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부터 차근차근 ⑭구경거리 가득한 책거리

책거리
책거리

유교적인 학문을 숭상하는 조선시대 상류층의 의식을 반영한 그림, 책거리.
책거리의 거리는 무엇을 어딘가에 건다는 뜻이 아니라 굿거리, 장거리, 반찬거리, 걱정거리, 두통거리, 푸닥거리 등과 같이 많은 구경거리를 뜻한다. 다양한 소재가 독특한 기법으로 어우러진 책거리를 그려보자.

소재와 성립 과정

책거리는 책가도, 탁장문방도(탁장기혈도), 문방사우도, 문방구도, 문방도의 이름으로도 불리며, 일본에서는 서가도와 문방도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책거리에 사용된 소재는 문방구(책장, 먹, 벼루, 붓, 종이, 벼루함, 문갑, 촛대, 바둑판, 붓통, 안경, 책, 화첩, 연적, 지통, 봉투 등)와 과일(포도, 감, 석류, 참외, 수박, 선도, 유자, 귤, 오이, 불수감 등), 꽃과 나무(화병, 난,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장송, 매화, 국화, 모란, 연꽃, 장미, 작약 등), 동물(다람쥐, 나비, 매, 벌, 사슴, 잉어, 봉, 토끼, 새, 학, 물고기, 꿩 깃털, 공작 깃털 등)과 각종 기물(담뱃대, 수반, 마작패, 좌등, 다관, 시계, 방위판, 빗자루, 반짇고리, 부채, 노리개, 악기, 청자기, 향로, 술병과 술잔, 유리, 그릇, 어향, 주전자, 청동기, 옥조각, 인주, 항아리, 꽃신, 족두리, 남바우, 인장, 향낭, 모자, 연적, 산호초, 치마, 괴석, 수석 등)이 소재로 등장한다. 초기에는 책보다는 과일, 채소, 족두리, 어항, 빗자루 등 각종 물품이 그려졌으며, 후기에는 사랑방 선비의 취향에 맞는 책과 문방구, 문인의 품격을 살리는 수석이나 석인재 등에 한정되어 그려졌다. 구도에 있어서 탁장문방도의 일정한 유형이 엄격하게 지켜진 초기와 달리 후기로 갈수록 각종 책과 기물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형식으로 변화하며, 원색적인 채색에 추상성이 강조되었다. 중국의 원체화(궁정화원의 그림양식)에서 책거리의 여러 유형을 형성시킨 원전에서 책장, 기명절지화, 문자도 등 한 두 가지가 결합되어 책거리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한다.
책거리는 기발한 입체주의가 돋보이는 꽃꽂이식과 역원근법이 쓰인 진열장식, 각종 기물과 화초가 어우러진 기명절지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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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와 다시점

책거리는 지혜를 무력하게 만들고 합리성이 한계를 이탈한 자유로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문화권은 르네상스 이래 하나의 시점으로 그림을 그려왔으며, 주객을 분리해 대립적이고 분석적이며 분할적인 사유형태를 강하게 드러내왔다. 세계와 자아를 대립관계로 보고 주관성을 강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0세기 들어서 입체파가 등장하면서 일시점 화법이 아니라 다시점 화법을 사용하게 된다. 반면 동양문화권에서는 자아의 개별성, 주관성보다는 세계와 어우러지는 전일성 내지 합일성이 중요하게 여겨져 현상과 실체의 이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거리에서도 특정한 시점이 없는 자유로운 다시점을 취하고 있으며, 시점의 이동에 의해 변형된 도형들이 등장한다.
이밖에 책거리에는 밝고 어두움으로 멀고 가까운 것을 표현하는 명암법과 후면이 전면보다 넓고, 전면이 후면보다 좁은 역원근법 등이 쓰였다.

책거리 그리는 법

책거리는 관념적인 표현이 들어간다. 벼루는 탁자에 올려진 것이 아니라 방바닥에 놓여있는 각도로 그려져 있고 먹은 갈아지고 있는 상태이다. 찻잔은 놓여있다는 사실보다 그 자리에 해당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를 가진다. 둘을 보면 바닥에는 네모난 벼루가 위에는 둥근 찻잔이 놓여있어 천원지방을 상징한다. 책은 많이 쌓아놓음으로써 높은 벼슬에 올라 학문의 성취를 이루기를 바라고 화병은 복을 받아 상서로움을 맞이하여 평안하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기원하는 기물이다. 갖은 기물이 등장하므로 빛과 그림자, 도형의 조형원리를 익히면 좋다. 궁중에는 자비대령 관청이 있는데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 공예, 기물, 자기, 패물, 가구, 기타 등등 여러 가지를 담당해 생산했다. 그림 그리는 곳은 도화서(도화원)이라 하여 과거시험같이 화원을 뽑을 적에 여러 가지 그림으로 시험을 보는데, 책거리를 도안과 자도 없이 그렸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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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케치(데생)

모조지나 화지에 그리려고 하는 책거리를 팔분할법으로 1~8폭 또는 10폭을 연결해서 스케치를 한다. 먼저 전체를 파악한 후 큰 형체부터 스케치를 하고 서서히 세밀한 곳을 스케치하여 화도(밑그림)을 만든다. 붓만 사용할 경우 시각적으로 반듯한 것 같지만, 직선을 그을 적에 가운데 쪽이 볼록하게 생겨 휘어지므로 선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긋는다. 자를 사용할 경우 자가 안쪽으로 파인 곳을 밑으로 두고 1mm 정도 띄운 후 붓과 받치는 용구(싸인펜 뚜껑 끝쪽을 쓰면 편하다)와 밀착된 상태에서 붓을 45° 기울인 후 선을 긋는다. 이 방법은 근대미술이 들어오면서 많이 사용됐다.

