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감정위원의 고지도 읽기 ①
조선시대 고지도, 회화식 지도의 아름다움

조선후기 지도와 회화는 제작자, 표현기법, 형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당시의 지도제작을 화원이나 화사군관, 그리고 민간에서 활동하는 화공이나 화승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19세기에는 지방 고을이나 특정 지역을 그린 군현지도의 회화성이 두드러졌으며,
민화풍 지도가 활발하게 제작됐다.
이런 점에 비추어 민화의 조형성과 회화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지도 전문가인
김성희 감정위원과 함께 조선시대 고지도를 읽어본다.


조선시대 고지도古地圖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회화식 지도 즉, 그림지도가 많은 점이다. 회화식 지도는 대상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리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자연 지형은 산수화에 준하는 화법畫法으로 구사되어 지도와 산수화가 결합한 형식의 그림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지도나 전국지도보다는 지방의 고을이나 명승지名勝地, 군사시설[鎭營]과 같은 비교적 한정된 지역이나 특정 지역을 구체적으로 그린 지도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회화식 지도는 표현 대상이 실재하는 경관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특히 18세기 이후 성행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회화식 지도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에 회화성이 강조된 지도를 족자나 병풍 형식으로 만들어 지도이면서도 감상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진경산수화가 쇠퇴한 19세기 말까지도 회화식 지도에는 진경산수화 풍의 영향이 있었다. 또한 19세기에 증가한 민화풍의 지도도 회화식 지도로서 가치가 높다.

지도와 회화의 관계

최근 우리 땅을 그린 그림에 대한 전시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의 제작 과정을 화가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이와 연계한 <관아와 누정이 있는 그림>(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서화실), <그림과 지도 사이>(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서화실)는 옛 화가들이 그린 다양한 실경산수화와 실경을 담아내는 또 다른 방식인 지도와 회화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들이다.
전시된 수원화성(도1), 평양성, 통영 등의 모습을 담은 병풍그림은 <그림과 지도 사이>라는 전시의 제목처럼 선뜻 이것이 지도인지 산수화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시점은 부감법俯瞰法으로 지역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취하면서 산과 나무는 산수화 기법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지도地圖’는 낱말 그대로 땅을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그림을 뜻하는 ‘화畵’라는 글자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밭[田]의 사방 경계로 풀이된다. 즉 지도와 산수화는 근본적으로 땅을 그린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두 장르는 인간의 삶터를 대상으로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구현한다는 공통점을 지니며 제작자와 표현 기법, 형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제작 방식을 공유한다.

