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⑪ 1872년 군현지도 : 압록강 경계의 평안도 지도

이번호부터 세 차례에 걸쳐 《1872년 군현지도》를 통해서 북방지역의 경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지역은 한반도 북서부, 압록강 남쪽에 있는 평안도이다.

글 김성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북방지역인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는 조선 팔도의 행정구역으로, 지금은 직접 가볼 수 없는 가까우면서도 먼 북한에 있다. 평안도는 한반도 북서부에 위치하고 그 경계는 동쪽으로 함경도, 서쪽으로 황해黃海, 남쪽으로 황해도, 북쪽으로 압록강에 이른다. 중국과의 접경지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자 대외무역과 상업이 발달했다.
북쪽 국경과 해안 지역의 고을들은 조선 초기부터 변경지역을 파악하고 군사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관방지도關防地圖가 다수 제작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던 북방지역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의 균형적인 이해를 위해 도별 또는 전국적으로 각 군현의 지도를 수록한 군현지도집 편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 이후 평안도 압록강 일대 국방 시설을 그린 지도는 <청북변성도淸北邊城圖>(국립중앙박물관), 《해동지도》(古大4709-41-v.1-8) 중 <폐사군廢四郡>, <관서일로영애關西一路嶺隘>(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이 있으며 평안도 각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상세하게 그린 지도는 《1872년 군현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수록된 평안도 지도가 있다.

1872년에 만들어진 평안도 고을 지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 평안도에서는 고을마다 읍지邑誌 편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읍지에는 해당지역의 건치연혁, 관직, 산천, 호구, 조세, 교통, 고적 등의 내용과 귀감이 될 만한 인물, 풍속까지도 세세하게 기술됐다. 국가에서는 지방을 파악하고 지역에서는 고을의 역사와 전통을 세우기 위해 읍지를 지속적으로 보완했다. 1871년에서 1872년에는 전국 읍치 편찬을 위한 중앙의 요구로 평안도 44개 고을의 현황을 담은 《관서읍지關西邑誌》가 제작됐고, 이와 동시에 1872년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평안도의 고을 지도와 진지도, 산성지도가 제작됐다. 이때 제작된 지도들은 《1872년 군현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 연구원 소장) 가운데 평안도 지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안도 42개 고을 중 평양부平壤府와 의주목義州牧의 지도는 누락됐고 진지도鎭地圖 44점과 산성지도山城地圖 1점을 포함해서 모두 85점의 채색지도가 있다.
1872년 평안도 지도 중 고을을 그린 지도들은 《관서읍지》에 수록된 읍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자산부지도> 표지에 기록된 작성 시기가 《관서읍지》 삼등현과 선천부에 기록된 작성 시기와 “동치십일년오월同治十一年五月”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변부지도>와 <강서현지도>의 표지에는 “동치십일년사월同治十一年四月”이라는 기록이 있고, <평양부보산진지도>의 표지에는 “동치십일년유월同治十一年六月”이라는 기록이 있어 평안도 지도가 1872년 4월에서 6월에 걸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도들은 각각 낱장으로 된 단독지도의 형태이다. 크기가 작은 것은 49×67.6㎝에서 큰 것은 153×95.6㎝로 일정하지 않으나, 뒷면에 표지가 붙어 있어 접었을 때는 첩帖의 형태가 된다. 첩의 크기는 35×25㎝로 모두 동일하다.


도2 <삭주부지도> 압록강 부분

압록강 국경 지역을 그리다

18세기 압록강 국경 지역의 지형과 국방 시설을 그린 <청북변성도>에는 의주, 삭주, 창성, 벽동, 초산, 위원, 강계 등 평안도의 7개 고을을 잇는 도로와 각 고을의 읍성邑城, 산성, 성곽 등이 묘사됐다(도1). 1872년 평안도 지도에는 이 국경 지역 7개 고을의 지도를 단독으로 확대해서 제작하고 군사 시설의 내용을 상세하고 중요하게 그려 넣었다.
<삭주부지도朔州府地圖>의 오른편 내용은 압록강 유역으로 하단에 녹색으로 굵게 그려진 물줄기가 압록강이다. 이 지역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청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요충지여서 군사 시설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표현됐다. 압록강 건너편에는 청나라의 땅임을 표시하는 피변彼邊이 적혀있고, 압록강변에는 방어와 감시를 위한 구령진仇寧鎭을 비롯하여 파수把守와 봉수烽燧 등이 자세하게 그려졌다. 정사각형의 석성石城이 있는 곳이 읍치邑治이며 성곽 구조의 설명도 상세하다(도2).
평안북도 창성부 역시 청나라와의 접경에 위치해 있어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창성지도昌城地圖>는 동북쪽을 위로 향하게 하여 왼편 가장자리에 압록강이 흘러가는 것을 그리고, 위로부터 대길호리보大吉號里堡, 창주진昌洲鎭, 어정탄보於汀灘堡, 묘동봉廟洞堡, 운두리보雲頭里堡, 갑암보甲巖堡와 여러 개의 파수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 변방임을 실감할 수 있다. 성곽이 설치된 읍치와 당아산성當峨山城 부분을 확대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성곽의 구조적 특징, 문루 및 내부 건물 등을 자세히 묘사하여 전시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 창고, 봉수, 도로의 표시도 매우 자세하다(도3).


