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㊼ 민화 시원과 관련된 고대사회 병풍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민화의 시원은 고대사회에 사용한 병풍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조선 후기 민화의 기능이 그러하듯, 고대사회에서 병풍도 돌, 생일, 혼인, 회갑, 잔치를 비롯한 각종 길흉사吉凶事 때에 음陰을 굴복시키고 악마를 물리치는 데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당시의 병풍에는 민화에서 요구되는 장수·행복·기쁜 일·길한 일을 기원하는 뜻이 듬뿍 들어 있는 도상이 그려졌을 것으로 본다.
보통 병풍은 2∼12개까지 틀을 연결시켜 사용한다. 연결 방식은 종이나 천을 각 폭의 가장자리에 엇갈리게 붙여 연결하는 ‘돌쩌귀식’ 또는 ‘종이날개식’ 방법으로 제작된다. 이와 같은 방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일본의 야마모토모토[山本元]가 1924년에 저술한 《표구입문表具の栞》에서 위와 같은 방법은 한국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서술했다.
우리나라는 고대사회부터 병풍을 필수품으로 애용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잡지雜誌 옥사조屋舍條에는 병풍 사용을 금禁하는 기록이 적혀 있어 고대사회부터 병풍은 아주 귀중하게 취급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대사회부터 많은 사람들이 병풍을 사용했고, 또 사용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병풍 사용을 금하는 기록까지 적어놓은 것으로 본다. 확실한 역사적인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여 단편적인 기록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의 병풍 쓰임새로 볼 때 고대사회에도 병풍을 각종 행사에 어울리는 복록장수福祿長壽를 염원하고자 사용했을 것이다. 가령 혼례식에는 화조, 모란 등이 그려진 병풍을, 회갑 잔치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병풍을 사용하는 식이다.
한편 이규보李奎報(1169∼1241))가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시詩 속에 ‘새와 짐승을 그린 것을 완상玩賞하려고 좌우에 두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실생활에 사용할 목적뿐 아니라 감상을 목적으로 새와 동물 그림을 병풍으로 꾸며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연등회나 팔관회 등과 같은 불교의식에 병풍이 사용되었다. 팔관회의 기록을 보면, 병풍을 채병彩屛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오방색에 의한 채색 그림이 병풍으로 꾸며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이전인 고대사회에 병풍을 사용한 이유는 감상의 목적보다는 벽사와 길상의 의미를 지니고 폭넓게 애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고대사회에 병풍은 조선후기 민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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