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② 한양을 그린 지도 도성도

도성도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그린 지도를 말한다. 한양은 고려 시대부터 풍수적으로 제일의 명당으로 꼽혔기 때문에 초기 도성도에는 명당이 갖춰야할 배산임수 지형이 반영됐다. 현재 남아있는 도성도는 대부분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유행한 진경산수화의 영향을 받아 산세의 표현에서 회화성이 나타난다. 또한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지도에는 필사본 지도에는 없는 판각 기술의 예술성을 발견할 수 있다.


도성都城은 한 나라의 도읍을 둘러싼 성곽을 뜻하지만 왕이 거주하는 궁이 있는 왕도王都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도읍의 성곽 내부를 중심으로 그린 지도를 ‘도성도都城圖’라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조선의 수도 한양의 전경을 그린 지도, 즉 서울의 옛 지도를 지칭한다.

한양 도성의 풍수

도성도를 보고 있으면 서울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조선이 수도로 삼은 한양은 지리적으로 북한산의 남쪽, 한강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풍수적으로 명당에 해당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조선 성종 때 편찬한 지리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북한산(삼각산)의 한 맥이 북한산 보현봉을 거쳐 백악(북악)으로 연결된다고 적혀 있다. 바로 이 지맥地脈이 모이는 북악산 아래 정궁인 경복궁이 세워졌다. 경복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주산主山이 되는 북악산의 서쪽으로는 인왕산, 동쪽으로 낙산(타락산), 남쪽으로 남산(목멱산)이 위치한다. 이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을 지은 후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을 쌓아 한양 도성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한양 도성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도는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된 <도성都城>(규장각 古4709-68), 1750년대 편찬된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수록된 <경도오부京都五部>(규장각 古大4709-41),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광여도廣輿圖》에 수록된 <도성도都城圖>(규장각 古4790-58) 등이 있다. 이들 군현지도책에 수록된 도성도들은 한양 도성이 자리한 풍수지리 형국을 강조하여 산줄기를 중심으로 도성의 지리적 위치를 설명하였다. 그중에서 한양 도성의 풍수 지형을 명당明堂 개념으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도는 《광여도》의 <도성도>이다.
이 지도는 북한산(삼각산)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북악산(백악산)으로 이어지고 그 맥이 북악산에서 크게 한번 솟아오른 형태를 부각시켰다. 북악산 아래 경복궁과 6조六曹를 비롯한 관아 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도성 주위가 낙산(타락산)과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형국임을 강조되었다. 경복궁의 양편으로 북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청계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성 중심을 흐르다가 한강에 합류된다. 지도의 아래쪽에는 두모포豆毛浦에서 서강西江에 이르는 한강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산계와 수계가 강조된 구도는 조선 후기 명당을 표현하는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도1)

도성도의 제작

도성도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제작되었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고 고려 국도풍수國都風水의 영향 아래 새로운 수도를 물색한 끝에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남한강과 북한강의 수운을 활용할 수 있는 한양에 도성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1394년 정도전, 권중화, 심덕부, 김주, 남은, 이직 등을 한양에 보내 종묘, 사직, 궁궐, 시장, 도로의 위치를 그린 새로운 도읍 지도를 바치게 하였으며 한양이 수도로 결정되면서 한양 도성도가 탄생했다.
이후 1454년(단종 2) 수양대군은 팔도지도八道地圖와 경성지도京城地圖를 제작하기 위해 산천의 형세를 잘 아는 예조 참판 정척, 그림을 잘 그리는 집현전 직제학 강희안, 지도에 밝은 직전直殿 양성지, 화원 안귀생, 풍수지리를 담당하는 상지相地 안효례, 산사算士 박수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북한산 보현봉에 올라 산의 형상과 물의 줄기를 살펴 정하고 직접 도성 지도의 초안을 잡았다. 화원과 상지관이 동행한 것으로 보아 이때의 지도는 조선 후기 《광여도》의 <도성도>와 같은 종류의 도성 풍수지형을 설명한 그림 지도였을 것이다.
한편, 1467년 세조는 안효례, 유희익, 이육, 김유, 이익배에게 명하여 자로 거리를 재서[尺量] 도성 지도를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측량 기술이 적용된 지도는 세조가 1454년에 풍수지리의 지형을 강조해서 제작했던 경성지도와는 다른 형식의 발전된 지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기록으로 전하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도성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전부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현재 확인된 도성도들은 대부분이 18세기 중기 이후의 것이다.

