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63) 고려시대 화원 제도Ⅱ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도화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대표적인 화공 이녕李寧, 이광필李光弼, 고유방高維訪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2세기 중·후반기에 활동한 화공 이녕李寧은 궁중 회화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했으며 <예성강도禮成江圖>,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 등을 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1124년(인종2) 추밀사 이자덕李資德을 따라 수행화원으로 북송에 갔다가 송의 황제 휘종徽宗의 요청으로 <예성강도>를 그렸다고 한다.
그의 영향력은 명종明宗(재위1740〜1197)대에 활동한 아들 이광필李光弼로 이어졌으며, 고유방 역시 명종대의 대표적인 화공으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한편, 고려시대 도화원에 대해서는 당시의 관리, 문신으로 활동한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에 기록되어 있는 화국畵局’, ‘채공彩工’ 등의 명칭을 통해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昔睿王時 畵局李寧犬工山水
李仁老의 《破閑集, 中卷》天壽寺 條

癸己冬 定山縣雜鳩驛新修公館畢, 請工施壁 彩工 當時妙手, 姓朴亡名
《 破 閑 集 , 下卷》

위 기록에서의 화국畵局은 바로 중앙 정부의 도화원을 말하며, 그곳에서 활동한 화원을 ‘채공採工’ 또는 ‘화공畵工’ 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도화원 제도는 조선왕조로 그대로 이어져 시행되었다. 개국 된지 8년이 지난 뒤에 갱신안更新案이 제기되었으나 1471년 성종대(재위1469∼1494)까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고려 도화원과 관련된 정보는 조선전기의 도화원 제도를 통해서도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11월호 지면에 보다 자세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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