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복의 현대 민화 이야기 – 풀벌레의 생동감을 옮긴 초충도

초충도란 작은 풀이나 꽃 주변에 살고 있는 곤충류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초충도하면 떠오르는 신사임당의 작품은 후대에 수없이 임모되어
진품과 모방품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오랜 세월동안 초충도에 담긴 상징적 의미는 빛이 바랬을지 모르지만,
풀벌레의 생동감을 옮긴 소박한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


민화를 배우는 초급 단계에서 많이 그려지는 화재畫材 중의 하나가 초충도일 것이다. 초충도草蟲圖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하는데 주로 오이, 호박, 포도, 가지, 도라지, 맨드라미, 꽈리, 원추리, 양귀비, 수국, 나팔꽃, 채송화, 기타 이름 모를 야생초 등의 풀꽃이 등장한다. 여기에 개구리, 두꺼비, 벌, 나비, 여치, 반딧불이, 매미, 도마뱀, 고슴도치, 박쥐, 족제비 등을 함께 그려 넣는다. 화조도花鳥圖나 화훼도花卉圖에는 키 큰 나무와 풀 등을 소재로 그리지만, 초충도에는 일년초나 다년생의 작은 풀이나 꽃과 그 주변에 살고 있는 곤충류 등이 등장한다. 초충도를 더 세분하면 새와 곤충을 그린 충금도蟲禽圖, 채소와 키 작은 과실나무들이 있는 풍경을 그린 원소도園蔬圖, 파리와 나비를 함께 그린 승접도蠅蝶圖, 벌과 매미를 그린 봉선도蜂蟬圖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신사임당 전칭작이라는 꼬리표

2004년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신사임당의 탄신 5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아름다운 여성 신사임당〉이라는 주제로 강릉시 오죽헌과 시립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바 있다. 이 특별전에는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총 20여점이 공개되었는데, 특히 주목했던 점은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공·사립대학의 박물관에서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공표한 거의 모든 작품들을 예외 없이 과감하게 ‘전칭작傳稱作’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당시 강릉 오죽헌과 시립박물관장인 정항교씨는 전시도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조선전기의 회화작품이 많이 전하지 않은 현실에서 신사임당의 작품들이 다수 전한다는 것은 퍽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개별 작품들의 화법이 동일하지 않은데다가 수준도 일정하지 않아 전칭되는 작품들을 모두 신사임당의 진작眞作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사임당의 작품을 모두 위작으로 간주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정항교씨는 “전칭되는 작품들을 꼼꼼히 따져 그 시대의 양식에 맞지 않는 작품들부터 우선적으로 추려내는 것만으로도 진작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 방법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없는 한 신사임당 작품 모두를 ‘전칭’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 유출된 그림 가운데 이른바 신사임당 계열의 초충도가 몇 점 알려져 있으나 일반적으로 신사임당 전칭작의 범주에 넣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장처가 다른 유사한 초충도는 같은 밑그림을 가지고 모방해서 그렸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이 중 하나는 진품眞品이고 다른 하나는 모방품이라고 판단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신사임당 전칭작에 대한 현상은 그동안 신사임당의 그림이 후대에 인기가 있어 수없이 많은 작품을 임모해서 소장되어 왔다는 단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고려시대부터 그려온 초충도

당시 국립광주박물관장이었던 이원복씨는 우리나라 초충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식 두 가지를 지적하였는데, 첫 번째는 사임당을 초충도를 최초로 그린 화가로 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와 연유되어 마치 초충도가 남성과는 무관한 마치 부녀자만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초충도의 연원에 대한 고찰이 먼저일 것이다.
초충도는 사임당이 즐겨 그린 것은 사실이나 그녀가 조선시대에 가장 먼저 그린 초충도의 선구자로 보기는 어렵다. 12세기 전반에 제작된 고려청자에 초충문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부터 초충도가 그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 자수에서도 볼 수 있는데 14세기로 추정되는 한국자수박물관 소장의 〈사계분경도四季盆景圖〉(보물 제653호)가 그것이다. 조선 초 문인화가 강희안의 초충도에 관한 작품은 전해진 게 없으나, 원예에 대한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초충도 전반에 대한 제시가 남아 있다. 사임당 이전 시기인 15세기에 제작된 〈청화백자망우대명초충문접시靑畵白瓷忘憂臺銘草蟲文楪匙〉에는 푸른 청화 안료로 들국화에 벌을 함께 표현해 마치 한 폭의 문인화를 연상하게 한다. 조선후기에는 문인화가 윤두서, 정선, 심사정, 강세황과 전충효, 최북 등의 화원출신의 직업화가에 의해서도 즐겨 그려졌다.
그래도 조선시대 ‘초충도’하면 현재 강릉 오죽헌 율곡기념관에 전해지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년)의 전칭작으로 알려진 〈신사임당초충도병申師任堂草蟲圖屛〉이 대표작이다. 세로 48.6cm, 가로 35.9cm 크기의 초충도 여덟 폭과 두 폭의 발문으로 구성된 총 10폭짜리 병풍이다. 8폭의 그림 양 옆에는 정호鄭澔와 이은상李殷相의 발문이 배접되어 있는데, 그 중 정호가 쓴 초충도 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내가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벌레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음과 풀포기들의 향기롭고 깨끗해 보임이 어떻게나 핍진乏盡한지 그야말로 저 이른바 하늘 조화를 빼앗았다는 그것이 아닌가 싶었다.”

