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⑩
1872년 군현지도 : 회화적 예술성을 지닌 전라도 지도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지도는 실경식 산형과 지역의 대표적 경관이
강조되어 있으며, 회화적 기법과 채색으로 고을 모습을 실감 나게 전달했다.

글 김성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통일된 체제를 갖춘 전라도 고을 지도

1872년에 각 도별로 올린 전국 고을 지도를 모아놓은 《1872년 군현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에 수록된 전라도 지도는 다른 지방의 지도와 확연히 구별된다. 정형화된 구도와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색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전라도 지도에는 제주도를 포함한 56개 고을을 그린 지도 외에도 옥구현의 군산진, 만경현의 고군산진, 부안현의 검모포와 위도진, 영광군의 법성진, 다경포, 임자진, 함평현의 임치진, 무안현의 목포진, 영암군의 어란진, 이진진, 추자도, 나주목의 흑산도와 지도진, 진도부의 남도진과 금갑진, 영암군의 청산진, 강진현의 신지도진, 고금도진, 마도진, 장흥부의 회령포진, 흥양현의 여도진, 사도진, 발포진, 녹도진, 광양현의 섬진진, 순천부의 방답진과 고돌산진 등 전라도 각 군현에 속한 섬, 진지, 포구 등을 별도로 그린 지도 28점이 수록되어 모두 84점의 채색지도가 있다.
84점의 전라도 지도 중 누락된 부안현 지도와 제주도 지도 4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도의 지면에 도곽圖廓을 그리고 그 안에 지도와 지역의 건치연혁 및 도로, 고적 등을 공통으로 기록했다. 구도는 읍치邑治를 둘러싼 산지가 사방으로 펼쳐진 산도山圖형식으로 청록색의 광물성 안료로 채색해서 화려함을 더했으며 면面·리里는 청색, 녹색, 홍색, 백색, 황색, 적색 등의 색 도형으로 구분함으로써 통일된 체제로 지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도1). 전라도 지도 첩의 표지는 모두 황색으로 선염된 황지黃紙에 만자능화문卍字菱花紋을 새긴 능화지를 사용했고, 좌측 상단에 붙인 제명題銘에는 전라도全羅道, 전라우도全羅右道, 전라좌도全羅左道를 구분해서 표제의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전라도 지도가 통일된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전라감영에서 각 고을의 지도를 모아 함께 장책粧冊했기 때문이다.

도2 <흥양현발포진지도> 부분

회화적으로 실경식 산형 강조

지도에서 산형의 표현은 대상 지역의 자연환경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주된 요소다. 회화식 지도의 산형 묘사 방식은 전통적인 지도 화법에 따라 기호화해서 도식적으로 나타내거나 실경적 요소가 적용된 실경산수화풍으로 표현됐다. 회화성이 강조된 실경식 산형은 험준한 산세의 위용을 보이는 지형의 특징을 실감 나게 전달하기 위해서 산형의 세부 묘사에 산수화에서 구사되는 준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전라도 지도의 실경식 산형에 사용된 준법은 주로 피마준과 미점준으로 산의 입체감을 나타내고, 부분적으로 바위산의 절경을 설명하고자 할 때는 수직준과 부벽준으로 바위의 질감을 나타냈다. 또 먼 산을 표현하고자 할 때는 산형의 실루엣만 그려 넣는 등 산수화법이 그대로 구사됐다.
<흥양현발포진지도>는 흥양현의 남쪽 해안가에 설치된 수군 진영인 발포진鉢浦鎭을 그린 지도다. 발포진은 19세기 후반 당시 전라좌수영 산하의 수군진영이었으며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현재 전남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에 해당한다. 1589년에는 한때 이순신 장군이 발포만호로 부임하기도 했다. 지도의 중심에 발포진성을 확대해서 그리고 북쪽 수덕산修德山의 산세가 진성을 감싸는 구도로 그렸다. 진성 주변의 산형 표현은 실경식 산형의 전라도 지도 중에서 산수화 준법이 가장 두드러지며 회화성이 강조됐다. 녹색과 청색으로 채색한 청록산수화풍에 피마준과 미점준을 반복해서 산형의 입체감을 나타내고 소나무 숲은 산의 등줄기를 따라 점을 크게 툭툭 찍어 녹음이 짙은 모습을 드러냈다(도2).

