë¼(Old Korea : the Land of Morning Calm)》는 ìš°ë¦¬ë‚˜ë¼ ì—¬í–‰ íƒë°©ê¸°ë¡œ, ì´ ì±…ì— ë‹´ê¸´ 〈한옥 ë‚´ë¶€(Korean Domestic Interior)〉,〈시골 결혼잔치(Country Wedding Feas, 1921)〉,ã€ˆê²°í˜¼ì‹ í•˜ê°(Wedding Guest, 1919)〉,ã€ˆí•œêµ­ì˜ ì‹ ë¶€(Korean Bride, 1938)ã€‰ë“±ì˜ ìž‘í’ˆì€ ê·¼ëŒ€ê¸° 우리 ë¬¸í™”ì˜ ìƒí™œìƒê³¼ 함께 민화 ì‚¬ìš©ì— ëŒ€í•œ í”ì ì„ í•œëˆˆì— ì‚´íŽ´ë³¼ 수 있는 귀한 ìžë£Œê°€ ë˜ê³  있다. ì´ì— 대해 ì¡°ìžìš©ì€ 엘리ìžë² ìФ í‚¤ìŠ¤ì˜ ì±…ì—서 해태, 호랑ì´, ë‹­, ê°œ, 호렵ë„, ìš©, 화조 ë“±ì˜ ìž¥ìƒé•·ç”Ÿê³¼ ë³µç¦ ìƒì§•ì˜ ë¯¼í™”ë¥¼ 확ì¸í•˜ì˜€ë‹¤ê³  ë§í•˜ì˜€ë‹¤. ë…ì¼ì¸ 신부로 한국ì—서 1909년부터 20ë…„ê°„ ì„ êµì‚¬ë¥¼ ì§€ëƒˆë˜ ì•ˆë“œë ˆ ì—카르트(Eckardt, Andreas.1884∼?)ê°€ 1929ë…„ì— ë…ì¼ì˜ ë¼ì´í”„찌히와 ì˜êµ­ 런ë˜ì—서 출간한 《조선미술사History of Korean Art》ì—는 ‘í˜í•„화’를 â€˜ìž¥ì‹ í•œìžâ€™ë¡œ 소개하고 있다. ë˜í•œ ë¯¸êµ­ì˜ ì—블린 매í”(Evelyn B. McCune, 1907〜)ì€ 1962ë…„ì— ë°œê°„í•œã€Ší•œêµ­ì˜ ë¯¸ìˆ (The Arts of Korea)ã€‹ì— ê²½ë³µê¶ì˜ 〈오봉산ì¼ì›”ë„äº”å³°å±±æ—¥æœˆåœ–ã€‰ì— ëŒ€í•´ 설명과 함께 ì‚¬ì§„ì„ ë‚¨ê²¨ 놓고 있다. ê·¼ëŒ€ê¸°ì— ì¼ë³¸ì¸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ê·¸ ëˆ„êµ¬ë³´ë‹¤ë„ ìš°ë¦¬ ë¯¼í™”ì— í° ê´€ì‹¬ì„ ê°–ê³  있었다. 그는 1919ë…„ 3ì›” ì¼ë³¸ êµí† (京都)ì—서 ì¼ë³¸ 민예품 ì „ëžŒíšŒì— ì¶œí’ˆëœ ì¼ë³¸ì˜ 토ì†ì  íšŒí™”ì¸ ì˜¤ì“°ì—(大津繪)ì— ë¯¼í™”ë¼ëŠ” ë§ì„ 처ìŒìœ¼ë¡œ 사용하였다. 