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관장의 ‘짧은 글 긴 생각’ ㊱ 1980년대 공방소속 민화작가들의 활동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과 2, 3차에 걸친 경제 개발5개년 계획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1970년대 말부터 서울은 전면적인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즉 환경 개선을 위해 서울의 영동 지구, 잠실 지구, 강남 지구 등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개발 호조와 맞물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에는 아파트 투기 붐이 절정에 달했으며 부동산 투기로 돈을 모은 졸부猝富가 속출하였고, 일명 ‘복부인福婦人’이라는 졸부들이 너나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미술품을 사들임에 따라 미술품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1979년 ‘중앙일보’에는 졸부들의 행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부동산 투기나 장사 운이 터져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이들은 처음에는 미술품을 장식용으로 한두 점 샀지만 값이 나날이 뛰어 부동산 투기보다 더 재미가 나게 되고 졸지에 대가의 개인전 출품작을 몽땅 사버리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었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당시에는 졸부들이 미술품을 활기차게 구매했으며 민화 역시 활발히 거래되었다. 애초에 민화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외국인이었지만, 위와 같은 시중 부동자금浮動資金이 외국인들의 투자 패턴에 가세하여 민화 가격이 10배가량 뛰어오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한편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폭발했으며 보통사람, 서민, 민중이라는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서 민중미술과 전통미술의 신드롬이 일어났으며 자연스럽게 민화를 비롯한 벽화, 판화, 부적, 만장과 깃발, 탱화, 무화 등의 전승시각문화가 재조명되면서 민화는 민중미술과 동격으로 보기도 했다.
이상의 1980년대 분위기 속에서 민화 작가들은 재현에만 머무르지 않고 순수 작가들처럼 작품에 보다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서 1970년대에 활동했던 이규완, 정하정, 박수학, 나정태 등이 눈부신 활동을 보여 주었다. 1984년 이규완, 정하정, 나정태가 〈민화, 오늘의 시각과 방법〉에 대한 스터디와 함께 전시회를 열었는데 1회는 제3갤러리, 2회는 청년미술관, 3회는 금호미술관, 4회는 자하문 갤러리에서 개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글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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