(왼쪽) 도3 <장흥부지도> 수인산, 제암산, 사자산 부분 / (오른쪽) 도3-1 수인산 병풍바위 실경



<장흥부지도>는 전라도의 남쪽 해안에 있는 고을로 지금의 전남 장흥군 지역에 해당한다. 지도에는 장흥부의 북서쪽에 자리한 수인산修仁山의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실감 나게 묘사됐는데, 특히 수인산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병풍바위는 직각의 단층 바위로 묘사하고 실경보다 높이 쌓아서 다소 과장되게 표현됐다. 장흥부 읍성의 동쪽으로 정상의 바위를 향해 주위의 바위들이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제암산帝巖山의 바위들도 실경이 표현됐고 제암산 옆으로 사자산獅子山 역시 산봉우리 정상을 평지로 각지게 그려 실경을 전달하고자 했다(도3, 도3-1). 읍성의 동문에서 북문에 이르는 성벽을 이루는 천연 암벽의 바위가 강조됐으며 읍성의 서남쪽 부서면府西面 토산과 붙은 설암雪巖은 지명대로 면을 하얗게 남기고 짧은 필획과 붓을 옆으로 비벼 바위의 질감을 표현했다(도4).
<동복현지도>는 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쪽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고을로, 섬진강의 지류인 동복천이 고을을 휘돌아 나가며 곳곳에 비경을 이루었지만 현재는 동복댐의 건설로 많은 부분이 물에 잠기었다. 지도는 산지의 모습을 청록산수화풍으로 표현했는데 산형은 산줄기의 흐름을 강조하며 이어지면서도 곳곳에 특징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이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녹색의 산형에 산 정상 부분은 청색으로 입체감을 주었고 미점준과 피마준의 잔영이 남아있는 준법이 구사됐다. 지도 중심에 자리한 읍치를 중심으로 산지가 펼쳐지고 동쪽에 일직선으로 산맥이 이어지는 모습은 실제 지형과 유사하게 표현됐다. 옹성산瓮城山은 지명과 같이 독을 우뚝 세워놓은 것과 같이 묘사했고 내서면內西面 보암寶巖 하천변에 발달한 적벽赤壁은 크고 수려한 절벽의 실경을 충실하게 표현했으며 하천 건너편에는 절벽의 비경을 감상했던 적벽정赤壁亭까지 그려져 있다. 내북면內北面 조항鳥項의 백아산白鴉山은 산세가 험하고 날카로운 바위 형세를 강조했고, 영봉사靈鳳寺 뒤의 구봉산九峯山은 9개의 봉우리를 선명하게 그려 넣었다(도5, 도5-1, 도6).

(왼쪽) 도4 <장흥부지도> 설암 부분수인산제암산사자산
(오른쪽) 도6 <동복현지도> 영봉사, 구봉산 부분적벽정적벽옹성산구봉산영봉사



(왼쪽) 도5 <동복현지도> 옹성산, 적벽, 적벽정 부분 / (오른쪽) 도5-1 옹성산 적벽 실경

지역을 상징하는 경관 묘사

전라도 지도는 고을마다 중요한 문화유적이나 의미 있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지역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전달됐다. 특히 주요 사찰寺刹들과 석탑, 석당간, 비각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무장현지도> 동북쪽 선운산 아래에는 이 지역의 대사찰인 선운사禪雲寺와 내원암內院庵, 동운암東雲庵, 석상암石床庵, 도솔암兜率庵, 용문암龍門庵 등의 여러 암자가 함께 그려져 있고 암자들 사이에는 탑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이는 현재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육층석탑을 그린 것이다(도7, 도7-1).
<능주목지도>는 지금의 전남 화순군 일대에 해당한다. 지도의 서쪽 호암면虎巖面에는 세 개의 탑을 그려놓고 운주탑雲柱塔이라 써 놓았는데 이는 수많은 석탑과 석불이 세워진 운주사雲住寺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쪽 도림면道林面의 쌍봉사雙峰寺에도 석탑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국보 제57호로 지정된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으로 보인다. <담양부지도>에는 석당간石幢竿과 석탑이 그려져 있으며, 석당간은 현재까지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에 남아서 보물 제505호로 지정됐다. 당간幢竿이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 대臺를 말한다. 담양읍 석당간은 담양읍에서 순창행 도로를 따라 1㎞쯤 가다 보면 논 한가운데에 높게 서 있다(도8, 도8-1).

(왼쪽) 도7 <무장현지도> 선운사 부분 / (오른쪽) 도7-1 선운사 육층석탑 ⓒ문화재청



(왼쪽) 도8 <담양부지도> 석당간과 석탑 부분 / (오른쪽) 도8-1 담양 객사리 석당간 ⓒ문화재청



(왼쪽) 도9 <익산군지도> 석인상 부분 / (오른쪽) 도10 <진산군지도> 부분



(왼쪽부터) 도9-1 익산 동고도리 석조여래입상 ⓒ문화재청
도9-2 익산 서고도리 석조여래입상 ⓒ문화재청
도9-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문화재청



<익산군지도>는 지금의 전북 익산시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지도의 읍치 아래쪽에는 마주 서 있는 거대한 석인상石人像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현재 보물 제46호로 지정된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益山古都里石造如來立像을 그린 것이다.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고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하여 지도에는 실재보다 크게 강조해서 그려 넣은 듯하다. 석인상의 오른쪽에 그려진 석탑은 현재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이며 지도에는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졌다(도9~도9-3).
그밖에 지역을 상징하는 경관물이 묘사된 지도로 <남원부지도>의 읍성 남문 밖에는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 널리 알려진 광한루廣寒樓와 오작교烏鹊橋가 묘사되어 있고, 지금의 전북 금산군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에 해당하는 <진산군지도>의 만인산에는 태조 이성계의 태실과 비를 부각해 그리고 태조대왕태실太祖大王胎室이라 표기했다(도10). <순천부지도> 남문 밖 연자교燕子橋를 건너면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만든 팔마비八馬碑가 보인다. 팔마비는 부사의 임기 만료 시 여덟 필의 말을 받던 폐단을 없앤 부사 최석의 고사를 기려 세운 비석으로, 현재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됐다. 이처럼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지도는 회화적 기법을 사용해서 지역의 대표적 경관이나 사찰, 정자, 누각 등의 건물을 강조하는 등 지역의 모습이 구체적이고 실감 나게 전달됐다. 다음 호에는 《1872년 군현지도》로 본 평안도가 이어진다.


김성희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명지대학교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겸임조교수, 한국고지도
연구학회 학술이사이다. 공저로는 《옛지도로 재현하는 경상도 상주》가 있다.
또한 고지도 칼럼 기고와 전시 자문 등을 맡았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