2. 한지 재단하기

한지에 그리려고 하는 그림의 폭당 사이즈를 재고 난 다음 양옆에 2~3㎝ 간격으로 송곳으로 조기대(미장나무 자)를 대고 눌러 접는다. 그래야만 병풍을 꾸밀 때 든든하다. 연결 병풍이기 때문에 재단을 신중히 한다. 초안을 잡을 때부터 우측을 1번으로 하여 1번에서 8번까지 계속 연결해서 그리고, 1번과 8번을 2~7번보다 4~5㎝ 작게 한지를 재단한다.

3. 책거리 그리기

화도(밑그림)를 밑에 대고 재단한 한지를 위에 놓고 본격적으로 작업한다. 책거리는 직선이 많은 관계로 각이 정확해야 하며, 신중하지 않으면 병풍을 꾸밀 때 전체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 단폭이나 각폭으로 되어있을 경우 직선이 많이 있어서 좌우 균형에 신경쓰면서 밑에 공간을 균등하게 맞춘다. 밑에서 위로 책과 기물, 꽃 등을 그려나가되, 도자기는 좌우대칭을 맞춰 찌그러지지 않게 그린다. 아교포수는 물 2/3, 아교1/3을 섞어서 중탕한 후, 식혀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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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채색하기

1. ë°°ê²½

바탕은 주(홍) 2.5 + 군청(남색) 2.5 + 백 4.5 + 먹 0.5를 섞은 후 채색한다. 보라색이 되어야 한다. 외곽 테두리는 군청 6 + 먹 4를 섞어 채색하고 마른 다음 안쪽에서 2~3mm 정도 띄워 황(노란색) 선으로 선을 긋는다. 안쪽에 보이듯이 그 넓이에 진한 먹으로 절반쯤 바림한다. 밝은 색부터 진한 색으로 기물과 자기, 책 등 모든 것을 백색부터 채색한다.

2. 자기

바탕색을 채색한다. 황색 바탕에는 주(홍색)로 바림하고, 주(홍색) 바탕에는 연지색으로 바림, 녹청이나 군청 바탕에는 중묵으로 바림한다. 백색 바탕에는 감색을 담채로 바림한다. 도자기의 채색이 완성된 후 주둥이와 아래 밑바닥은 백색으로 진하게 선을 긋고 완성한다.

3. 책

바탕색을 채색하고 그보다 진한 채색으로 바림한다. 색은 도자기 바림한 것을 참고한다. 책갈피가 보이는 쪽에서 밑에서 위로 바림한다. 책갈피가 좌로 됐을 경우 우측에서 좌측으로 삼각형으로 절반쯤 바림한다. 우로 된 경우는 좌에서 우측으로 삼각형으로 절반쯤 바림한다. 책 안쪽 백색 바탕은 흐린 먹으로 밑에서 위쪽으로 선을 약간 굵게 해서 긋는다. 한쪽 끝 채색 바탕은 황색 바탕에 홍선, 주(홍색) 바탕에 황선, 녹청과 군청 바탕에 백색 선으로 진하게 선 긋고 원래 있던 선과 경계되는 곳에 진한 먹으로 점을 찍는다. 주(홍색)에는 연지색에 먹을 약간 바림하고 황색에는 주(홍색)으로 바림한다. 군청색에는 군청과 먹색을 섞어 바림하고 녹청색에는 녹청과 먹색을 섞어 바림한다. 연두(백록+황록)는 녹청에 먹색으로 바림한다. 분청색은 군청(남색)으로 바림한다. 분홍은 주색이나 연지색으로 너무 진하지 않게 채색한다.
※색 만드는 법 : 분청은 군청이나 녹청 2/10에 백색 8/10을 섞는다. 분홍은 주(홍색) 2/10에 백색 8/10을 섞는다. 분황은 황 2/10에 백색 8/10을 섞는다.

4. 꽃

백색 바탕의 꽃은 연지색을 흐리게 하여 안에서 바깥쪽으로 바림한다. 주(홍색) 바탕의 꽃은 연지에 먹을 약간 섞은 후 안에서 바깥쪽으로 바림한다. 연지에 먹을 약간 섞어서 진하게 하여 선을 그어 완성하고 꽃점은 가운데 쪽에 서족점으로 찍는다. 꽃잎은 녹청과 황색, 연두색을 쓰는데, 황색 바탕은 끝에 주(홍색)로 바림한다. 중묵으로 잎맥을 그리는 것은 동일하다. 꽃나무는 대자색을 바탕으로 채색한 후 중묵으로 바림한다.

5. 기물

연한 대자색과 진한 대자색으로 바탕을 채색하고 두 색에 먹을 약간 섞은 후 바림한다. 무늬는 선 위쪽이나 아래쪽에 선을 긋는다. 어떤 것은 나무결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나무 필통처럼 황색 기물일 경우, 대자색으로 바림한 후 무늬와 외곽선을 그린다. 연적은 백색 바탕에 한쪽을 먹으로 진하게 채색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하여 무늬를 선 외곽으로 덧선을 긋거나 바림한다. 빠진 곳이 없나 확인하고 완성한다.

딸 박추연 작
제자 차혜영 작

 

글·그림 : 박수학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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