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과 페미니즘적 표현이 돋보이는 명작 한국민화뮤지엄 소장 <영수화>

영수화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영수화>

영수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동물로 수호신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사신,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비롯하여 용, 호랑이, 봉황, 기린, 신구, 해태, 사불상, 불가사리, 천록, 삼두독수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호랑이와 사불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상의 동물이며, 주로 여러 가지 동물의 신체 일부분이 합성된 형태로 묘사된다. 길상성과 벽사의 특징을 가지는 민화에서는 주로 서수瑞獸가 그려졌다.

신비와 호기심의 대상, 영수靈獸를 그린 그림

UFO, 즉 미확인 비행물체가 나타났다는 뉴스는 전 세계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대중에게까지도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전설상에 존재하거나 이를 실제로 봤다는 개인적인 목격담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선조들에게는 영수靈獸가 바로 현대인들의 UFO와 비슷한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영수가 액운을 쫓아주고 복을 불러다주기까지 한다니, 선조들이 이러한 벽사, 기복적인 영수를 그림의 주제로 애용했던 것은 어찌 생각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영수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동물로 수호신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사신,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비롯하여 용, 호랑이, 봉황, 기린, 신구, 해태, 사불상四不像, 불가사리, 천록, 삼두독수리 등이 이에 해당된다. 호랑이와 사불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상의 동물이며, 주로 여러 가지 동물의 신체 일부분이 합성된 형태로 묘사된다. 길상성과 벽사의 특징을 가지는 민화에서는 주로 서수瑞獸가 그려졌다.

3단 구성과 음양의 요소 배치가 독특한 영수화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영수화>는 20세기 초 작품으로 보이는데 현존하는 대부분의 영수화 패턴에서 벗어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한 가지의 영수가 등장하고 봉황과 오동나무 또는 대나무처럼 각각의 영수와 관련된 배경이 함께 그려지는 일반적인 영수화와 달리 여러 종류의 영수가 배경 없이 한 화면에 배치된 것이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위쪽부터 3단 구성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상단에는 달토끼와 기린, 중앙에는 수사슴과 봉황, 그리고 하단에는 삼족오와 암사슴이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사슴은 영수가 아니라 십장생에 해당되지만, 다른 영수들과 함께 그려졌다는 것이다. 형태상으로 뿔의 갈라진 모양과 등줄기의 검은 털, 몸통의 점박이 문양, 그리고 하단에 위치한 암사슴이 불로초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아 사슴이 그려진 것이 확실한데 이는 영수의 하나이자 사슴과에 해당하는 사불상, 즉 말의 머리, 소의 발굽, 당나귀의 몸, 사슴의 뿔과 비슷한 생김새이지만 이 네 가지 모두와 같지 않다는 중국의 실존 동물을 사슴으로 대체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평면적으로 그려졌으며 하단의 암사슴을 제외하면 모두 오른쪽을 향하는 정자세로 그려져 고대 이집트 벽화를 연상시킨다. 각각의 영수를 살펴보면 표현 자체도 다분히 현대 일러스트나 만화 속 캐릭터를 떠올리는데 달토끼와 기린은 속눈썹이 그려져 있고 기린 도상은 원형의 눈과 눈알, 몸에 난 점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원, 그리고 뿔의 끝과 발굽의 원형과 같이 반복적인 도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원들은 상단의 달과 하단의 태양, 수사슴을 뒤덮고 있는 원형 문양과 함께 전체적으로 디자인적인 통일감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통일감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영수들의 포즈와 달토끼, 두 마리의 사슴, 봉황의 눈매와 눈동자를 그리는 데 쓰인 일관적인 표현 방식, 그리고 모두 위쪽으로 치솟아 있는 기린의 뿔, 수사슴의 왼쪽 귀, 봉황의 벼슬과 털, 암사슴의 오른쪽 귀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된다.

