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êµìˆ˜ì˜ â€˜ì§§ì€ ê¸€ 긴 ìƒê°â€™ã‰œ 1970년대 ê³µë°©ì†Œì† ë¯¼í™”ìž‘ê°€ë“¤ì˜ í™œë™

우리 민화는 민족문화와 ì „í†µë¯¸ìˆ ì´ í¬ê²Œ ì£¼ëª©ë°›ë˜ 1970ë…„ëŒ€ì— ê·¹ê³¼ ê·¹ì„ ë‹¬ë¦¬ëŠ” ëŒ€ì ‘ì„ ë°›ì•˜ì§€ë§Œ 대체ì ìœ¼ë¡œ 우리 ë¯¼í™”ì— ëŒ€í•œ ê´€ì‹¬ì´ ì ì°¨ 높아지는 시기였다고 í•  수 있다. ì´ì™€ ê°™ì€ ì‹œëŒ€ì  ìƒí™©ì—서 60년대 후반부터 ëª¨ìŠµì„ ë“œëŸ¬ë‚¸ 파ì¸èŠ­äºº 송규태宋圭å°(1934-), 경산景山 송윤안宋å…安(1938-?), 고안å¤å²¸ 김만í¬é‡‘è¬ç†™(1931-2018) ë“±ì´ 1970년대 ì´ˆë°˜ì— ë”ìš± 활발한 활ë™ì„ 보여주었다. ë‹¹ì‹œì— ì´ë“¤ì€ 전통 민화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수정, 보수하는 ë‹¨ê³„ì— ë¨¸ë¬¼ëŸ¬ 있었으나 간간히 새로운 ë„ìƒì´ë‚˜ ê¸°ë²•ì„ ì„ ë³´ì´ê¸°ë„ 했다. 한마디로 당시 ê·¸ë“¤ì˜ ìž‘ì—…ì€ ê·¼ëŒ€ì  ì„±í–¥ì´ ê°•í–ˆë‹¤ê³  í•  수 있겠으나, 현대 ë¯¼í™”ì˜ ê¸°ë³¸ í† ì–‘ì´ ë˜ê¸°ë„ 했다.
송규태는 1990년대 초까지 ë³µì›ë¯¸ìˆ ê³¼ ê³ í™”ìˆ˜ì •ìž‘ì—…ì„ í•˜ì˜€ìœ¼ë©° 1994ë…„ì— ìš´í˜„ê¶ì—서 첫 ê°œì¸ì „ì„ ê°œìµœí–ˆë‹¤. ê·¸ì˜ ê°€ìž¥ í° ì—…ì  ì¤‘ 하나는 전통 ë¯¼í™”ê¸°ë²•ì„ ë°•ìˆ˜í•™ì—게 ì „ìˆ˜í•¨ìœ¼ë¡œì¨ ì „í†µ 민화와 현대민화를 ìžì—°ìŠ¤ëŸ½ê²Œ 연결시키는 ê°€êµì—­í• ì„ 했다는 ì ì´ë‹¤. ì†¡ìœ¤ì•ˆì€ 1970ë…„ëŒ€ì— ì´ì–´ 1980년대ì—ë„ í™œë°œí•œ 활ë™ì„ 보여주었는ë°, 그는 미ë„파 화랑과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등ì—서 <ì‚°ì‹  그림>ê³¼ <í˜¸ëž‘ì´ ê·¸ë¦¼>으로 15회 ê°œì¸ì „ì„ ì—´ì–´ ì´ë¦„ì„ ì•Œë ¸ë‹¤. 그는 1990ë…„ëŒ€ì— ì§€ë³‘ìœ¼ë¡œ 별세했지만 ê·¸ì˜ ì „í†µê¸°ë²•ì€ ì´ê·œì™„ì—게 전수ë¨ìœ¼ë¡œì¨, 역시 전통 민화가 현대 민화로 ì—°ê²°ë˜ëŠ”ë° í° ì—­í• ì„ í–ˆë‹¤ê³  í•  수 있다. 김만í¬ëŠ” ìžì‹ ì´ ì–´ë ¸ì„ ë•Œì¸ 1930년대부터 1960ë…„ëŒ€ê¹Œì§€ì˜ ê¸°ì–µê³¼ ì²´í—˜ì„ ë°”íƒ•ìœ¼ë¡œ 1968년부터 본격ì ìœ¼ë¡œ 민화를 그렸으며, 최근까지 왕성한 활ë™ì„ 하면서 현대 민화 ì „ê°œ ë°©í–¥ì— í° ì—­í• ì„ í–ˆìœ¼ë‚˜ 안타ê¹ê²Œë„ 2018ë…„ 6ì›”ì— íƒ€ê³„í–ˆë‹¤.
