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êµìˆ˜ì˜ â€˜ì§§ì€ ê¸€ 긴 ìƒê°â€™ã‰ž 1970년대 ê³µë°©ì†Œì† ë¯¼í™”ìž‘ê°€ë“¤ì˜ í™œë™â…¢

1970년대는 ê³µë°©ì†Œì† ë¯¼í™”ìž‘ê°€ë“¤ì„ ë‹¤ë¥´ê²Œ 주목하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70년대 중반 ì´íƒœì›ì— 소재한 무역회사 ‘ì—지당’ì—, 앞선 글ì—서 언급한 ë°” 있는 ì´ê·œì™„, 박수학, 정하정 ë“±ì´ ì „ì† ì§ì›ìœ¼ë¡œ 근무하면서 <ì¸ë¬¼ í’ì†ë„>, <ì—°í™”ë„>, <화조ë„> ë“±ì„ ê·¸ë ¤ ë¯¸êµ­ì— ë‚©í’ˆí–ˆë‹¤ëŠ” 것ì´ë‹¤. ë‹¹ì‹œì— ì´ë“¤ì€ 미국 백화ì ì— 소개하기 위해 민화 작품 íŒœí”Œë ›ì„ ì œìž‘í•´ ì„ ì „í•˜ê¸°ë„ í–ˆë‹¤. 다ìŒìœ¼ë¡œ 70년대 후반ì—는 그림 장사(낮가마)ê°€ ì¸ì‚¬ë™ì— 소재한 예진다방, ì˜ë‹¤ë°©, ì œì¼ë‹¤ë°©, 길다방 등ì—서 ëˆì„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 민화 ìž‘ê°€ë“¤ì´ ê·¸ë¦¼ì„ ê°€ì§€ê³  나오면 ê·¸ ê·¸ë¦¼ì„ ì‚¬ê°€ì§€ê³  ì „êµ­ì—서 íŒë§¤í–ˆë‹¤. ì´ë ‡ê²Œ ê±°ëž˜ëœ ë¯¼í™”ê°€ 현재 ê° ì§€ì—­ 관공서와 호텔 그리고 ìŒì‹ì  ë“±ì— ê±¸ë ¤ 있는 ê²ƒì„ ìƒˆì‚¼ 확ì¸í•˜ê²Œ ëœë‹¤.
그리고 1970년대ì—는 ë¯¼í™”ì˜ í•œ ì¶•ì´ê¸°ë„ 한 낙화 작가들과 í˜í•„í™” ìž‘ê°€ë“¤ë„ ë³´ë‹¤ 뚜렷한 활ë™ì„ 보여주었다. 벽산碧山 최수성崔守æˆ(1931〜?)ì€ ëŒ€í‘œì ì¸ 낙화 작가로, 1965년부터 낙화烙畵를 시작하여 40ë…„ 넘게 작업해 오면서 ì„ ë¬˜ì— ì˜ì¡´í•˜ë˜ ê¸°ì¡´ì˜ ë‚™í™” ê¸°ë²•ì„ ë„˜ì–´ì„œ ì›ê·¼ë²•ì„ ë™ë°˜í•œ 산수화나 ì´ˆìƒì˜ 낙화를 개발하여 대중으로부터 í° ì‚¬ëž‘ì„ ë°›ì•˜ë‹¤. 1967〜1977년까지 약 10ë…„ê°„ì€ í•œêµ­ë¯¼ì†ì´Œì— 초빙ë˜ì–´ 전통 초가ì—서 낙화 ê³µë°©ì„ ìš´ì˜í–ˆëŠ”ë°, ì´ë•Œ í˜í•„화가 í™ì§€ì„±ì„ 만나 í˜í•„ì„ ë°°ì›Œ ë˜ ë‹¤ë¥¸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ë다.
한편 í˜í•„í™” ìž‘ê°€ë“¤ì€ ì£¼ë¡œ ì¸ì‚¬ë™ì´ë‚˜ 민ì†ì´Œ, 수ì›í™”성, 롯ë°ì›”드 민ì†ë°•물관 등ì—서 활ë™í–ˆë‹¤. 대표ì ì¸ í˜í•„화가로 태암 ê¹€ì¤‘ê³¤ì˜ ì œìž ë…¸ìƒìœ¤(1933〜)ê³¼ 팔산 í™ì§€ì„±ì˜ ì œìž ì²­ì‚° ì •í™ì£¼ 그리고 앞서 언급한 최수성 ë“±ì„ ë“¤ 수 있다. ë…¸ìƒìœ¤ 작가는 1933ë…„ 경남 창녕ì—서 태어나 26살부터 50여년 ë™ì•ˆ í˜í•„í™”ì˜ ê¸¸ì„ ê±¸ì–´ 왔다. 그는 ì°½ì›êµ° ìƒë‚¨ 장터ì—서 좌íŒì— 백지를 펼ì³ë†“ê³  울긋불긋한 ê·¸ë¦¼ì„ ê·¸ë ¤ëŒ€ëŠ” 스승 태암 ê¹€ì¤‘ê³¤ì˜ ëª¨ìŠµì— ë§¤ë£Œë˜ì–´ 스승 ì§‘ì—서 숙ì‹í•˜ê³  ìž¥í„°ì— ë”°ë¼ë‹¤ë‹ˆë©° ê·¸ë¦¼ì„ ë°°ì› ë‹¤. 몇 í•´ 후, 그는 스승과 함께 목í¬, 여수 등 항구ë„시와 안ë™Â·ì „주·경주·단양 등 유êµì‚¬ìƒì´ 깊고 ì „í†µì´ ì‚´ì•„ìžˆëŠ” ê³ ìž¥ì˜ í–‰ì‚¬ìž¥ì´ë‚˜ 장터ì—서 활ë™í–ˆë‹¤.