파격적인 페미니즘의 표현으로 보는 이유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영수도>의 가장 큰 특이점은 바로 달토끼와 삼족오의 배경이 되는 달과 태양의 위치이다. 달은 예로부터 여성의 상징이며 토끼 또한 다산과 여성의 상징물로 사용되어 온 반면에 태양과 삼족오는 양陽, 즉 남성의 상징물로 여겨져 왔다. 이 작품에는 여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달이 상단에, 그리고 남성의 상징물인 태양이 하단에 배치되어 있는데 작품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마치 일월오봉도에서 오른쪽에 그려지는 태양과 왼쪽에 그려지는 달의 위치를 바꾼 것과 마찬가지로 가히 파격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단의 달무리가 기린에 가려진 부분을 보아 기린이 먼저 그려지고 그 후에 달과 달무리를 그렸다고 볼 수 있지만 달토끼와 삼족오를 제외한 영수들이 그려진 이후에 무심코 이 둘이 추가되었다고 보기에는 하단에 있는 암사슴의 위치가 상단과 중단의 다른 영수들에 비해 오른쪽으로 너무 쏠려 있다. 따라서 하단의 경우 삼족오를 먼저 그리거나 혹은 삼족오가 들어갈 공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고 암사슴이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를 근간으로 개국되었고, 양란 이후의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유교적 이념이 더욱 강조되어 생활 깊숙이 자리 잡게 되면서 통치 이념으로서뿐 아니라 생활과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력이 강화되었던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부차적인 존재 또는 피지배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재가여자손금고법, 외출금지법, 내외법 등의 국가 주도하의 직접적인 여성에 대한 통제 외에도 칠거지악 등의 풍속을 통한 간접적인 제약들이 존재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정치 참여 등이 거부되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파격을 넘어선 금단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물론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이후 여성의 인권 신장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었고 페미니즘적인 주장이 나오기까지 여론이 사회적인 뒷받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병자호란에서 주전파의 일원이었던 김상용金尙容(1561~1637)의 후손이자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생존했던 김호연재金浩然齋가 『자경편自警編』의 부부윤리에서 여성의 행실만을 문제 삼던 당시의 관행을 지적하기도 하였고,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여식인 김운金雲이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없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백 년간 유지되어 왔던 삼강오륜과 유교적 가치관이 법제의 정비로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 작품을 20세기 초의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변화 속에서 나타난 페미니즘적 표현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달과 태양의 위치뿐 아니라 속눈썹의 표현이나 봉황의 벼슬 모양, 머리 장식을 연상시키는 기린의 수염 부분 등 예쁘장하게 그려진 전체적인 도상을 고려할 때 여성에 의해 그려진, 당시로써는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페미니즘적 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민화 작호도에서 서민들로 상징되는 까치가 타락한 관료로 대표되는 우스꽝스러운 호랑이를 내려다보며 비웃는 것이 해학이라는 명목하에 통용되었듯이 이 작품에서도 길상적이고 벽사적인 여러 영수를 그리는 프레임을 택하면서도 실수 또는 우연을 가장한 달과 태양의 배치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의 세상을 꾸짖을 수 있었던 점이야말로 민화가 신분이나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두루 사랑받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 고귀하다고 여겨졌던 문인화에 비해 민화가 얼마나 다양한 재료들을 담을 수 있는 크고 관대한 그릇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타인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남녀 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지언정 말이나 행동으로 꺼냄에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의 표면적인 남녀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른바 ‘딸바보’ 아빠들이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을 벗어나 여아의 출산율이 남아의 출산율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비슷한 경력을 가진 여성에 비해 남성의 평균 임금이 현저하게 높고, 출산휴가와 같이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장치가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활용하는데 사회적 제약이 따르는 실정이다. 언어적으로도 남성에 비해 여성 비하적인 표현이나 욕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영수화>가 시사하는 페미니즘적 발상과 남녀평등에 대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글 : 오슬기(한국민화뮤지엄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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