뛰어난 신사임당의 초충도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1624년 건립하여 율곡 이이를 배향한 송담서원에 소장되었다. 1804년 송담 서원이 화재가 나서 같이 소실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박기수가 입수하여 고손자 박영균이 보관하게 되었다. 그 후 율곡의 종인從人인 이장희씨가 입수하여 보관하다가 1965년 강릉시에 양여하여 현재 오죽헌 박물관 내 율곡 기념관에 보관하게 되었다.
신사임당의 전칭작 〈신사임당초충도병申師任堂草蟲圖屛〉은 지본채색한 것으로 ‘오이와 메뚜기’, ‘물봉선화와 쇠똥벌레’, ‘수박과 여치’ 등의 소제목이 붙여진 8폭 그림이다. 대체로 화지畫紙의 중간에 주요 식물을 배치하고 그 옆에 보조식물을 그렸으며, 위아래로 날벌레와 길벌레를 배치하였다.
오이와 수박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뻗어, 다시 왼쪽 위로 곡면을 이루며 꺾인 구도로 묘사되어 넝쿨식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심식물 옆에 그려진 보조식물로는 패랭이, 달개비, 도라지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단조로운 구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나비, 벌, 방아깨비, 메뚜기, 잠자리, 하늘소 등과 같은 곤충이 패랭이꽃, 맨드라미, 나팔꽃 등의 식물과 단출한 구도를 이루며 어우러진 것으로, 신사임당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단정한 채색이 돋보인다.

자연에 순응하는 아름다움

중국 북송의 화보인 《선화화보宣和畵譜》에 실린 초충화법草蟲畫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풀벌레를 그리려면 그 날고 번뜩이는 울고 뛰는 상태가 살려져야 한다. 풀벌레의 형태는 대소 장단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빛깔은 때에 따라 변화하게 마련이다. 초목이 무성할 때는 벌레의 빛깔이 초록색으로, 초목이 단풍이 들 때는 벌레의 빛깔도 칙칙하게 그려야 한다. 풀벌레는 대개 점을 찍어 자세히 그리면서도 정신이 먼저 붓 끝에 나타나 있어 보이게 하여야 한다. 모든 풀벌레는 모두 머리를 먼저 그리지만 나비만은 날개를 먼저 그린다. 또 꽃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나비가 있어야 하며, 그래야 꽃이 더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사마귀는 작은 벌레지만 위엄이 있도록 그려야 한다. 따라서 풀벌레는 아주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형상과 정신이 충분히 표현되어 핍진逼眞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초충도가 인기가 있었던 연유를 살펴보자면 먼저, 작은 벌레나 동물들조차 대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광경을 화폭에 담고 싶었을 거라는 해석이 있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사계절이 때맞추어 바뀌듯이 ‘자연은 보이지 않는 이치나 섭리를 따라 움직인다’는 사상에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유교 사상에도 잘 녹아 있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찮은 풀벌레나 짐승들이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상징적 의미를 담아 소원을 이루고 싶은 욕망가득한 길상화로서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화조도가 그랬던 것처럼 초충도에 그려진 곤충, 벌레들 역시 오랜 세월동안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거나 잊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상징적 의미가 퇴색되었다 하더라도 그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감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이미지 속에 각인된 잠재 기억과 욕망을 소환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귀엽고 작은 벌레와 곤충들의 생동감을 표현한 초충도는 앞으로 더 사랑받게 될 것이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스몰 라이프(small life)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유행이다. 초충을 그리는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닐까? 땅에 붙은 작은 풀과 그것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작은 벌레들에게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작은 생명체까지도 기꺼이 화폭에 담아냈던 사임당이 곰살스러워 정겹게 느껴진다.


글 금광복(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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