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64) 고려시대 화원 제도Ⅲ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고려 도화원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조선전기의 아래와 같은 기록으로 당시의 실황에 대해 유추할 수 있다. 먼저 정도전鄭道傳이 조선시대 통치 조직의 종합 체제를 제시하였을 때, “화소공畵塑工을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공부工部 속에 둔다”고 언급하였다. 이른바 조선전기에 정도전鄭道傳이 지어 바친 《조선경국전(1394.5.30)》를 통해 고려시대에는 ‘화공畵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이들은 공조工曹 소속의 아문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추적해보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통해서도 도화원은 공조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도화원에 소속되어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었던 이광필과 고유방 등의 이름 앞에 ‘화공’이란 명칭이 붙어 지칭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전기 태종대(재위 1400-1418) 기록에 따르면 좌우상左右相의 정승政丞이 실안도제조實案都提調를 맡아 도화원을 관장했고, 지신사知申事(도승都承旨지)가 실안부제조實案副提調를 맡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조선전기인 1464년(세조10)까지 고려시대와 같은 5품 관아로서 5품직의 별좌別坐가 도화원 실무를 담당하였다. 도화원이 도화서로 개칭되면서 종6품아문으로 격하된 시기는 1470년(성종 1)이다.
이처럼 조선전기의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보아도 고려시대 중앙 직제에 도화원이 설치돼 활발하게 운영되었다는 것과 국왕이나 왕실과 밀착된 관서였음을 알 수 있다. 도화원의 실무를 맡은 3품의 제거提擧와 5품의 별좌別坐는 직급이 꽤 높은 편이었으며 화원이 별좌를 맡아 직접 도화원의 운영에 참여했기에 화원직에 대한 규제나 천시 풍조가 거의 없었다. 국초의 도화원 정원은 4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고려시대 도화원 정원도 40여명으로 짐작되나, 이 가운데는 그림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시파치時波赤라 불리던 2품 이상 고관의 서자庶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 제도와 마찬가지로 20명 정도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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