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고장, 영월 산골에 핀 ‘민화의 꽃’ 조선민화박물관

김삿갓의 고장
조선민화박물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맑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 외딴곳에 민화의 요람이 펼쳐져 있다. 4천여 점 이상의 민화를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화전문박물관으로, 2000년부터 전국 규모의 민화 공모전을 성황리에 진행해 민화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박물관 도시 영월의 대표 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의 특별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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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여 점 이상의 유물 자랑하는 중견 박물관

오석환 조선민화박물관 관장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 계곡을 그윽이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한 조선민화박물관은 7천 4백 평 규모의 널찍한 대지에 자리한 민화의 요람이다. 핵심 유물인 전통 민화를 비롯해 춘화, 민속품 등 무려 4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중견 박물관으로서 본래의 기능인 민화의 전시뿐 아니라 체험과 교육, 매머드 공모전, 민화상품의 개발, 민화 관련 도서의 출판 등 다양한 방향에서 민화계의 발전과 민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는 민화의 전진 기지라 할 만한 곳이다.
김삿갓 계곡에 물소리만 울려 퍼지던 2000년 7월 29일 지금의 자리에 개관한 이래 지방, 그것도 외진 산골에 있는 시골 박물관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제 조선민화박물관은 볼거리 많은 아름다운 고장 영월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로 거론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 영월은 박물관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조선민화박물관이 개관할 때만 해도 박물관은 하나도 없었다. 조선민화박물관의 고군분투가 없었던들 영월이 오늘날의 ‘박물관 특구’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훨씬 더 험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조선민화박물관은 민화의 보급은 물론 사립박물관의 모범적인 운영에도 작지 않은 귀감이 되어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박물관에 1시간은 머물게 하라

우리나라에서 사립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박물관을 여는 사람이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나 모아놓았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지만, 관람객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멋진 것들이 모여 있으니 관람객이 알아서 모여들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이다. 박물관 운영자들의 꿈은 여기서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유물에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없을지도 모를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아둘 묘안이 없으면 박물관 경영은 힘들 수밖에 없다.
조선민화박물관도 처음엔 똑같은 고충에 시달렸다. 민화에 대한 관심도 많지 않은데다 워낙 오지에 자리 잡고 있어 관람객들의 접근성도 매우 떨어졌다. 어쩌다 김삿갓 계곡에 놀러 온 김에 잠깐 둘러보는 관람객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마저 5분도 채 보지 않고 박물관 문을 나섰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볼 것이 없다’는 그들의 말이었다. 민화가 이렇게나 많은 데 어째서 볼 게 없다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관람객들 잘못이 아니라 잘못 운영하는 나의 잘못이었어요. 내가 좋아한다고 남도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요. 잘 몰라서 재미를 못 느끼면 알려줘서라도 재미를 느끼게 해야 했는데, 박물관 문만 열어놓고 멍하니 있었던 것이지요.”
오석환 관장은 깊은 고민을 통해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일단 박물관에 들어선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어떻게든 붙잡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에 들어오면 최소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는 머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입장료가 아깝지 않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어요.”

박물관 운영의 세 가지 키워드

조선민화박물관 체험프로그램조선민화박물관의 운영 노하우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바로 ‘해설’, ‘체험’, ‘상품’이다.
모든 유물은 아는 만큼 보이게 되어있다. 그런 점에서 해설은 유물과 대화를 나누지 못해 금방 밖으로 나가버리는 발걸음을 묶어두는 묘약이다. 곧바로 해설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설을 하다 보니 이왕이면 더욱 재미있는 해설을 하기 위해 스토리 텔링을 연구했다. 이렇게 되자 관람객들이 박물관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체험은 직접적인 재미를 느끼는 최고의 방법이다. 어떤 일이든 몸소 해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민화를 직접 그려보고, 만들어 보게 했다. 특히 어린이들이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체험하는 동안 어른들은 결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어른들도 관심을 가지고 진중하게 관람을 하게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상품의 개발이다. 요즘엔 어떤 박물관에 가든지 뮤지엄 샵은 필수이다. 문화 상품의 판매는 박물관의 수익을 늘리는 데도 기여하지만, 관람객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은 자신이 왔던 것을 추억하고 기념하는 소중한 흔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도 박물관을 늘 기억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관람객은 박물관을 다시 찾을 확률이 높다.
이런 철학 때문인지 조선민화박물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고 다양한 상품을 구비해 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상품을 연구 개발하는 데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민화의 경우에는 민화 특유의 길상과 복을 기원하는 상징성이 강한 소재가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구매층을 염두에 두고 상품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입신양명과 합격을 상징하는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응용한 상품은 입시생 등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상품이 된다.