도3 <창성지도> 부분



초산부는 조선 중기까지 이산理山이었다가 정조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1777년(정조 1)에 초산楚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경 지역인 초산부 읍치에는 3,905척(약 1,170m)의 석성石城이 세워져 있었다. <초산부지도楚山府地圖>에는 화면 중심의 주산主山 아래 석성을 크게 배치하고, 성내의 각종 관아건물 및 주변 민가들과 도로를 자세하게 표시했다. 다른 국경 지역 고을과 마찬가지로 군사 시설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묘사됐다.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압록강이 남쪽에서 동쪽을 돌아 나가는 것처럼 왜곡되긴 했지만, 압록강변의 읍성과 산양회진山羊會鎭, 아이진阿耳鎭을 비롯해서 여러 개의 파수와 봉수를 자세히 표시했다(도4). <초산부지도>를 제작하면서 초산부에 소속된 아이진, 우현진, 차령진, 산양회진 등 여러 진지도가 별도로 그려졌는데, 한 사람에 의해 민화풍으로 제작되어 흥미롭다.

도4 <초산부지도>, 《1872년 군현지도》, 1872년, 채색필사본, 81.3×52.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도 속 평안도의 명승

평안도는 철령鐵嶺 고개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관서지방關西地方으로도 불리며, 사행로使行路이자 조선 시대의 9대로 중 하나였던 ‘의주로義州路’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따라서 중국 사행을 다녀오면서 관서지방, 즉 평안도의 명승으로 꼽히는 강계의 인풍루仁風樓, 의주의 통군정統軍亭, 선천의 동림폭東林瀑, 안주의 백상루百祥樓,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성천의 강선루降仙樓, 만포의 세검정洗劍亭, 영변의 약산동대藥山東臺 등을 그린 명승도가 제작됐고, 《관서명구첩》(개인소장), 《관서십경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서명승도첩》(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등이 알려졌다. 1872년 평안도 지도에도 명승으로 이름난 누정樓亭이 빠짐없이 그려졌다.

도5 <안주목지도>, 《1872년 군현지도》, 1872년, 채색필사본, 138.8×100㎝, 규장각한국학연구



도5-1 <안주목지도> 백상루 부분

<안주목지도>는 1945년 광복 당시 평안남도 안주군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규모가 큰 고을이었다. 평안도가 평양과 안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인 것만 보아도 이곳이 중심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도5). 안주목은 의주에서 평양을 거쳐 한양으로 가는 요충지로서 안주읍에 세워진 성은 내성內城, 외성外城, 신성新城의 삼중으로 구성됐다. 지도에는 주변 지역에 비해 성의 축척을 확대하고 지형을 이용한 구조적 특징 등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다. 왼쪽의 내성에는 관아 건물들이 빼곡하고 민가들은 오른쪽 외성에 밀집해 있는 모습이다. 내성의 건물 중 특히 T자형의 누정인 백상루百祥樓를 강조하고 있는데, 백상루는 고려 때 외적이 침입했을 때 병력을 지휘하던 중요한 장대將臺로 청천강淸川江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웠다. 조선 시대에 개보수되면서 탁 트인 조망으로 더욱 이름나 ‘관서제일루關西第一樓’라는 현판이 걸렸으며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안주목지도>에 그려진 백상루와 19세기 실경산수화 《관서십경도》의 백상루를 비교해보면,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부감한 시점, 기단 위 본채에 곁채가 붙여진 구조,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 등이 정확하게 그려진 점에서 이 지도가 실경이 충실하게 묘사된 지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도5-1, 도6). 그 외에도 봉수, 사찰, 신당神堂 등의 내용이 상세하여 고을의 인문적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다음호에는 《1872년 군현지도》로 본 함경도가 이어진다.


도6 <안주 백상루>, 《관서십경도》, 19세기, 지본채색, 58.3×42㎝, 국립중앙박물관



김성희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명지대학교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겸임조교수, 한국고지도연구학회 학술이사이다.
공저로는 《옛지도로 재현하는 경상도 상주》가 있다.
또한 고지도 칼럼 기고와 전시 자문 등을 맡았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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