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60) 한국의 화원畵院 제도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우리나라 회화사상 화원畫員들의 기여는 너무도 방대하고 지대至大했으며, 우리 민화사民畵史에서도 화원들의 역할은 가장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이에 이번 호부터 얼마간은 ‘한국의 화원제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직업화가로서의 화원은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배출되었고 또 제일 두드러지게 기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삼국시대부터 국가 기관에 화원畵院이 세워졌고 제도와 조직 등에 체계화되었다. 이른바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그림을 관장하는 관서를 설치해 신라의 채전彩典, 통일신라의 전채서典彩署, 고려의 도화원圖畵院, 조선의 도화서圖畵署 등으로 화원이 면면히 이어졌다.
삼국시대부터 화원들이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한 흔적과 사행단의 일원으로 중국과 일본에 건너가 외교활동은 돕고 문화교류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아쉽게도 신라만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경로로 추적해보면 고구려와 백제에도 화원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믿어진다. 이와 같은 흔적을 입증하여 주는 직접적인 자료는 삼국의 고분벽화이다. 즉 오늘날 확인되는 삼국의 고분벽화는 회화를 전문으로 하던 화공畵工들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한편 간접적인 자료인 《일본서기》나 《쇼토쿠태자전력聖德太子傳歷》의 기록을 통해 고구려, 백제의 화공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 활동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로써도 고구려, 백제에 화원 제도와 조직 등이 체계화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위자료에는 고구려의 가서일加西溢과 자마려子麻呂, 고구려계의 화사씨족畵師氏族인 기부미노 에시(황문화사黃門畵師)와 야마시로노 에시(산배화사山背畵師)가 활동하였다고 적혀 있다. 구체적으로 고구려 출신으로 확인이 되는 화가로는 황문화사黃文畵師, 산배화사山背畵師의 이름을 가진 화가들, 담징曇徵, 가서일加西溢, 자마려子麻呂 등을 들 수 있다.
담징은 610년(고구려 영양왕 21)에 일본으로 건너가 호오류사(법륭사法隆寺)의 <금당벽화>를 그렸으며, 가서일加西溢과 자마려子麻呂 등도 화가로써 일본으로 건너가 크게 활약했다. 한편 일본 국보 다카마쓰즈카 벽화(高松塚古墳, 아스카 시대인 7〜8세기경) 역시 고구려인 황문화사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로써도 삼국시대의 우리나라가 일본회화의 발전에 공헌했음을 말해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끝으로 백제 출신의 화공인 백가白加, 인사라아因斯羅我, 하성河成 등의 화공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백제계의 화사씨족인 가와치노 에시(하내화사河內畵師)가 활동했다, 또한 신라계의 화사씨족으로 간주되는 수하타노 에시(책진화사簀秦畵師)등도 일본에서 활동했는데 이들 모두는 화원이거나 화원집단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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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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