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⑬
1872년 군현지도 : 북방의 평야 지대 황해도 지도

지난호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황해도 지도를 통해서 회화적으로 묘사된 북방 지역의 평야 지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 글 김성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한반도의 중서부에 있는 황해도는 경기도와 평안도 사이에 위치하고 남서부가 서해에 접해 있다. 예로부터 황해도는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재령평야와 동남부 해안 지역에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어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이름났다. 고려 시대에는 서해도西海道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 1395년(태조 4)에 팔도 중의 하나로 풍천豐川과 해주海州의 이름을 따서 풍해도豐海道로 불렸고, 1417년(태종 18)에 황주黃州와 해주의 이름을 따서 황해도黃海道로 개칭됐다. 팔도제를 시행할 때 해주에 감영監營을 설치하고 관찰사를 파견하여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도1 <장연백령진도>, 《1872년 군현지도》, 1872년, 채색필사본, 104.8×76.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872년에 만들어진 황해도 고을 지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른 황해도의 행정구역은 황주목黃州牧과 해주목海州牧 2개의 목牧과 군사적 성격의 도호부인 연안부延安府, 평산부平山府, 서흥부瑞興府, 풍천부豐川府 4곳, 그리고 군현으로 구성된 24개 고을이 속해 있었다. 1652년에 우봉현牛峯縣과 강음현江陰縣을 합하여 금천군金川郡으로 개편한 후에는 23개 고을이 됐다. 황해도 각 고을의 지리적 내용을 담은 읍지邑誌는 50여 종이 전하고 있으며 도지道誌의 규모로 편찬된 것은 《해서읍지海西邑誌》(1871년), 《황해도각군읍지黃海道各郡邑誌》(1899년), 《황해도전지黃海道全誌》(1898년) 등으로, 다른 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만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해서읍지》에는 수영水營을 비롯하여 황주목, 안악군, 신천군, 송화현, 은율현 등에서 읍지를 작성한 시기를 기록해 두었는데, 대략 1871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읍지들이 작성됐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신미양요가 발생한 직후이며 전국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대한 대비로 전국 각 고을의 읍지 제작 명이 내려졌을 때 진행된 것이다. 1872년에는 읍지와는 별도로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이 이루어졌으며, 중앙의 요구에 따라 황해도에서도 각 고을에서 지도를 제작했다. 이때 제작된 지도들은 《해서읍지》에 수록된 읍지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비교적 큰 지면에 황해도 각 고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회화식으로 그려졌다.
1872년에 도별로 그려 올린 전국의 고을 지도를 모아놓은 《1872년 군현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가운데 황해도 지도는 황해도 23개 고을의 지도와 산성지도 5점, 진보鎭保의 지도 14점으로 구성된 42점의 채색지도가 있다. 이 지도들은 각각 낱장으로 된 단독 군현지도의 형태로 읍치邑治, 진보鎭堡, 봉대烽臺, 포浦, 읍치부터 관내 각지까지의 거리 등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크기는 작은 것이 50.2×78.5㎝에서 큰 것이 133.8×83.5㎝로 일정하지 않으나, 뒷면에 표지가 붙어 있어 접었을 때는 첩帖의 형태가 되며 크기는 대체로 35×25㎝로 동일하다. 황해도 지도의 표지는 대부분 황지黃紙에 ‘사격만자문斜格卍字紋’을 새긴 능화지로 꾸며져 있다.

도2 <옹진부지도>, 《1872년 군현지도》, 1872년, 채색필사본, 81×52.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황해도 연안의 방어진을 그리다

