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중, 욕망과 분노 모두 껴안은 꽃세상 화엄華嚴의 세계를 그리다




월간<민화>의 기획전 <화조화 Today>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근중 작가의 모란 시리즈.
벽면에 우뚝 선 그의 작품은 생동하는 풍경과 매혹적인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존재’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화폭에 오롯이 자신을 피워낸 그의 이야기 속으로.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김근중 작가는 모란을 빌어 ‘존재’라는 화두를 든다. 압도적인 스케일은 차치하고 보는 이를 단박에 매료시키는 작품의 기저엔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이 농밀하게 응축된 셈.
“꽃세상을 따로 찾을 필요가 있나요?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 자체가 꽃세상인데. 저도 지지고 볶는 작품을 해야겠다 싶었죠.(웃음) 엄숙한 화조화가 아닌, 제 감정과 욕망을 솔직히 표현한 작품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김근중 작가의 말처럼 그가 그린 <꽃세상>은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천태만상의 풍경이다. 감정이 분출하듯 물감 자욱이 뚝뚝 흘러내리며 활짝 피어난 꽃부터 고개를 푹 수그린 꽃송이까지 모란의 표정도 다양하다. 극사실적으로 치밀히 묘사된 도상들은 네온사인처럼 강렬한 색감과 어우러져 생동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예쁜 모습이 아닌 것도 꽃이에요. 마냥 화려해보여도 벌레가 있거나 추한 면이 있기 마련이죠. 무엇이든 선악, 긍정과 부정이 공존합니다. 예쁜 것만 그리니 꽃이 죽어버리는 거예요. ‘아름답다’의 어원이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는데 ‘알움답다’는 설이 있더군요. ‘씨(알)가 싹(움)을 터서 그답게 된 것,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우리가 지닌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포용할 때 진짜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분별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정신, 주객일체론主客一體論은 수십년 간 동양철학에 천착해온 그의 선이자 도와 다름없다. 작품 제목 대부분이 ‘Natural Being(原本自然圖)’인 이유이기도 하다.

< Natural Being(꽃세상,原本自然圖)11-16 >, 2011, 캔버스에 아크릴, 100×80㎝



< Natural Being(存在)20-1 >, 2020, 캔버스에 혼합재료, 130×162㎝

‘나’를 마주하며 피워낸 모란

김근중 작가가 처음부터 모란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첫 개인전을 개최한 1990년에는 고구려, 중국 둔황 벽화를 포스트모던한 추상화의 형태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대만 유학 시절 접했던 중국 둔황석굴의 벽화와 고대 암각화에 그려진 선인들의 원초적 예술혼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한국화를 파격적으로 풀어낸 김근중 작가는 90년대 초반 월간<신동아>에서 평론가와 미술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2000년대를 대표할 작가’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화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추상화 작업과 단색조의 미니멀 시리즈를 이어가며 단조로운 작업 방식에 매너리즘을 느끼게 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택한 소재가 바로 ‘꽃’이었다.
“처음엔 무슨 꽃을 그릴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어요. 장미를 그리려고 장미사진을 찍어보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순 없어 그만뒀죠. 그러던 중 우연히 민화전을 개최한 갤러리에서 12폭 모란병풍을 보고 ‘이거다!’싶었어요. 화면을 가득채운 올오버페인팅이 인상적이었죠. 인위적인 접근법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신의 경지가 민화인 것 같아요.”
김근중 작가는 모란이 지닌 부귀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부귀는 현재를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진짜 부자는 금전이 많든 적든 자신의 삶을 진실로 귀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게 시작한 작업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했다. 새로운 화풍을 창조하기 위해 익숙했던 모든 방식을 버려야 했기 때문.
“가급적 제 감정과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색에 대한 고민도 컸어요. 좋은 색을 써보려고 책을 참고하기도 하고, 유명 작가들의 색을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했지만 제 것이 될 순 없었죠.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 그제야 제 스타일이 나오더군요.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원망이나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인정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남의 눈치를 보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긍정과 부정 모두를 포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실이고 또 예술이겠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2005년 동산방화랑에서 선보인 <꽃세상> 시리즈는 화단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김근중 작가는 모란 시리즈로 통인옥션갤러리,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실, 일본 켄지다끼 갤러리, 뉴욕 킵스갤러리 등 국내외에서 수많은 초대전을 이어가며 ‘모란작가’로서 입지를 다져갔고, 최근에는 중국 대형 쇼핑몰 시노 오션(Sino-Ocean)과 그의 모란 이미지를 옥외광고, 리플릿 등 브랜딩에 활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 Natural Being(꽃세상,原本自然圖)10-14 >,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62×259㎝



< Natural Being(꽃세상,原本自然圖)11-6 >, 2011, 캔버스에 아크릴, 97×130.3㎝

구도求道하는 삶이 곧 예술

김근중 작가는 지난 2월 아트비트갤러리에서 개인전 을 성료하는 등 미니멀 시리즈와 추상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회화적 문법은 서로 다를 지라도 ‘존재의 본질(Natural Being)’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상통하는데다 각 장르가 지닌 자유분방함이나 질서는 상호 시너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작품 모두가 내 모습인데, 어느 한 가지의 틀만으로 규정할 순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추후 추상화, 미니멀 시리즈, 화조화 세 가지 장르를 하나로 합친 작품을 그리거나 입체, 설치 작업 등을 시도하며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혀감과 동시에 국제무대를 목표로 해외전도 차근히 준비할 예정이다. 한동안 작업에만 매진할 것이라는 그, 김중근 작가에게 예술은 구도이자 기도이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보다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예술도 예술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나는 제대로 예술을 하고 있는가?’ 저 스스로 항상 되묻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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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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