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66) 화원畵員 명칭에 대하여Ⅱ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좁은 의미에서 화원畵員은 중인계층의 신분으로 도화서圖畵署와 같은 국가의 공식 기구에 몸담아서 활동하던 화가들만을 일컫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화업畵業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꾸렸던 모든 직업 화가들을 지칭한다.
화원은 활동 지역에 따라 경화사와 외방화사로 구분해 불러지기도 했다. 전자의 경화사는 도화서 화원을 비롯해 도화서 밖의 한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방외화사方外畵師와 도화서에서 일한 적이 있었던 화사, 그리고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양의 돈이 많은 거상巨商들 밑에서 활동한 사화원私畵員 등을 말한다. 후자의 외방화사(방외화사, 재외화사)는 지방 관청, 군영, 여타의 공 기관과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사와 지방의 돈이 많은 거상들이 거느린 사화원私畵員 등을 말한다.
화원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화공畫工과 화사畫師(화사畵士·화사畫史) 화수畫手 등과 같은 호칭들은 대부분 그림에 전문적인 기예를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쓰였지만, 이와 같은 호칭에는 화사畵師, 화원畵員, 화공畵工, 화수畫手 순으로 약간씩의 위계位階에 대한 차별적인 개념이 개재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추적해보면 고려시대의 화공은 도화서 생도와 유사한 것으로, 오래 종사하여도 벼슬을 제수 받지 못한 관직 없는 화가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화공은 천류賤流에 속하는 공장工匠의 지역성과 신분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으며, 의궤의 공장질工匠秩 등에서 화사畫師와 함께 화원과 다른 유형의 화가 명칭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또한 화원이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제작에 참여할 때에 그것을 주관하던 우두머리 화원을 주관화사主管畵師, 제작에 동참하여 그를 보좌하던 화원을 동참화원同參畵員, 맨 밑의 보조화원을 수종화원隨從畵員이라 불렀다.
어떻든 이상의 화원 명칭은 관찬官撰 기록상으로 볼 때 조선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다가 대한제국기인 1908년에 사라졌다. 1900년대 후반부터 근대 일본을 매개로 한 본격적인 개념미술이 파급되면서 근대적 개념의 예술가인 ‘화가’로 명칭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그간 통용되던 ‘화원畫員’, ‘화사畫師’, ‘화공畫工’ 등의 명칭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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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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