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⑧1872년 군현지도 : 서울과 지방을 잇는 충청도 지도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충청도 지도는 당시 한양에서 삼남지방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에 생겨난 대로와 장시가 강조되며, 읍치 주변의 산과 산줄기가 이어지는 맥세를 부각한 풍수적 공간 표현이 나타난다.

– 글 김성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충청도는 전라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다. 서쪽은 바다에 닿았고, 동쪽은 경상도와 경계가 맞닿았다. 그리고 동북편 모퉁이가 되는 충주忠州 등은 강원도의 남쪽으로 불쑥 들어가 있다.” 이는 18세기 인문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에서 충청도편의 첫머리이다. 서해를 끼고 한반도 중부의 남쪽에 위치한 충청도는 서울과 남부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이다. 충청도는 조선 초기부터 전라도, 경상도와 함께 하삼도下三道 또는 삼남三南 지방으로 불렸으며 삼남대로三南大路는 한양에서 충청도·전라도·경상도 방향으로 가는 길로, 조선 초 한양 도성에서 남대문을 지나 삼남지방으로 가는 육로교통의 핵심이다. 조선 시대 충청도 지명은 변화가 심하여 충공도忠公道, 청공도淸公道, 공청도公淸道, 공홍도公洪道, 홍충도洪忠道, 충홍도忠洪道, 공충도公忠道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다가 금강을 기준으로 좌도와 우도로 구분됐고,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좌도는 충청북도, 충청우도는 충청남도가 됐다. 충청북도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내륙에 위치한다.

1872년에 만들어진 충청도 고을 지도

조선 후기에는 각 고을의 지도를 그린 군현지도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군현지도는 대부분 통치와 군사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중앙정부나 감영의 요구에 따라 각 고을의 지도를 바탕으로 재편집되거나 화가들에 의해 새롭게 그려졌다. 전국 각 군현의 지도를 모아놓은 《1872년 군현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에 수록된 충청도 지도는 채색지도 52점이다. 충청도 54개 고을 중 문의현을 그린 지도가 2점이고 괴산, 목천, 예산의 지도는 누락됐다. 서산군 삼길산三吉山 아래 위치하며 충청도 북서부 해안을 수호한 평신진平薪鎭은 진지도鎭地圖를 별도로 그리지 않고 서산군 지도에 함께 그려 넣었다. 지금은 경기도에 속해 있는 평택 지역이 당시는 충청도에 편입되어 평택현의 지도가 포함돼 있다.
1872년 충청도 지도의 특징은 앞서 제작된 고을 지도를 바탕으로 재편집된 비율이 높지 않고, 대부분 새롭게 제작하면서 지도의 여백에 산천山川, 도리道里, 고적古蹟 등의 지지地誌 항목을 기재하며 지도와 지리지가 결합한 형식으로 제작됐다. 지금은 제천시에 통합된 청풍부淸風府의 지도는 청풍부에 속하는 팔면八面의 이름을 적어 놓고 강산江山, 도리, 봉대烽臺, 장시場市, 창사倉舍, 사창社倉, 사찰寺刹 등의 항목을 기재하여 지도와 지지가 결합한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도1) 구도는 묘산도 형식으로 읍치邑治 주변을 에워싸는 산과 산줄기를 강조했는데, 산줄기 표현에서 주목되는 점은 볏짚이나 억새풀, 잘게 자른 대나무 등으로 만든 붓으로 나타낼 수 있는 건조하고 거친 필치로 그렸다. 지도의 형식은 신창현, 청풍부, 단양군, 황간현, 공주목 등 몇 개의 고을을 제외하고는 지면에 도곽圖廓을 그린 후 위에는 지도의 제목을 쓰고 그 아래에는 지도를 그려 넣는 방식으로 통일했다. 각각 낱장으로 된 단독지도 형태로 크기가 작은 것은 70.3×52.3㎝에서 큰 것은 72.8×118㎝로 일정하지 않으나 뒷면에 표지가 붙어 있어 접었을 때는 첩帖의 형태가 되며 크기는 35.0×25.0㎝로 모두 동일하다.

유기적으로 이어진 산줄기 표현

1872년 충청도 지도는 읍치를 에워싸며 산줄기가 이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진 지도가 44점이 된다. 이러한 표현은 실제 지형보다 형세가 과장되고 읍치 공간이 풍수적 명당으로 부각된다. <아산현지도>는 지금의 충남 아산시 염치읍, 영인면, 음봉면, 인주면, 둔포면 일대를 그린 지도로 객사 터는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영인초등학교 자리가 된다. 동東·서西·남南·북北의 글자로 방위를 표시했는데 미륵산彌勒山에서 금산錦山까지의 산줄기가 읍치로 이어지는 지세를 강조하기 위해 동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했다. 동심산東深山, 학교산鶴橋山, 안산案山, 영인산靈仁山이 읍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실제 지형보다 과장되게 그려지면서 동시에 읍치 공간을 강조했다.(도2) <회덕현지도>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동구 일대에 해당하고 대덕구 읍내동은 당시 회덕현의 행정 중심지였다. 관아 터는 현재 회덕동 행정복지센터 옆에 일부 터가 남아있다. 지도는 계족산鷄足山 정상에서 관아로 흐르는 산세를 강조하기 위해 산줄기를 마치 굵은 밧줄처럼 그렸다. 이러한 표현은 실제의 형세와 달리 과장된 것인데, 행정시설이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산主山으로부터 읍치로 맥세脈勢가 이어지는 지형임을 풍수적으로 해석하고 묘사한 것이다.(도3)

