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67) 조선시대 화원 제도Ⅰ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도화서는 조선시대의 국가에서 설치한 회화 전문 관청이다. 주로 중인계층이 지원하는 잡과雜科 기술직으로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회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른바 조선시대 잡과 기술직 교육에는 유학儒學 교육을 제외한, 무과교육, 외국어교육, 의학교육, 미술교육, 음악교육, 천문교육 등의 학과가 운영되었다.
이에 조선시대 잡과雜科 기술직 운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넘어가면 아래와 같다. 조선전기인 태조 2년(1393)에 잡과 시험을 위한 기술직인 율학律學, 자학字學, 역학譯學, 의학醫學, 산학算學이 설치되었다. 이어 태종 6년(1406)에 이학吏學, 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 악학樂學이 더 설치되었다가 현실적 요구에 의해 이학과 자학은 제외되었으며 그 대신에 화학畵學과 도학道學이 새로 편입, 운영되었다.
당시의 잡과 기술학 교육은 중앙의 경우, 각기 소관 아문에서 실시하였다. 즉 인문 교육학처럼 별도의 교육기관에서 조선시대 잡과 기술학을 가르치지 않고, 각각의 부서에서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필요한 인원을 그때그때 뽑아쓰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각 기관에서 교육받은 자가 아니더라도 식년시, 증광시 등의 시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습득한 자들에게 자격을 주고 등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국가 경영에 필요한 기술직 관료를 확보하기 위해 잡과 교육을 제도적, 체계적으로 설치, 운영하였다.
이쯤에서 본격적으로 잡과 기술직 중 하나인 예조禮曹 소속의 도화서 도화 기구의 규정과 구성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선 글에서 일면 설명했듯이, 조선전기에는 고려의 도화원圖畫院 도화 기구를 그대로 이어 운영했다. 이성계가 1392년 7월 17일 등극하고 즉위 다음 날 고려제도의 연혁과 장단점을 아뢰게 한 후 7월 28일 관제를 정했는데, 이때 고려의 도화원을 그대로 계승,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어 정종대인 1400년에 문하부의 상소에 의하여 쓸데없는(한도를 넘는) 녹봉을 줄이기 위해 녹관祿官, 즉 비유품非流品 잡직 부서에 있는 정직正職의 관직을 없애
야 할 관아의 한 곳으로 도화 화원이 지명되면서 처음 기록되었다.
이후 태종대(1401〜1418)에 의정부가 창설되고 6조 직계제가 도입돼 국왕 중심 체제로 새롭게 개편되면서 도화원은 예조 소속의 외정 기구로 편입되며 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태종4년(1404) 10월 6일에 한양으로 도읍을 다시 정하여 옮긴 다음 해인 1405년 초에 관제를 개정하면서 도화원을 예조禮曹로 배속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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