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④ 옛 지도에 담긴 제주의 삶과 풍경

화산섬 제주도에는 육지와 다른 자연환경과 풍습이 존재한다.
현존하는 제주도 지도는 조선 후기 지방관들이 고을을 순행하며 제주도의 자연과 생활양식 등을 글과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단일 군현지도로는 상대적으로 많은 종류가 남아 있으며, 기록화 성격을 지닌 회화식 지도로서 민화의 지방 화풍이 엿보인다. 대표적인 제주도 지도를 통해 고지도에 숨겨진 제주의 여러 모습을 찾아보자.


제주도는 독특한 자연환경과 전통 생활풍습이 살아 있는 섬 지역으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제주濟州’ 지명은 고려 시대 처음 사용됐으며 탐라耽羅, 영주瀛州 등의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제주도는 내륙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려 시대부터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면서 마정馬政을 위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조선 시대 이후에는 제주목사로 부임한 지방관들이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활양식, 관방關防 등을 글과 그림으로 남김으로써 중앙과의 인적·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록화적 성격의 회화식 지도

제주도의 이러한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많은 지도가 제작됐다. 문헌상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제주도 지도는 1007년 고려 목종 때 제주도의 서산瑞山에서 용암이 분출하자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가 파견되어 화산의 형상을 그려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산의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회화식 지도로 추정된다. 1482년에는 양성지梁誠之가 <제주삼읍도濟州三邑圖>를 그려 올렸다. 현존하는 제주도 지도는 우리나라 고지도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조선 후기 이후의 것이나, 단일 군현지도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종류가 남아 있다.
18세기 군현지도집인 《해동지도》에 수록된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는 제주도 지도를 대표하는 단독지도 가운데 하나다.(도1) 현대 지도와 비교하여 제주도의 모습이 동서로 압축되어 윤곽이 왜곡된 형태이며 섬 중심에는 한라산이 크게 그려지고 수려한 경관으로 천연기념물과 명승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 산방산, 송악산 등은 회화적 표현 방식을 사용해서 강조됐다. 이처럼 근대적 측량이 도입되기 이전에 제작된 고지도들은 자연 지형과 지역의 주요 장소를 알려주는 개념도의 성격이 강해 당시 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인식과 변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의 또 다른 지도 형식은 특정 지역과 주제에 대한 ‘기록화적 성격의 회화식 지도’를 들 수 있다. 지방에서 기록화적 성격의 회화식 지도 제작 양상은 지방관들이 자신이 맡은 임지의 관할 방어지와 백성들의 풍속을 관찰하기 위해 고을을 순회하며 감독하는 순력巡歷과 관련이 있다. 지방관들은 순력을 통해서 지역을 파악한 뒤 그 행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거나 명승을 주제로 실경산수를 남겼다.
명승지와 군사 요충지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지방관들의 이러한 기록 관행은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름난 관북지방을 비롯하여 제주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함경도 관찰사 남구만南九萬은 1674년 《함흥내외십경도》를 제작했으며 강원도 관찰사 김상성金尙星은 1745년 《관동십경도첩》을 남겼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17세기 말 제주목사 이익태李益泰가 제작한 《탐라십경도》와 18세기 초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남긴 《탐라순력도》가 대표적이다.

제주목사 이익태의 《탐라십경도耽羅十景圖》 병풍

이익태는 1694년 제주목사로 부임했을 때 두 차례에 걸쳐 관할 지역을 순회하고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도의 뛰어난 경치를 돌아본 후에 주요 군사요충지와 명승지 10곳을 골라 《탐라십경도》를 병풍 형식으로 제작했다. 이때 제작한 《탐라십경도》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이익태가 재임기간 중에 제주도 관련 역사 등을 기록한 인문지리서 《지영록知瀛錄》이 전한다. 이 책에는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 명월소明月所, 산방山房, 성산城山, 서귀소西歸所, 천지연天池淵, 취병담翠屛潭, 백록담白鹿潭, 영곡瀛谷 등 탐라의 십경으로 선정한 장소가 소개됐다. 조천관, 별방소, 명월소, 서귀소 등은 군사 방어 지역이며 산방, 성산, 천지연, 취병담, 백록담, 영곡 등은 명승지에 해당한다.

“나는 몇 년 사이에 두 번이나 순력하면서… 앞 사람들의 족적이 닿지 않았던 곳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제주를 두루 밟으며 그 중에서 뛰어난 10경을 화가에게 본떠 그리게 하여 자그만 병풍을 하나 만들어 내고 그 윗면에 그 사적事跡을 서술하여 보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 이익태, <탐라십경도서耽羅十景圖序>, 《지영록》