황해도는 경기지역의 북방 외곽방어 거점이었으며 특히 해안 방어의 제일선이었다. 따라서 황해도 연안의 주요 포구나 도서에 진보鎭堡를 설치하고 해안 방어를 강화했다. 1872년 황해도에서 올린 지도 가운데 진보를 단독으로 그린 지도가 여러 점 수록됐는데, 그 중 <장연백령진도長淵白翎鎭圖>(도1)는 백령도에 설치된 진을 그린 지도다. 백령도는 장연현에 속해 있던 섬으로 황해도 바닷길의 요충지였으며 1609년에 수군진을 설치하고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두어 방비했다. 백령진은 황해도 연안 및 도서의 진보 가운데 가장 중시됐던 곳으로 지도에는 백령도에 붉은색 원으로 백령진을 크게 표시했다. 백령도 북쪽으로 장산곶, 오른쪽 윗부분에 옹진반도가 그려져 있고, 붉은색 선으로 장산곶에서 백령도로 연결되는 뱃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옹진부지도甕津府地圖>(도2)는 황해도 해안 방어의 요충지인 서쪽 해안에 있는 옹진부를 그린 지도다. 옹진현에는 수군첨절제영水軍僉節制營인 소강진所江鎭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1719년(숙종 45) 황해도 수영水營으로 승격되면서 현령도 부사府使로 승격해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겸하도록 했다. 따라서 부사는 적의 침략 위험이 큰 3월과 8월 사이에는 행영行營인 소강에 머물며 군무軍務를 지휘하고, 물살이 거칠어 선박의 왕래가 어려운 9월과 다음해 2월 사이에는 본영本營인 옹진에 머물며 민사民事를 처리했다. 지도는 옹진의 부사 겸 수군절도사가 관장하는 수영의 본영과 행영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본영과 행영은 각각의 성지가 있었다. 행영의 성곽 둘레는 소강의 군사적 중요성이 반영되어 본영에 비해 2배 이상 컸다. 성문도 2층 누각에 4문 구조로 되어있어 단층 누각에 3문 구조인 본영보다 웅장했다. 하지만 지도에서는 그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행영에는 부사 겸 절도사가 집무하던 선위당宣威堂, 수사 부재 시 행영을 관할하던 우후虞候의 집무처인 중영中營을 비롯해 여러 관청 건물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성 밖의 독당纛堂은 독신纛神에게 승리를 빌며 제사 지내던 사당이다(도2-1). 본영에는 객사, 내아사, 부사 겸 절도사의 집무처인 동헌에 해당하는 제승당制勝堂 등이 그려져 있다(도2-2). 본영과 행영을 오가는 도로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본영에서 행영까지의 거리는 40~60리 정도로 반나절 정도의 거리였다.

(왼쪽) 도2-1 <옹진부지도> 행영 부분 / (오른쪽) 도2-2 <옹진부지도> 본영 부분

지도에 묘사된 북방의 평야 지대

황해도는 산지가 많은 북방 지역에서 유일하게 평야 지대가 많아, 쌀농사가 잘되고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황해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대동강과 인접하고 평안도와 접해 있는 황주목은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대동천·재령강을 비롯해 황주천·매상천 연안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비옥한 평야 지대를 이룬다. <황주지도黃州地圖>(도3)는 산맥이 뻗어 내린 동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여 대동강 하류가 남쪽에 넓게 표현되어 있다. 산지를 끼고 축조된 성곽을 주변 지역에 비해 크게 강조하고 있는데, 옹성甕城을 비롯하여 병기를 쏘기 위한 구멍인 사혈射穴, 대포를 쏘기 위한 구멍인 포혈砲穴, 성문 등의 구조물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황주의 성곽 내부에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머무르던 병영兵營, 우후虞候의 집무처인 중영中營 등 군영을 비롯하여 목사의 사무처인 외동헌 제안관齊安館과 종각鐘閣도 보인다.

도4 <해주지도>, 《1872년 군현지도》, 1872년, 채색필사본, 122.4×73.9㎝,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왼쪽) 도4-1 <해주지도> 부용당 부분 / (오른쪽) 도5 해주 부용당,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황해도의 감영監營이 있는 해주에 대해서는 조선 중기에 편찬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지역이 넓고 백성이 많으며 관서關西의 큰 주州”라고 설명한다. <해주지도海州地圖>(도4)는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큰 규모의 해주목을 그린 지도로, 중앙에 장방형의 읍성을 확대해서 그렸다. 이것은 조선 후기 읍성도에 보이는 일반적인 구도이다. 성곽 내부에 각종 관청 건물이 배치되었는데, 관찰사의 집무처인 선화당宣化堂을 크게 강조하고 앞쪽 연못 안에 부용당芙蓉堂의 누각을 크고 화려하게 묘사했다(도4-1). 해주 부용당(도5)은 1500년(연산군 6) 해주목사 윤철尹哲이 건립하고 1526년(중종 21) 해주목사 김공성金公聖이 개축한 누정樓亭이다. 해주목사의 집무처인 본관本官은 북문北門 쪽에 있다. 또한 읍성 북쪽의 향교鄕校와 동쪽 강가에 울창한 수목을 표현하는 등 읍성 주변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여 해주의 지형과 규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번호를 끝으로 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를 마칩니다.
작년 9월부터 조선후기 회화식 지도와 민화의 영향 관계를 풀이해주신
김성희 감정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편집자주)



김성희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명지대학교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겸임조교수, 한국고지도연구학회 학술이사이다.
공저로는 《옛지도로 재현하는 경상도 상주》가 있다.
또한 고지도 칼럼 기고와 전시 자문 등을 맡았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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