한양 도성을 산수화같이 그린 지도

18세기 중반 이후 도성도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도성 주변의 산세를 산수화풍으로 표현한 점이다. 1788년경에 제작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도성도>(규장각 古軸4709-3)는 한양 도성을 산수화풍으로 그린 지도 가운데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대표적인 지도이다.(도2) 경복궁 조망이 가능한 동십자각 건너편 트윈트리 타워에 올라가 보면 경복궁 뒤로 펼쳐진 북악산과 인왕산의 거대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성도의 회화적 양식을 설명하는 것은 뒤로하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아름다운 산세 때문인지 조선 시대 화가는 지도를 그리면서도 도성 주위의 산을 산수화처럼 그려내었다.(도2-1, 3)
산의 형태와 질감에 따라 먹선의 농담과 굵기를 달리하면서 선을 날카롭게 내리긋거나 붓을 살짝 눕혀서 넓은 먹선으로 장중한 바위 봉우리를 표현하였다. 가늘고 마른 선을 여러 번 긋는 피마준披麻皴으로 산의 입체감을 나타내고, 붓을 뉘어 점을 찍는 미점준米點皴으로 토산의 토질을 나타내었다. 산과 산 사이에는 구름처럼 보이는 흰 여백으로 공간감을 주고 멀리 보이는 산들의 실루엣 처리 등은 도성도의 전체적인 화면을 더욱 회화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산형 부분만 떼어 보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도성의 지도를 그리면서 ‘수도 한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라는 단순한 정보만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면 그것이 비록 주문자의 요청에 의한 것이거나 특정한 용도가 있는 지도일지라도 이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실경과 유사하게 화폭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도성도>는 오늘날 회화 작품 못지않은 예술성을 지닌 지도로 평가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가 유행한 이후, 도성도는 산수화의 형식을 빌려 그려졌다. 특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이 지도 제작에 사용되었는데,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도성도>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서울역사 014165)는 진경산수화풍으로 묘사되어 회화성이 뛰어난 도성도로 꼽힌다.(도4) 북악산과 인왕산의 바위 부분에 구사된 부벽준이나 남산에 짙은 먹으로 찍은 미점 산수, T자형으로 소나무 군락을 표현한 방식에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도4-1) 또한 이 지도는 2m가량의 대형 지도로 현존하는 도성도 중에서 가장 큰 지도이다. 다른 도성도와 비교하여 도성에 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며 커다란 화면에 18세기 중반 당시 도시의 모습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도성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도성대지도>와 같은 지도들은 도성 안의 도로와 주요 건물들은 실측을 통하여 축척 지도로 나타내면서도 산세의 표현에서는 축척을 달리하여 산수화와 같은 회화성으로 실재감을 강조했다. 산세를 강조함으로써 도성의 지리 정보 제공과 함께 회화적 아름다움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결합되었다.

목판에 정교하게 새겨 넣은 도성도

18세기 이후에는 지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도성도 제작과 이용이 일반화되었다. 회화적 성격을 띠는 필사본 도성도를 비롯하여 보급이 쉬운 목판본 지도가 제작되었는데, 이는 당시 한양의 문화·경제적인 변화가 활발했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1840년대 후반에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1804~1866 추정)가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수선전도首善全圖>의 판목板木은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같은 <수선전도>가 여러 장 전하는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도성 지도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도는 북쪽으로 북한산과 도봉산, 서쪽으로 마포, 동쪽으로 답십리, 남쪽 한강까지 성저십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목판본임에도 도성 내부 종묘와 사직, 궁궐과 관청을 비롯하여 한성 5부에 속한 하부 행정구역의 이름까지 많은 양의 정보를 상세하게 새겨 넣어 목판본으로 제작된 도성도 가운데 최고로 손꼽힌다. 그러나 도성 내의 많은 인문정보를 표시하기 위해서 도성 안을 넓게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면적이 훨씬 넓은 도성 밖, 성저십리 지역이 축소되었다.(도5)

목판에 정교하게 새겨 넣은 <수선전도>는 판화로서도 가치가 높다. <수선전도>의 목판은 3매의 판으로 구성되어있고 상·중·하단을 이어 찍으면 한 장의 지도가 완성된다. 판의 두께는 1.3~1.4㎝ 정도이다. 도성 안 시가지 부분은 미세하고 작은 둥근 칼을 사용하였으며 도로의 두께는 0.5㎜ 정도로 가늘고 섬세하다. 도성을 병풍처럼 둘러선 북한산(삼각산)과 도봉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는 날카로운 ∧형을 반복해서 새기고 도성 주변 산세는 둥그스름한 곡선과 미점으로 새겨 넣어 내산과 외산을 구분했다.(도6) 삼각산의 세 봉우리(인수봉·만경대·백운봉)와 지도의 제목 글씨 ‘수선전도’ 부분을 보면 삼각산 이름 그대로 세 봉우리가 뿔처럼 솟은 형상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지도의 여백이 되는 목판의 음각 부분에 둥근 칼을 사용해서 나무의 결대로 새긴 판각 기술은 산수화풍의 필사본 지도와는 또 다른 지도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다음호에는 지역의 경관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군현지도郡縣地圖’에 대해 살펴보겠다. 【계속】



글 김성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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