《탐라십경도》 서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 이익태의 《탐라십경도》를 통해서 제주 삼읍의 경관과 관방지역이 육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됐고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모사되면서 제주도의 경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제주십경도첩》은 이익태가 《탐라십경도》에서 선정한 십경과 같은 장소로 구성됐으며 각각의 설명은 《지영록》의 <탐라십경도서>와 일치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십경은 이익태의 《탐라십경도》가 전형이 되어 이후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짐작된다.
19세기에 제작된 《제주십경도첩》은 모두 화면 하단에 제주의 실경을 채색으로 그려 넣고 상단에는 사적의 이름과 설명을 써넣었다. 오랜 기간 민간에서 반복적으로 베껴 그리는 과정에서 독특한 화풍으로 변화됐으나 화면의 구성은 《탐라십경도》와 동일하다. 그 가운데 <산방>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 해안을 육지 쪽에서 바라본 장면이다.(도2) 산방산을 화면 왼쪽에 크게 그리고 단산과 송악산을 각각 오른쪽 아래, 오른쪽 측면에 배치했다. 산방산 서남쪽 중턱에는 암벽 속으로 깊이 파인 산방굴이 있는데 불상이 놓인 원형의 산방굴을 그려 넣었다.(도3-1, 3-2) <백록담>은 한라산 산정화구와 백록담 화구호를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리고 아래쪽에는 서귀포 앞바다를 배치했다. 화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백록담에는 물을 마시고 있는 흰 사슴들과 사슴을 타고 있는 선인을 그려 넣어 백록담 설화를 형상화했다.(도4)

제주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1702년 3월에 부임한 제주목사 이형상도 매년 봄, 가을에 행해지는 순력의 관례에 따라 부임한 해 10월에 가을 순력을 떠났다. 이익태의 순력 기간보다 규모가 큰 것이었고 순력과 더불어 한 해 동안 거행된 그날 그날의 행사 내용과 고장의 연혁 등을 포함해서 40장면을 제주목 소속의 화공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그리고 이를 비단으로 꾸며 《탐라순력도》 첩帖으로 만들었다. <호연금서>를 제외한 총 40장의 그림 가운데 28장은 순력 행사 기록, 12장은 순력 이외 공적 행사와 명승유람 장면 등이다.
《탐라순력도》의 구성은 제주도 지도인 <한라장촉漢拏壯曯>을 시작으로, 제주도 순력 및 행사를 기록한 장면이 총 39장이다. 41, 42면에는 서문을 쓰고, 마지막 <호연금서浩然琴書>를 끝으로 모두 43면이다. <한라장촉>은 제주 전역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제작된 지도로 부임해서 가장 먼저 도내의 정세를 파악해야 했으므로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02년 4월 15일에 그린 것이다.(도5) ‘배 위에서 거문고를 타며 글을 쓴다’는 의미의 <호연금서>는 제주도를 떠나면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제주해협을 건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도6) <호연금서>를 제외하고는 화면에 붉은색 선을 그어 삼단을 구획하여 상단은 제목, 중간 부분에는 순력 행사를 보여주는 그림, 하단은 순력이 시행된 날짜, 참여 인원, 기타 정보 등을 적었다.
《탐라순력도》의 내용은 해안 방어의 요충지인 방호소를 배경으로 조점(操點: 조련과 검열)과 시사(試射: 활을 시험적으로 쏨) 등 군사점검 및 군사훈련에 관련된 장면이 가장 많다. 이는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목사가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조된 것이다. <별방조점別防操點>은 이형상 목사가 1702년 10월 30일에 별방진성에 도착해서 성정군을 조련하고 군기와 우마 등을 점검한 것을 그린 장면이고 <별방시사別防試射>는 별방진성에서 활쏘기를 시험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제주도 주요 군사지역과 주변 경관이 함께 그려져 있어 회화식 지도의 기능과 함께 기록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도7, 도8)

<공마봉진>과 <감귤봉진>은 왕에게 올리는 진상품과 관련된 그림들로서 제주목사가 나라에 바칠 말들을 확인하고 진상할 새 감귤을 포장하고 있는 장면이다. 왕에게 올리는 진상품과 관계된 일들도 지방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서 제주도 진상품인 말과 귤에 관한 내용이 수록된 것이다.(도9) <건포배은>은 관리 300여 명이 관덕정과 건입포에서 조정을 향해 배례하는 장면 뒤로 마을 곳곳의 신당들이 불타는 모습을 검은 연기로 묘사했다. 조정 배례와 신당 혁파는 각기 다른 날 이루어진 것이나 유교적인 풍속을 따를 것을 약속하고 신당을 파괴한 사건을 한 화면에 기록함으로써 이형상이 제주도에 만연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부분을 기념하였다.(도10)

제주도의 경관과 풍속을 기록화적 성격으로 제작한 회화식 지도의 표현은 전반적으로 경물 및 경관의 묘사가 평면적이고 도식적이다. 19세기로 이어진 그림들도 과장되거나 화가의 개성을 보여주는 화풍들이어서 타 지역에 비하여 민화풍으로 그려진 회화식 지도가 많이 보인다. 이는 제주도 지역의 회화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제주도의 독특한 전통 생활양식이 드러나 흥미롭다. 다음 호에는 조선 말기 전국의 초상을 그린 군현지도를 살펴보겠다. 〔계속〕


글 김성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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