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교수의 ‘짧은 글 긴 생각’ ⑥ 이방인의 눈으로 본 근대기의 우리 민화Ⅰ

이방인의 눈으로 본 근대기의 우리 민화Ⅰ

근대기에 우리나라를 왕래한 외국인들이 쓴 책이나 여러 기록물에는 우리 서민들이 주택을 장식하는 광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그림이 나온다. 당시에는 인접한 일본이나 중국 외에도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서양의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때 화가, 외교관, 군인, 의사, 교육자, 상인, 선교사, 여행가, 탐험가 등 여러 서구 사람들이 내한했는데 바로 그들이 민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이나 기록물로 남겨 놓았다.
우리 민화가 세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1883년부터 1885년까지 조선의 광산사업 조사차 파견되었던 미국 해군장교 버나도(J.B. Bernadou)와 스미소니언박물관 연구원 주이(Pierre.L.Jour)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여러 지방을 돌면서 우리 민화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갔는데, 그때 구입한 민화를 미국 국립 박물관(현재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당시 버나도는 “조선인들이 집안 장식을 위해 상점에서 민화를 많이 사갔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890년 서울에 온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은 “광통교를 비롯한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에서 넓은 회랑回廊 안에 수많은 그림이 진열되어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는 기록을 남겨 놓았다. 또한 미국인 선교사이자 외교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알렌(Horace.N. Allen, 1858〜1932)과 1887년부터 1903년까지 프랑스 공사로 근무하였던 빅토르 골랭 드 플앙시(Victor 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수집한 물품 가운데는 민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도 역시 당시에 “조선 사람들이 민화를 팔고 사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는 기록을 남겨 놓았다.
한편 당시 민화는 외국인들에게 상품으로서뿐 아니라 민속학적 자료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1888년 프랑스의 민속학자인 바라(Charles Varat, 1842~1893)는 50일간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구입한 2,000여 점의 민화와 민속품을 1891년 ‘파리기메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이로써도 당시의 우리 민화가 얼마나 많이 향유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1900년대에 들어서서는 더욱 많이 민화가 향유되었다는 것을 이방인의 눈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서울에서 총영사로 거주했던 이태리인 까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1876〜1948)는 종각에서 동대문로 쪽으로 모여 있던 ‘복제화와 종이’를 파는, 즉 지전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몇 전만 주면 살 수 있는 용이나 호랑이, 날개 돋친 말, 옛 전사들의 환상적인 형상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이것들을 문짝에 붙여 놓고 집에서 악귀를 내쫓았다”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의 어느 집에나 같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라고 기록해 놓고 있으며, 이들 벽사용 그림들이 얼마나 범람했던지 “한국인들은 악령과 잡귀들의 세상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보이지 않는 귀신들에 대한 끊임없는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라고까지 언급해 놓고 있다. 또한 같은 해인 1902년에 조선을 다녀간 프랑스의 여행가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1874〜1927)가 1904년 발행한 저서 《Pauvre et Douce Coree》는 조선여행기로 조선의 문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서민들이 방을 훤하게(장식) 하기 위해 사서 붙이는 벽지용 그림이 아주 인상 깊었다”는 기록을 남겨 놓았다. 이렇듯 우리 민화는 근대기부터 이미 이방인들에게 주목의 대상이었 으며, 그들은 당시 미술시장의 중요한 고객 축이었다.

글 : 김용권(문학박사/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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