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58)
무교화, 불교화, 유교화, 도교화 간 습합과 영향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민화는 무교화, 불교화, 유교화, 도교화 제재의 영향을 독립적으로 받기도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서로 습합되어 상징이나 도상이 섞인 상태로 영향을 받기도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사신을 비롯하여 비천, 신선, 기린, 봉황, 가릉빈가迦陵頻伽, 승학선인乘鶴仙人 등은 무교적, 불교적, 유교적, 도교적, 음양오행사상적인 요소가 혼용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임영주는 “이미 고분벽화에는 도교적인 요소와 불교적인 요소, 그리고 유교적인 요소가 혼용되어 나타나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조선 후기 민화의 주요 제재인 호랑이, 용, 봉황, 기린, 해, 달, 개 등도 무교, 불교, 유교, 도교, 음양오행사상의 상호 불가분의 통합성을 띤 상징성, 도상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민화 제재들은 무당집, 사찰, 사당, 도관 등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되었다. 문명대는 <한국의 종교 회화에 관한 연구>에서 “사찰벽화에는 불교적 주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십이지신장도>, <신선도>, <무속도> 등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예컨대 불교와 전혀 상관없는 잡화雜畵 또는 별화別畵라 불리는 <수성노인도>, <용호도>, <호토도>, <운룡도>, <석류도>, <화조도>, <산수도>, <괴석도>, <노송도> 등이 사찰 건물 벽면이나 천정에 그려졌다. 또한 사찰 입구의 장승, 서낭당 등과 사찰 경내의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등 역시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불교와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래·수용되는 과정에서 절이 토착신앙인 무교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무교화에 불교 승려를 신격화 한다거나 삼불제석, 부처님 등을 그려 넣은 것 역시 상호 습합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다.
짚고 넘어가게 되는 것은 여러 종교적 요소의 통합의 기틀 혹은 중심이 된 것은 토착종교인 무교라는 점이다. 즉, 한국 민족은 외래문화의 수용에 언제나 적극적이었으나 무교의 기본 바탕 아래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교는 하늘과 땅과 정령, 별과 산천과 조상 등 만신을 섬기는 종교였기에, 외래 종교가 들어오면 어느새 다독거려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내곤 하였다. 이때 유교, 도교, 불교적 요소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교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고 받아들여 이를 토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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