지도와 산수화의 관계 첫 번째는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조선시대 도화서圖畫署에 소속된 화원畫員은 왕실에서 쓰이는 각종 기록화나 장식화 때로는 감상화를 제작하게 되는데, 지도를 그리는 일도 도화서 화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중시되었다. 조선 후기는 중앙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사회에서도 행정과 통치, 군사적 방어의 기능 및 지역의 실정 등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도가 제작되었고 1740년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의 감영監營과 군영(軍營: 통제영, 병영, 수영)에 도화서 화원을 지방으로 파견하는 ‘화사군관畵師軍官’ 제도로 인해서 18세기 후반 지방에서 제작된 지도 가운데 한층 회화적 수준이 높은 지도가 완성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18세기 후반 <전주지도>(도2)는 지방의 도시를 그린 회화식 지도 가운데 정통화법을 익힌 화원의 솜씨가 돋보이는 지도이다. 전주부의 주변 산천과 건물 구조, 꽃나무의 묘사 등이 지도이지만 산수화 못지않은 표현법으로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도2-1)
지도와 산수화의 관계 두 번째는 동양에서 자연경관을 보는 시점이다. 산수화는 화가의 시점에 따라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의 ‘삼원법三遠法’을 적용한 다원적 시점으로 물리적 공간이 심리적 공간으로 표현되는데 회화식 지도에는 이와 같은 산수화 시점이 최대로 구현되었다. 특히 지방의 고을이나 특정 지역에 대한 지리정보를 회화식으로 그린 지도의 경우, 읍치(邑治: 고을의 중심 공간)의 내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시俯瞰視지만, 읍치 주변의 자연경관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고원 시점이며 더 멀리는 아득하게 먼 광활한 공간이 펼쳐진다. 때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펼쳐지는 시점이거나 물길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방향을 달리하는 등 한 장의 지도에 여러 시점이 구현된다.
지도와 산수화의 관계 세 번째는 장황 형식이다. 장황이란 서책이나 서화첩 등을 종이나 비단 등으로 꾸미는 것으로 바탕 재질이 비단이나 종이로 된 옛 그림은 반드시 장황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종이나 비단 등에 그려지는 지도는 이용의 목적이나 기능에 따라 책冊, 첩帖, 축軸, 병풍屛風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축이나 병풍형식은 회화식 지도의 대표적인 형태이며 화면이 크고 표현 기법에서 감상의 기능이 강조되어 회화적 예술성이 높은 지도들이 많다. 대표적인 지도들이 <도성도> 축, <동래부지도> 축, <진주성도> 병풍, <평양성도> 병풍 등이다. 15~16세기에는 계축契軸이 유행하였는데 계회도의 화면 구성은 상단에 전서篆書로 명칭을 적고 중단에 산수 또는 실내를 배경으로 계회 장면을 그린다. 하단에는 계회에 참여한 인물들의 관직과 성명 등을 적은 좌목座目이다. 1557년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도3)는 축 형식의 지도로 16세기에 유행한 계축 형식과 화면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이는 지도가 회화와 형식면에서도 공유되는 부분이 많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발달과 함께한 회화식 지도

18세기 이후 회화식 지도는 진경산수화의 발달과 함께 전성기를 이루었다. 진경산수화는 회화식 지도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역으로 지도를 그리던 화가들은 지도 제작의 경험으로 실경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진경산수화의 발달에 이바지하였다.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도4)는 진경산수화의 유행을 선도하고 화풍을 정립시킨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강원도 금화현金化縣의 현감으로 부임한 친구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의 초대로 1711년(辛卯年)에 금강산을 여행하고 그린 내금강(금강산 옥녀봉, 비로봉, 월출봉 줄기를 경계로 내륙에 있는 서쪽, 금강산관광 때 개방되었던 지역이다.)의 모습이다. 내금강의 여정을 알 수 있게 길을 뚜렷하게 그리고 봉우리마다 세세한 명칭을 적어 넣은 부분에서 지도적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이후 정선이 36년 뒤에 다시 찾은 내금강의 모습을 그린 <금강내산金剛內山>과 비교하면 조선시대 진경을 그리는 화가들도 지도와 산수화의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실경을 바탕으로 진경산수를 그리기 시작한 18세기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예술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실경을 그대로 옮긴 지도로 간주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정선에게 진경산수를 배우고 강세황(姜世晃, 1713~1791)과 교유가 깊었으며 김홍도(金弘道, 745~1806?)와도 교분이 두터웠던 화가, 담졸 강희언(澹拙 姜熙彦, 1710~1764)이 도화동(桃花洞, 자하문 근처)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며 그린 <인왕산도仁王山圖>(도5)에 강세황이 써 놓은 찬문의 내용을 통해서도 회화식 지도의 제작 방식이 진경산수화의 제작 방식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진경을 그리는 사람은 매번 지도와 닮을까 걱정하지만 이 그림은 십분 진경에 가깝게 그렸으면서도 또한 화가로서의 법도를 잃지 않았다.
[寫眞景者每患似乎地圖而此幅旣得十分逼眞且不失畫家諸法]

