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층문화 흔적 찾아 전국 누빈 30여년의 여정



노승대 조자용기념사업회 이사가 오는 10월 저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사네》를 발간한다.
책 속에는 그가 故 조자용 박사가 타계하기 전까지 18년간 보필하며 체득한 전통 문화의 미학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이 스며있다. 노승대 이사를 만나 그의 신간과 조자용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노승대(69) 조자용기념사업회 이사는 우리 문화의 기저에 깔린 모태문화를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이른바 민문화民文化 전문가이다. 그는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 후 1977년 광덕 큰스님을 은사로 송광사로 출가했다가 1986년 환속, 운명처럼 故 조자용 박사를 만나 그가 타계하기 전까지 늘 곁에서 보필하며 민문화를 탐구하는데 온 마음을 바쳤다. 노승대 이사는 에밀레 박물관 객원연구원과 한울문화원 원장, 불광사 협력 차장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도 27년째 불광 바라밀문화기행을 이끌며 답사, 저술 작업을 이어오는 등 역사 문화 전문가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오는 10월 저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출간을 앞둔 그를 만나 책 이야기와 더불어 조자용 박사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자용 박사를 추억하는 그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조자용 박사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으셨는데,
맨 처음 조자용 박사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1983년 봄 조자용 박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제가 몇 달 동안 중병을 치르고 몸을 추스르던 무렵인데 가까운 지인이 절더러 꼭 만날 분이 있다며 에밀레 박물관으로 데려가 조자용 박사님을 소개시켜줬습니다. 훤칠한 거구에 막힘없으면서도 구수한 말솜씨, 영어와 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 우리 문화에 대한 엄청난 열정에 이내 반하고 말았지요. 이때부터 속리산을 수시로 드나들고 박사님의 저서들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1984년 둥지굿부터 시작해 행사가 있는 날이면 항상 속리산으로 내려가 박물관 숙직실에서 지내며 경비원, 객원연구원, 행사실무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2000년 1월 박사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18년을 모시게 된 것이죠. 깐깐하시기로 소문난 김선희 사모님(조자용 박사의 아내)께서 해주신 밥을 가장 많이 얻어먹은 사람이 바로 저일 거예요.(웃음)
그 과정에서 배운 우리 문화를 저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지 뭐에요. 1993년부터 불광사 신도님들과 바라밀문화기행을 시작하며 현재까지 사찰을 중심으로 전국의 문화재를 답사했고 2002년부터 7년간 인사동 문화학교 교장을 하며 문화답사와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조자용 박사님께서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일평생 노력하셨지요.
이와 관련하여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박사님께서는 하버드 대학에서 구조공학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신 뒤 우연히 경주 석굴암을 보시곤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토록 훌륭한 우리 문화도 제대로 모르면서 서양문화를 먼저 배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전통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한 ‘모태문화’, ‘생부모문화’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시게 된거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요. 문자를 아는 지식층은 이미 사대주의에, 승려들은 외래종교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대다수 평민들이 향유했던 기층문화를 기록해 주는 사람은 드물었을 거예요. 박사님께서는 그동안 외면되다시피 했던 기층문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자는 취지에서 이겸노, 박종한, 심우성, 신영훈, 김종규 선생님들을 모셔 1970년 민학회를 발족하셨습니다. 민학회가 창립되기 2년 전에는 도깨비기와, 호랑이 민화 등 오랜 기간 모아온 자료들을 선보일 에밀레 박물관을 김포 등촌동에 세웠고, 1974년에는 호랑이 민화 수집품만을 모아 <한호의 미술>이라는 전시를 개최해 성료하셨죠. 1980년대엔 월간<자유> 발행인인 고 박창암 선생과 한국상고서를 서술한 역사서 《환단고기》를 번역, 일본에서 선출판한 뒤 국내에서도 번역본을 출판해 고대사 붐을 일으키는데 한몫 하셨습니다.

