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㊶ 민화의 시원에 대하여

현재 학계에서는 민화의 시원을 크게 둘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배 풍습으로 인해 세화가 민화로 변모했다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중국의 문신 풍습에서 민간연화로 이어져 오면서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민화의 시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민화의 주요 제재 가운데 일부는 문배 풍습이나 문신 풍습이 알려지기 전부터 인식의 공통성에 의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민화 시원의 직접적인 영향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단군 그림>, <처용랑 그림>, <비형랑 그림>과 부적 사용 그리고 병풍 사용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민화 시원의 간접적인 영향은 우리 민족의 자연신앙(샤머니즘, 토테미즘)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외래 종교(유교, 불교, 도교) 의례용 그림 그리고 상고대의 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민화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살필 때, 민화의 시원은 우리 역사 속의 자연신앙이나 외래 종교가 자리 잡은 후의 모든 제술적인 제의에 그려지고 사용되어 왔으며,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의 생활 철학과 미의식이 가미된 민화로 변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원용은 한민족의 사상, 신앙, 세계관, 인생관, 예술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 민화의 호랑이와 용이 지닌 상생상극의 상징성은, 고구려 고분 벽화 <사신도>의 청룡과 백호의 상징성과 거의 일치한다. 나아가 고구려 고분 벽화 <사신도>의 청룡과 백호는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사상, 명당사상 등과 관련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호연은 《한국 민화》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매우 발달된 수준의 회화로 나타난 사신의 모습은 조선조 궁궐의 사문四門에도 단청되어 있고 또 용호龍虎로 줄여진 상태의 그림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하였다. 조자용 역시 <용호도>는 수천 년 동안 우리 생활을 지배해 온 <사신도>에 기인한 그림이라 말했다. 다만 다른 것을 찾는다면, 조선시대 사회에서 대문 밖에 그림을 그려 붙였던 민화는 산자의 행복과 장수를 염원했다면,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는 죽은 사람 무덤의 벽에 그려져, 죽은 자의 영혼의 안녕을 염원하기 위해 새겨지고 그려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 민화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한두 갈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전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하게 고증하려면 절대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민화 시원을 꼭 확인·정리·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간 지면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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