민화 공모전의 모델을 만들어 내다

조선민화박물관의 선구자적 행보 중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처음으로 ‘민화 공모전’을 열었다는 것이다. 오석환 관장은 박물관 문을 열기 전부터 민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민화에 대한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는 민화작가들의 창작열을 고무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방법을 궁리한 끝에 내놓은 카드가 바로 공모전이었다.
공모전은 민화 작가들이 상금을 놓고 기량을 겨루는 대회라는 점에서 관심과 열기를 고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혹여 운영이 투명하지 않거나 심사과정이 석연치 않으면 도리어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 점을 경계했던 오 관장은 무엇보다 운영과 심사의 투명성 확보에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현재 응모자의 수나 상금의 규모 등에 있어 조선민화박물관의 공모전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다. 현재는 공모전 수상자들로 구성된 조직인 ‘민수회(회장 송창수)’가 조선민화박물관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외곽단체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을 정도이다. 아울러 민수회는 그 자체가 뛰어난 작가들의 집단이라는 점에서 민화 화단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 또한 만만치 않다.
나아가 오 관장은 공모전의 모집요강이 민화 화단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초등학생 부문과 창작 부문을 신설한 것도 실은 창의성이 담긴 ‘현대의 민화’를 지향해야 하는 현대 민화의 트렌드를 의식한 결과이다. 향후에는 민화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 집단을 키우기 위해 전공 학생 분야 상을 신설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강진에 분관 설립, 제2의 도약 꿈꾼다

조선민화박물관이 자리 잡은 김삿갓면은 조선 후기의 전설적인 시인 김병연(金炳然)의 묘소와 거주지 등 그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곳이다. 김병연은 ‘김삿갓’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서민 민중과 더불어 애환을 같이했던 이를테면 ‘민중시인’이다. 오석환 관장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지 않았던 이곳을 박물관의 터로 지목한 것도 민화가 지닌 ‘서민성’이 김삿갓의 생애와 일맥상통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선민화박물관의 공모전을 매년 열리는 영월군의 ‘김삿갓 축제’와 일정을 맞춰 개최하는 것에도 실은 이런 뜻이 숨어있다.
어쨌든 문화적 토양 자체가 기름지지 못했던 영월 땅에 박물관을 세우고 공들여 가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립박물관으로 성장시키고 나아가 ‘박물관의 고장’ 영월의 박물관 문화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전적으로 오석환 관장의 못말리는 집념과 끈기가 이룬 작은 기적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과감히 버리고 고난이 예견된 박물관 운영의 길을 택한 것도, 좋은 길목을 버리고 명분을 따져 영월의 산골짜기에 박물관을 건립한 것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일에 대한 열정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민화박물관은 최근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에 조선민화박물관의 분관을 낼 계획이 완료단계에 이른 것이다. 수장고에 이미 차고 넘치는 소중한 유물들이 조만간 청자의 고장, 강진의 박물관으로 이사를 가게 될 것이다. 오 관장이 그간 보여준 뚝심으로 보아 강진을 청자의 고장이자 ‘민화의 고장’으로 새로 자리 잡게 한다는 그의 원대한 구상도 좋은 결심을 맺을 게 틀림없어 보인다.

조선민화박물관
  • 관람시간 : 하계(3월~10월) 오전 9시~오후 6시, 동계(11월~2월) 오전 9시~오후 5시. 연중무휴
  • 관람요금 :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 유치원생 3,000원 (20인 이상 단체관람 시 각각 1,000원씩 할인, 2급 이상 장애인은 무료, 영월군민은 50% 할인)
  • 문의 : 033-375-6100 / www.minhwa.co.kr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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