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56) 유교화의 영향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유교화는 유교 의례에 사용되는 ‘유교의 전통과 미덕을 선양한 것’, ‘효도를 제창하여 그려진 것’, ‘일상생활을 풍요롭고 복되게 하고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윤리적인 제재의 그림’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유교화 역시 민화 형성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즉 유교적 사회 질서유지를 위한 유교화가 민화로 수용되면서 유교적 바람은 물론 길상, 벽사의 의미까지 담아 더욱 폭넓게 사용되었다. 이는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시대 고유의 현상으로, 유교이념이 생활화되고 저변화된 것과 괘를 같이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민화에는 유교 전담 제재라 할 수 있는 행복, 출세 장수의 뜻을 담은 복福·록祿·수壽·희囍 등의 길상문吉祥文과 일상생활을 지배한 유교의 오복신앙五福信仰 등이 민화 속에 강하게 투영되었다. 임영주는 《한국의 전통문양》에서, “우리 선조들은 유교와 관련이
있는 福·祿·壽·囍 자를 써서 연말이나 정초에 대문에 붙였으며, 어떤 집에서는 위와 같은 한자를 거꾸로 붙여 복을 기원하는 일도 있었다” 라고 서술했다. 사실 유교 전담의 길상문과 오복신앙의 뿌리는 윤리적인 모습을 띠고 있지만, 좀 더 깊게 내면을 들여다보면 민화와 같은 기복에 대한 강렬한 욕구까지 잠재되어 있어서 민화와 필연적으로 함께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계속해서 유교의 윤리와 도덕을 강조한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애초에 문맹인 백성들에게 그림으로 유교적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등으로 제작되었으나, 이후 민화에 수용되어 <효제도孝弟圖>, <효제문자도孝悌忠信禮義廉恥>등으로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유교 전담의 제재 역시 민화에 접목되어 줄기차게 사용되었으며, 조선후기 여염집에서는 벽·기둥·대문 등 같은 곳에 큼직하게 써서 붙이거나 나무 조각에 쓰고 새겨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한편, 유교화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복록장수福祿長壽’를 염원하는 데도 자주 사용하였다. 그밖에도 유교화로 분류할 수 있는 ‘고사인물 그림’인 <공자화상孔子畵像>, <관우화상關羽畵像> 등도 애초에는 왕이나 사대부들이 자신의 사상과 행동의 귀감으로 삼고자, 혹은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고자 성현들의 행적을 담아 사용했으나, 어느 순간 민화로 편승되어 벽사적, 길상적인 의미까지 담아 더욱 폭넓게 사용하였다.
이상과 같이 윤리적이고 이념적인 내용의 유교화는 주로 유교 의례에 사용되었지만, 어느 순간 세속적인 기복에 치우치기도 하면서 결국엔 민화로 수용되었다. 이렇듯 유교화는 지배계층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이념을 내포하고 있어 여러 의례에 사용되었지만, 우리 인간 모두가 누리고자 하는 오복에 대한 염원도 함께 깃들어 있어, 서민들의 민화로 수용되어 더욱 폭넓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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