조자용 박사님의 주요 활동으로 삼신사 수련장 설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체험하는 박물관’을 주창하시며 1986년 속리산에 고가 50채를 헐은 재목으로 삼신사 수련장을 설립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 방식대로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싼다’라는 모토 아래 수많은 수련생들이 삼신사 수련장에서 전통음식을 먹고 밤을 새웠죠.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내로라하는 대기업, 스포츠 팀들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 저 역시 그곳에서 상주하다시피 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그렇게 수련장을 운영하시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원고를 정리해 나가셨어요. 우리 민족문화의 모태는 삼신사상이라 확신하시고 더욱 철저한 답사와 연구를 위해 삼신학회도 만드셨죠. 관련 연구를 위해 박사님과 함께 장수바위, 알터, 칠성바위, 거북바위 등을 찾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돌아다녔는데 그때 찾아낸 자료들은 《삼신민고》, 《장수바위》 등 박사님의 저서에 다 실려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온 산상의 기우제터도 꼭 답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심장이 나쁜 관계로 박사님 대신 제가 전국의 산상 기우제터를 찾아 다녔습니다. 관련 내용은 1999년에 발간한 저의 책 《바위로 배우는 우리문화》으로 엮었습니다.

조자용 박사님께서 개최한 대규모 전시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조자용 박사님은 우리 문화의 상징으로 삼신, 도깨비, 호랑이, 거북이, 용 이렇게 다섯 가지를 꼽으셨습니다.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1998년부터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삼신전시회를, 1999년에는 도깨비 전시회를 여셨지요. 특히 도깨비 전시회는 반응이 좋아 분당 삼성프라자 미술관 초대전으로 다시 열렸고, 다음해 1월 대전 엑스포전시장에서 1,000평이 넘는 규모로 확장 전시되었습니다. 제가 농담 삼아 ‘박사님은 민족문화 상징전시회가 매년 잡혀 있으니 돌아가시고 싶어도 돌아가실 수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박사님께서는 건강 악화에 과로가 겹쳐 수술 일정을 하루 앞둔 2000년 1월 30일 급작스레 별세하셨습니다. 전시 개막후 속리산으로 돌아가셨다가 전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이야길 들으시고 다시 전시장을 방문하신 날이었지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시장을 지키셨던 박사님께서는 한민족의 문화정체성을 탐구하고 그 아름다움을 되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문화 선각자였습니다.
“정림사터를 제대로 보려면 말이야, 달밤에 막걸이를 한말쯤 마시고 가서 두 눈으로 탑을 보면 진짜 멋있다고.” 박사님께서는 이렇듯 틈만 나면 전통문화의 미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을 전수해주셨습니다. 저도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답사를 거듭하고, 경험하다보니 저절로 글이 써지더군요. 그동안 월간 <불광>, 월간 <사람과 산>, 월간 <템플스테이>, <공간 플러스>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답사기를 굉장히 많이 썼어요.

이사님께서는 오랜 기간 저술작업을 해오시면서도 책을 펴내신 것은 20년 만입니다.
책을 내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지난 27년간 문화답사를 다니며 개인적으로 품었던 궁금증을 추리고, 그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했습니다. 사찰에 나타난 민화의 등장 배경, 의미 등 제가 궁금했던 내용은 다른 자료를 찾아보아도 정리가 잘 되어 있질 않아 그간 공부했던 것을 이번 기회에 나름대로 정리해 둔거죠. 거북이, 호랑이, 용, 모란 등 사찰에 등장한 민화의 유래, 기타 조각상, 목각 등 사찰 내 다양한 조형물의 연원과 의미 등이 주를 이룹니다.

향후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박사님의 유고가 《도깨비 문화》 입니다. 박사님께서 돌아가실 무렵 출간을 준비 중이던 원고인데 공교롭게도 담당 출판사에서 사진을 몽땅 잊어버려 책을 출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현재 원고는 다 정리한 상태이고 사진의 경우 과거 박사님께서 진행하셨던 도깨비 전시회 도록에서 사용한 도판을 다시 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자료는 다 찾아놓은 상태이고 박사님께서 남기신 도서 레이아웃도 남아있어 출간 작업은 무리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가오는 대갈문화축제 개막 전에 책을 발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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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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