í™ì§€ì„±ì€ í•œêµ­ì „ìŸ ë•Œ 혈혈단신으로 남하하여 스님ì—게 í˜í•„ì„ ë°°ìš°ê³  ì „êµ­ 장터를 누비다가 한국민ì†ì´Œì´ 개장ë˜ìž 1974년〜1992년까지 그곳ì—서 í˜í•„ ê³µë°©ì„ ìš´ì˜í–ˆë‹¤. 당시 í™ì§€ì„±ì€ 관광ê°ë“¤ì—게 대단한 ì¸ê¸°ê°€ 있어 유명 ì¸ì‚¬ê°€ ë˜ì—ˆìœ¼ë©°, 사후 여러 ì œìžë“¤ì´ ê·¸ì˜ ë§¥ì„ ì´ì–´ì™”다. í™ì§€ì„±ì˜ ì œìž ì²­ì‚° ì •í™ì£¼ëŠ” 전문 사진 작가였으나 한국민ì†ì´Œì—서 그를 만나 í˜í•„í™”ì— ë§¤ë£Œë˜ì–´ ìƒì—…ì´ì—ˆë˜ ì‚¬ì§„ì„ ë’¤ë¡œ 하고 í˜í•„화를 배우게 ëœ ê²ƒì´ë‹¤. ì´í›„ 경복ê¶ê³¼ ìˆ˜ì› í™”ì„±, ì‚¼ì²­ë™ í•œì˜¥ë§ˆì„, 세계 ê°êµ­ì„ 오가며 í˜í•„화를 ì•Œë¦¬ëŠ”ë° ì „ë…했다. ê·¸ë™ì•ˆ êµ­ë‚´ì™¸ì— 70ì—¬ ëª…ì˜ ì œìžë¥¼ 길러냈으며 여전히 ë°œí’ˆì„ íŒ”ë©´ì„œ í˜í•„í™” ëŒ€ì¤‘í™”ì— ì•žìž¥ì„œê³  있다. í™ì§€ì„±ì˜ ë˜ ë‹¤ë¥¸ ì œìž ìµœìˆ˜ì„±ì€ ì•žì„œ ì–¸ê¸‰í–ˆë˜ ê²ƒì²˜ëŸ¼, 1970년대 낙화 작가로 활ë™í•˜ì˜€ìœ¼ë‚˜ 1975ë…„ì— íŒ”ì‚° í™ì§€ì„± ì„ ìƒìœ¼ë¡œë¶€í„° í˜í•„í™” ê¸°ë²•ì„ ì´ìˆ˜ ë°›ì€ í›„ 낙화보다는 í˜í•„ì„ ì£¼ë¡œ 그렸다. 벽산 ìµœìˆ˜ì„±ì˜ í˜í•„ì€ í™”ë ¤í•œ êµ¬ì„±ë ¥ì´ ë‹ë³´ì¸ë‹¤. 그는 1994ë…„ 제주민ì†ì´Œì— ‘낙화í˜í•„’ ê³µì˜ˆë°©ì„ ìš´ì˜í•˜ë©´ì„œ ì¼ë³¸ì„ ìžì£¼ 왕래하면서 왕성한 활ë™ì„ 보여주었다. ì´ë°–ì—ë„ ê°•ì™„ì£¼, 김민ì„, 박재창 ë“±ì´ í˜í•„화가로서 활발히 활ë™í–ˆë‹¤.
한편, í˜í•„작가는 민화, 문ìžë„, ìƒìƒ ë™ë¬¼ ë“±ì— ëŒ€í•´ì„œë„ í•´ë°•í•œ ì§€ì‹ì„ 갖춰야 하지만 ë¶“(주로 대나무, 버드나무, 양가죽, 소가죽, 사슴가죽, 낙타가죽 ë“±ì´ ì‚¬ìš©)ê³¼ 물ê°(천연 염료를 구입해 ê°€ë§ˆì†¥ì— ë¬¼ì„ ë“ì—¬ ê¹€ì„ ì˜ì—¬ê°€ë©´ì„œ ì•½ê°„ì˜ ì‹ì´ˆë¥¼ 넣거나 ì†Œê¸ˆì„ ë„£ì–´ ë§‘ì€ ìƒ‰ì„ ë§Œë“¦)ì„ ë‹¤ë£¨ëŠ” ëŠ¥ë ¥ì´ êµ‰ìž¥ížˆ 중요하다.

글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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