이처럼 충청도 지도는 대체로 읍치 주변의 산과 산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산줄기의 맥세를 강하게 드러내어 풍수지리에 의한 공간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산형 묘사에서는 봉우리 하나하나의 형태보다 이어지는 산줄기의 흐름을 따라 마른 묵필을 반복해서 마치 풍수도처럼 보인다. 이러한 필치는 볏짚으로 만든 고필藁筆이나 칡넝쿨을 사용한 갈필葛筆, 대나무를 이용한 죽필竹筆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비백飛白이 있는 거친 필선을 내기에 적당하다. 지도에는 거친 묵필로 산형을 표현한 뒤에는 담채로 채색을 하거나 두꺼운 색선으로 산줄기의 위치를 잡은 후에 묵필을 더하는 두 가지 방식이 확인된다.
<청안현지도>는 담녹색으로 산줄기의 맥을 그리고 그 위에 약 0.5㎝ 굵기의 붓으로 내리긋는 획을 반복하여 산봉우리 형태를 묘사했다. <남포현지도>는 산의 굴곡을 먹선으로 먼저 잡아 놓고 먹선을 따라 담청색으로 굵게 산줄기를 칠한 다음 그 위에 거친 붓질을 반복했다. <석성현지도>는 여러 개의 짧은 먹선을 반복해서 둥근 산봉우리의 형태를 이어서 그리고 그 위에 담청색을 칠해서 산줄기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당진현지도>는 ‘介’와 ‘个’자를 만들며 붓질을 세 번씩 반복해서 삼각형의 봉우리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푸른색 담채를 칠했다. <연기현지도>는 진한 황색으로 산줄기를 굴곡지게 그리고 그 위에 짧은 붓질을 반복해서 산봉우리를 묘사했는데 산형의 모습이 볏단을 쌓아 둔 것처럼 보인다. <면천군지도>는 녹색 담채로 산줄기를 그린 위에 붓질을 반복해서 산봉우리를 그리고 봉우리 윗부분에 다시 먹을 칠해서 입체감을 나타내며 산줄기를 강조했다.(도4~9)

구대로九大路의 발달과 장시, 점막의 모습

지방에서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시場市는 대부분 교통의 요충지나 읍邑·성城을 중심으로 읍내장邑內場이나 성내장城內場 혹은 성외장城外場이 개설되었고, 대개 5일마다 열리는 장시에는 농민들과 공장工匠 그리고 보부상들이 모여들어 물건을 팔았다. 충청도 지도 역시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읍치의 대로변이나 관문 밖의 도로변에 장시가 들어선 모습이 보인다.

<제천현지도>의 객사客舍 외삼문外三門 앞에는 읍시邑市가 표시되어 있으며 2일과 7일에 읍내장이 열렸다[邑市二日七日].(도10) 천안天安은 삼남三南 지방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인 만큼 <천안군지도>에는 한양에서 차령車嶺을 넘어 호남으로 통하는 대로가 굵은 붉은색 선으로 강조되고 읍치 아래에서 세 길로 갈라지는 삼거리(천안삼거리)가 그려지는 등 교통로가 잘 나타나 있다. 대로를 따라 일정한 거리마다 점막店幕이 위치하고 객사 외삼문 앞에 들어선 읍장시는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열리고 남쪽 고풍서현古豊西縣의 장시는 매월 4일, 9일, 14일, 19일, 24일, 19일에 열려 상거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도11, 11-1) 지금은 천안시에 통합된 직산현을 그린 <직산현지도>에도 한양에서 과천, 수원, 진위, 평택을 지나 직산, 천안으로 연결되는 대로大路가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대로 중간에는 동헌東軒·작청作廳·장청將廳 등의 건물을 갖춘 성환역成歡驛이 규모 있게 그려져 있고 옆에는 성환시成歡市가 표시되어 있어 당시 교통의 중심지에 장시가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도12) 충청도는 54개 고을 중에서 서천군과 석성현을 제외하고는 1개에서 4개 정도의 장시가 개설되어 있었다. 장시와 함께 상인과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사설 숙소인 점막도 주요 교통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충청도 지도에는 점막의 수가 많이 보이고 고을마다 위치와 이름이 상세하다. 다음 호에는 《1872년 군현지도》로 본 경상도가 이어진다. 〔계속〕


김성희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명지대학교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겸임조교수, 한국고지도연구학회 학술이사이다. 공저로는 《옛지도로 재현하는 경상도 상주》가 있다.
또한 고지도 칼럼 기고와 전시 자문 등을 맡았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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