그는 ë‹¹ì‹œì— ë¯¼í™”ê°€ ìƒí™œ ì†ì— 깊게 ìžë¦¬ 잡고 있었지만, 조선사람 중ì—는 ì´ ë¶„ì•¼ì— ëŒ€í•œ 연구를 한 ì‚¬ëžŒì´ ì—†ê³  ë¬¸í—Œë„ ì—†ì—ˆìœ¼ë©° ì •ë¦¬ëœ ì±…ë„ ì—†ì—ˆë‹¤ê³  당시 ìƒí™©ì„ 기ë¡í•´ 놓고 있다. ë˜í•œ 그는 ë‹¹ì‹œì— ìˆ˜ì§‘ê°€ë„ ì—†ì—ˆìœ¼ë©° 민화를 어디서나 소홀히 다루고 귀중하게 ë³´ê´€ë˜ì§€ 않고 ë³´ì¡´ê³¼ ê³„ìŠ¹ì— ìœ ì˜í•œ ì‚¬ëžŒì´ ì—†ì—ˆë‹¤ê³  기ë¡í•´ 놓고 있다. ë˜í•œ 그는 1937ë…„ 2ì›”, ì¼ë³¸ì˜ 월간 ã€Šê³µê°„ã€‹ì§€ì— ê¸°ê³ í•œ ã€ˆê³µì˜ˆì  íšŒí™”ã€‰ë¼ëŠ” 글ì—서 ‘민중 ì†ì—서 태어나고 ë¯¼ì¤‘ì— ì˜í•´ 그려지고 ë¯¼ì¤‘ì— ì˜í•´ 유통ë˜ëŠ” ê·¸ë¦¼ì„ ë¯¼í™”ë¼ê³  하ìžâ€™ê³  주장했었다. 계ì†í•´ì„œ 그는 1948ë…„ ã€Šë¯¸ì˜ ë²•ë¬¸ã€‹ì„ ì €ìˆ , 본격ì ìœ¼ë¡œ 한국 민화를 íƒìƒ‰í•˜ê¸° 시작하였으며 1956ë…„ì—는 ã€Šë¬´ìœ í˜¸ì¶”ì˜ ë¯¸ã€‹, 1957ë…„ì—는《조선화를 ë³´ë©´ì„œã€‹ì„ ë°œí‘œí•˜ì˜€ë‹¤. 그리고 1959ë…„ì— ë°œí‘œí•œ 《불사ì˜í•œ ì¡°ì„  민화》ì—서 민화ë¼ëŠ” 어휘를 ê³µì‹ì ìœ¼ë¡œ 붙였다. ì¼ë³¸ì¸ 병
êµ¬ì–‘ê´‘ì€ ê·¸ê°€ ì“´ ã€Šì¡°ì„ ì˜ ê³µì˜ˆã€‹ì—서 그림 재주가 있고 ë†ì‚¬ë¥¼ 짓기 ì‹«ì€ ì‚¬ëžŒì€ â€˜ë°©ëž‘í™”ì¸â€™ì´ ë˜ì–´ì„œ ì˜ì‹è¡£é£Ÿì„ 구하는 ì‚¬ëžŒì´ ì ì§€ 않았다고 기ë¡í•´ 놓고 있다. 그는 ‘방랑화ì¸â€™ë“¤ì´ 지방 ë¶€í˜¸ì˜ ì§‘ì— ê¸°ì‹í•˜ë©° 그들 ì¡°ë¶€ì˜ ì´ˆìƒí™”를 그렸다. ë˜í•œ ê·¸ë“¤ì€ ë§ˆì„ ì‚¬ëžŒì˜ í¬ë§ì— ë”°ë¼ â€˜ê¸¸ìƒí™”å‰ç¥¥ç•µâ€™ë¥¼ 몇 장씩 그려냈으며 집집마다 믿고 있는 ‘산신ìƒå±±ç¥žåƒâ€™ì„ 비롯한 í–‰ë³µì„ ê¸°êµ¬í•˜ëŠ” ê·¸ë¦¼ë“¤ì´ ê·¸ë ¤ì¡Œë‹¤ê³  기ë¡í•˜ê³  있다. ì´ë°–ì—ë„ ê·¼ëŒ€ê¸°ì— ì¡°ì„ ì„ ì°¾ì€ ë§Žì€ ì´ë°©ì¸ë“¤ì˜ ëˆˆì„ í†µí•´, 우리 ì„ ì¡°ë“¤ì„ ì§€ì¼œì£¼ì—ˆë˜ ì¢…ì´ì™€ ë¹„ë‹¨ì— ì„ ëª…í•˜ê²Œ 아로새긴 갖가지 ‘그림과 무늬’ 그리고 ‘문ìžâ€™ê°€ 조선시대가 ë¬¸ì„ ë‹«ì€ í›„ì—ë„ ê³„ì†í•´ì„œ 그려지고 í”히 사용ë˜ì—ˆìŒì„ 알려주고 있다.
 

글 : 김용권(문학박사/ê²½í¬ëŒ€í•™êµ êµìœ¡ëŒ€í•™ì› êµì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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