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아 작가의 제주 민화 – 그림에 그린 것은 바다일까, 마음일까

내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청록 계열 색은 협재 바다를 표현한 것이다.
몇 번을 보아도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그곳은 늘 반짝반짝 손을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 글·그림 김생아 작가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구르는 모래 위, 누군가가 남긴 발자국 사이로 유리 조각들이 반짝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협재 해변의 쓰레기를 주웠다. 이렇게 비치코밍(beachcombing)한 것들은 도자기 가마에서 구워져 작품으로 재활용된다. 일상이 휴식이 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실천이 예술이 되는 곳, 제주다.
7년 전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제주살이를 결정했다. 섬 생활은 아이뿐 아니라, 나에도 많은 경험과 기회를 줬다. 혼자 그림을 망치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응원하는 법을 배웠고, 제주의 청정자연은 새로운 스승이 되어주었다.

도2 <꽃북어>, 2018, 순지에 수간분채, 봉채, 명주실, 15×70㎝

발길 닿는 대로 민화에 스며든 제주

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제주 곳곳에는 전설이 얽혀있다. 한라산은 설문대할망이라는 제주의 창조신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라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문대할망>(도1)은 이 전설을 모태로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 할머니는 해가 졌는지도 모르고 치마폭에 돌과 바다를 차고 넘치게 담아 제주를 짓는 데 여념이 없다. 할머니 주위로 제주에서 흔하게 보는 비취색 바다와 불그스름한 노을, 제주를 상징하는 녹나무·제주오색딱따구리·제주왕벚꽃도 함께 어우러졌다. 축축하게 젖은 바위돌과 거친 현무암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물감을 뿌리거나 표면이 거친 물체로 찍어 표현했다.
설문대할망은 키가 너무 커서 치마를 입고 있어도 음문陰門을 가릴 수 없었다고 한다. 탐라백성들에게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지만, 탐라의 명주를 다 모아도 속옷을 완성하지 못했다.

(왼쪽) 도3 <다산북어> 부분 / (오른쪽) 도4 <합격북어> 부분



(왼쪽) 도5 <크리스마스북어> 부분 / (오른쪽) 도6 <색동북어> 부분



할망과 제주 사람들에게 절실했던 명주는 나의 북어 연작에서도 중요한 오브제다. 예로부터 명주실타래는 각종 의례에서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선조들은 북어의 밝은 눈과 벌어진 입이 재액을 소멸시켜준다고 믿었고, 북어를 명주실로 감아 부정을 막기 위한 장소에 매달았다. 이런 풍습은 지금도 남아있다. 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풍습을 변용해, 북어의 유선형 몸체에 맞춰 전통적이거나 현대적인 도상을 그려 넣었다. 또한 ‘매달 수 있는 북어 그림’으로 평면회화를 넘어 장식미술, 나아가 조각으로까지 작품의 형태를 확장해보았다.
북어 그림은 각각의 길상적인 의미를 좇아 제자리를 찾아갔다. 플라워샵의 이니셜이 꽃모양 누빔 장식으로 들어간 <꽃북어>(도2)는 홍콩에 사는 플로리스트에게, 석류와 잉어가 그려진 <다산북어>(도3)는 예비부부로 보이는 한 커플에게 시집보냈다. 의뢰를 받아 제작된 것도 있고, <합격북어>(도4), <크리스마스북어>(도5), <색동북어>(도6) 등 입시나 명절 같은 시즌을 위한 것도 있다. 이처럼 현대민화는 민화가 갖고 있는 상징성, 표현기법을 재해석하여 현대인의 소망, 정서, 생활방식을 반영하는 추세다.
요즘에는 제주인의 돌문화를 보여주는 제주 동자석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의 독특한 지형과 생태는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영감을 준다. 느릿느릿 걷는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나의 색감에 스며들어 생명력을 과시한다. 풍파 속에서 평온을 기원했던 섬사람들의 마음은 파도소리에 밀려오고 밀려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김생아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노호남 작가를 사사했다.
다수의 단체전과 제3회 대한민국민화아트페어에 참여했으며, 설촌창작민화연구회 주최 ‘2020 창작민화가를 위한 장학금’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현재 (사)한국민화협회와 휘원회 회원이다.
제주에서 ‘제주생아’ 화실을 운영하며, 월간<민화> 지역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
2018 (사)한국민화협회 회원전
2019 월간<민화> 리포터 초대전
2019 중국산서대학교 초청한국민화 특별전
2019 <책거리 Today> 기획전
2019 제3회 휘원회 지도자과정 회원전
2019 싱가포르 Affordable Art Fair
2020 한국민화전업작가회 <민화부채展>
단체전 및 초대전 다수

수상
2018 제11회 대한민국민화공모대전 특선
2019 대갈문화축제 제7회 현대민화공모전 특선
2020 제4회 전국민화공모대전 특별상 등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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