이처럼 회화식 지도와 진경산수화의 관련성은 화가와 그 화가가 실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는 점에 있다. 화가가 무엇을 ‘그린다’는 행위에서 그것이 지도이건 산수화이건 화가의 감성이나 다소 주관적인 표현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산의 형태와 질감, 나무를 표현하는 화가 자신만의 필법이나 제작 당시 화단畫壇에서 유행한 화풍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도성을 그린 지도 가운데 가장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도성도都城圖>에는 정선식의 진경산수화 풍의 영향이 보이는데, 부드러운 형태의 토산에 수평으로 반복해서 찍은 미점米點의 준법이나 가는 선을 반복해서 산형의 입체감을 나타내는 피마준披麻皴, 소나무를 T자형으로 그리는 기법 등은 정선의 산수화에 여지없이 나타나는 표현들이다.(도6)

지우재 정수영(之又齋 鄭遂榮, 1743~1831)은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제작한 농포자 정상기(農圃子 鄭尙驥, 1678~1752)의 증손이다. 정수영은 가업인 지도 제작에도 관여하였다. 정수영이 금강산을 사생하고 제작한 《해산첩海山帖》이나 뱃길로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여행하며 그린 <한임강유람도권漢臨江遊覽圖卷>은 스케치 풍의 사실적인 실경산수화로 즉흥적이고 생동감 있는 현장의 느낌이 경관에 대한 정수영의 지리적 관심이 반영되어있다.

19세기 민화풍으로 그려진 회화식 지도

민화풍 지도의 제작은 회화식 지도가 지도로서의 이용 목적 보다는 감상의 대상으로 그 기능이 변화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가졌던 것과 관련이 있다. 18세기에 수많은 화가가 남긴 금강산 그림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지며 진경산수화풍에서 민간 화가들이 그린 민화풍으로 제작되었다. 민화풍의 지도는 19세기 말 주로 명승지를 그린 지도를 중심으로 그려졌으며 그중에서도 민족의 금강산 그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편 지방에서 활동하는 지역 화가들이 그린 지도에도 민화풍의 표현이 두드러지는데 제주도의 경우는 다른 지역에 비하여 민화풍의 지도가 많다. 1872년에 전국의 군현을 그린 회화식 지도는 고을별로 많은 편차를 보이며, 지역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지도에는 민화풍의 표현이 나타난다.
19세기 <철산읍지도8폭병풍鐵山邑地圖八幅屛風>은 평안북도 철산읍을 그린 지도로 민화풍으로 그려진 8폭의 대형 병풍 지도이다. 회화식 지도의 특징대로 고을의 전경을 그리고 주요 지명을 적어 놓았다. 1~5폭은 읍치를 중심으로 지역의 경관을 묘사하였으며 주변의 산천은 산수화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주변 경물과의 비례와 상관없이 고을 현령의 행차 장면을 크게 그려 강조하고 진채를 사용하여 부각했다.(도7) 이는 지도적 요소를 차용해서 신임 현령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지역의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6~8폭에 표현된 촛대봉, 신선봉, 금수암은 매우 도식적으로 그려져 앞의 5폭에 그려진 지도와 상반되는 표현이다.(도8) 이 그림은 회화식 지도가 민화의 형식으로 변화되며 화면 형식이 자유롭게 구성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세기 <칠보산도>(도9)는 함경도 명천군에 위치한 칠보산을 그린 민화풍의 명승도이다. 화원 한시각(韓時覺, 1621~?)이 《북관수창록北關酬唱綠》에 그린 <칠보산전도>와 구도가 유사하여 17세기 칠보산을 그리는 법식이 19세기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칠보산도>를 그린 화가는 실경에 상상을 더하여 천불동은 석불을 닮은 수많은 바위가 쌓여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칠보산 전경은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서 구성하고 지명은 별지에 써서 붙여 회화식 지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민화풍의 회화식 지도는 대상은 같지만 표현 방식에서 상당히 자유롭고 개성적으로 묘사되었다. 지금까진 살펴본 회화식 지도는 화가들에 의해 제작 당시 유행한 화풍이 반영되었으며 18~19세기에 절정을 이루어 우리나라 고지도의 특징을 이루었다. 다음호에는 조선의 수도 한양의 전경을 그린 지도, ‘도성도’가 이어진다. 【계속】



글 김성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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