70년대 중후반부터는 앞선 송규태, 송윤안, ê¹€ë§Œí¬ ì™¸ì—ë„ ì´ê·œì™„, 정하정, 박수학 ë“±ì˜ ì Šì€ ìž‘ê°€ë“¤ì´ ëˆˆì— ë›°ëŠ” 행보를 보였다. 당시ì—는 ë¯¸ìˆ ëŒ€í•™ì„ ê°€ì§€ 않으면 ê³µë°©ì— ë“¤ì–´ê°€ ê·¸ë¦¼ì„ ë°°ìš°ëŠ” í’토였다.
ì´ë“¤ ëŒ€ë¶€ë¶„ì€ ìƒê³„를 위해 ìž‘ì—…í•˜ë©´ì„œë„ í•˜ë‚˜ê°™ì´ ìž‘ê°€ì  ì—´ì •ì„ ìŸì•˜ìœ¼ë©°, 전통ì ì¸ 민화 ì–‘ì‹ì˜ 수용과 함께 ê°„í—ì ìœ¼ë¡œ 창작민화를 ê·¸ë¦¬ê¸°ë„ í–ˆë‹¤. ì´ê·œì™„ì€ 70년대 초반부터 박수학, 정하정과 함께 ê·¸ë¦¼ì„ ë°°ì› ìœ¼ë©° 1973년부터 본격ì ìœ¼ë¡œ í™”ë‹¨ì— ë‚˜ì™€ 활ë™í•˜ì˜€ë‹¤. 그는 1967ë…„ ì•„ë™ë§Œí™”를 ê·¸ë¦¬ë˜ ì¤‘ì— ì§‘ì•ˆ ì–´ë¥¸ì˜ ì†Œê°œë¡œ ê°•í¬ì›ì„ 만나 1968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화를 사사받았다. 그는 당시 ë‚®ì—는 한국화를 공부하고 ë°¤ì—는 만화를 그렸다. ì´ë ‡ë“¯ 그가 ì£¼ê²½ì•¼ë… ê²©ìœ¼ë¡œ ê·¸ë¦¼ì„ ê·¸ë¦¬ìž ê°•í¬ì›ì´ ì†¡ìœ¤ì•ˆì„ ì†Œê°œí•´ ê·¸ì˜ ì œìžê°€ ë˜ì–´ 민화를 그리게 ë˜ì—ˆë‹¤. ë˜í•œ ì´ê·œì™„ì€ 24세 때 당시 í™˜ê°‘ì„ ë§žì´í–ˆë˜ ì¼ë´‰ä¸€å³° 왕사조王師祚를 만나 ê·¸ì—게 ì˜í–¥ì„ ë°›ì€ ë™ì‹œì— 1973ë…„, 그보다 8ì‚´ ë§Žì€ ë°±ìš´ç™½é›² ê¹€ì˜ë¯¼ì—ê²Œë„ ì‚¬ì‚¬ë°›ì•˜ë‹¤. í˜„ìž¬ê¹Œì§€ë„ ì´ê·œì™„ì€ ë¯¼í™” 작가로서 활발히 활ë™í•˜ê³  있다. 그는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구성과 ì°½ìž‘ë¯¼í™”ì˜ í™œì„±í™”ì— í¬ê²Œ 기여한 ë™ì‹œì—, 한국국제민화êµë¥˜í˜‘회 ìš´ì˜ì„ 통해 민화 세계화ì—ë„ ì•„ì£¼ í° ê³µí—Œì„ í•˜ê³  있다.


글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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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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