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73)

조선시대 도화서 조직의 변모 과정 Ⅲ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숙종 연간에는 도화서 화원들이 생계에 고민하지 않고 도화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화사군관畵師軍官이라는 매우 특별한 처우 개선책도 시행되었다. 즉 화사군관은 화원을 지방 관아에 군관으로 파견하여 2년간 관방 지도를 제작하거나, 통제영과 병영, 수영 등에서 쓸 군사 용도의 그림을 제작하는 임무를 맡아 근무하며 급료를 받게 하는 제도이다. ‘화사군관’이라 불렀으나 비장화사裨將畵師, 영비화사營裨畵師, 외막화사外莫畵師 등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화사군관 제도는 1695년(숙종25) 4월 2일에 화원 허의순許義順(?~1712) 등이 ‘호구지책’으로 8도의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도화서 화원을 군관으로 데려가는 제도를 ‘정식’으로 분부해 줄 것을 상언上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그 무렵부터 화사군관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제도적으로 분명하게 정례화되어 시작된 것은 1703년(숙종29)~1704년(숙종30) 무렵부터이다.

처음에는 화사군관을 각 도의 통제영과 병영, 수영 등 14군데에 파견했으나, 1740년(영조16년)부터는 관찰사觀察使가 업무를 보는 각 지역의 감영監營으로까지 확대되어 전국 21곳에서 시행, 파견되어 근무하였다.

화사군관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지방 관아나 공 기관에 배설할 주요 장식 그림 제작을 위해 중앙의 도화서 화원들을 그때그때 말을 태워 보내었다. 또한 한편으로 지방의 방외화사나 외방화사들 역시 화사군관 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관아나 군 기관에 필요한 장식 그림을 맡아 그렸다. 예컨대 화사군관 제도가 정식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인 1601년(선조 34년) 2월 1일에 수원부 소속으로 ‘화공畵工 정업수鄭業水’가 활동했으며, 동래부 소속 화공 ‘변박卞璞, 변곤卞崑, 이시눌李時訥’ 등도 활발하게 활동했었다.

끝으로 화사군관 제도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예컨대 ≪일성록≫에는 “1786년(정조 10년) 전까지는 정례화되지 않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867년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병영과 수영의 파송 화원들 대신 실생도로 윤차輪差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화사군관 제도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지방제도가 전면적으로 개편되는 1895년 3월 18일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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