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65) 화원畵員 명칭에 대하여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조선시대 화단은 사대부 중심의 여기화가군餘技畵家群과 중인계층 신분의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을 중심으로 한 직업화가군職業畵家群으로 구분된다. 이때 화원은 후자의 직업화가군에 속하는데 그 개념은 다소 포괄적이고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직업화가군에는 도화서 화원과 한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경화사京畵師 그리고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방외화사方外畵師(외방화사外方畵師, 재외화사在外畵師) 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화원은 궁중작화기관인 도화서에 소속된 궁중화가들과 지방에 파견된 화사군관畵師軍官을 비롯한 관아나 병영 그리고 여타의 공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한 방외화사 등을 말한다. 더 나아가 때로는 국가에 소속되지 않고 활동한 모든 사화원私畵員을 통칭하기도 한다.
화원이란 명칭은 조선전기부터 불교 탱화인 ‘불족佛簇’을 그린 화승의 이름 앞에 소임명所任名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화원 명칭은 1405년에 작명대어 도화원의 예조 배속에 수반되어 작명되었고, 1417년(태종 17) 4월 2일자 《태종실록》에 처음 나타난 이후, 성종대의 《경국대전》의 예조禮曹 종6품從六品 아문衙門 소속으로 법제화되었다.
이른바 ‘화원’은 도화서 관원의 명칭으로 작명되었다. 도화서는 도화에 관한 국역國役 또는 관역官役 담당하던 조선시대 관서官署이고, 그림을 그리던 도화서 소속의 화원畵員의 ‘원員’은 하급 관직에 있는 공무원 즉, 관원官員을 뜻하였으며, ‘도화서관원’, ‘도화서원’, ‘도화서화생’으로도 불리었다. 이와 같은 도화서 화원은 관직이 있는 의관을 갖춘 화가(유직의관인有職衣冠人)라는 뜻으로 작명되었다. 이런 칭호는 일본에도, 고려에도 없었으며, 근세 일본에서는 조선 도화서 화원을 ‘화관畵官’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전기의 1471년에 나온 《경국대전》<신묘대전>에는 1471년(성종 2)에 대사헌 양성지梁誠之(1415∼1482)는 화공畫工이란 명칭에 비해 관원적인 성향이 강한 화원이란 명칭을 못마땅하게 여겨, “공장천예잡직자工匠賤隸雜職者에게 ‘원員’의 칭호를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1472년(성종 3) 대사헌 김지경金之慶(1419∼1485)도 “공장工匠인 화원 대우 문제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떻든 화원은 조선 전기부터 대한제국기인 1908년까지 줄곧 나타나며, 조선왕조 전 시대를 통해 유외잡직流外雜職의 하급 관직에 있는 공무원 화가로서 국역國役 또는 관역官役뿐 아니라, 사적인 주문에도 응하며 각 시기의 회화사 전개에 막중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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