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복의 현대 민화 이야기 – 창조는 옛것으로부터

조선 후기 사회와 경제가 급변했고, 발전과 더불어 여러 문제도 나타났다. 민화民畵는 당시 부조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던 서민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는 대중미술이다. 우리는 이제 민화가 지닌 상상력과 전통적 가치를 되새겨,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미술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대가 있는 민화, 민화가 있는 현대를 기대하며.


민화는 조선 후기 약 100여 년간 민간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그림이다. 우리나라는 임란壬亂과 호란胡亂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경작지가 파괴되고 국가재정은 고갈되기에 이른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었던 농민의 피폐한 생활과 조세제의 폐단은 이전의 경제체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과 특용작물의 재배는 광작廣作으로 이어져 소수의 지주가 다수의 소작농을 부리게 되었고, 수공업자들은 관청의 소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산하여 판매하는 민영수공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시장경제가 형성되어 서민들에게도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實學 사상은 문화, 예술분야에 민중문학, 민중예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잉태하는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양반 사대부 등 특정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미술작품을 하층민도 소장·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경제 변화는 하층민의 신분상승과 함께 부富의 축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는 민화民畵라는 새로운 화풍의 대중미술을 유행하게 하였다.

문선영, < happy mom >, 120×108.5㎝

박생광, <신라토기와 단청>, 69×46㎝

서민의 삶과 소망을 표현하다

전통은 역사와 민속 속에 살아 숨 쉬며 수천 년을 전승한 것으로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이 들어 있다. 조선 후기의 판소리, 사물놀이, 가면극, 탈춤, 소설, 민화 등에는 권문세가의 착취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신분의 차별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상세계를 갈망했었던 서민의 애환과 도전의식이 담겨 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녹두꽃’이라는 드라마에는 탐관오리의 부정부패에 대항하는 민초들의 삶을 소재로 조선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늘어나는 양반과 부족한 세수로 인한 고단한 삶은 서민들을 깊은 산속이나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이국으로 야반도주하게 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암울함속에서도 민화에 담아내려고 했던 것은 오히려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이었다. 현실은 불안과 불합리로 가득 찼지만 그림 속에서는 무병장수, 부귀영화, 자손번창 등의 소망을 기원하는 유토피아의 세계, 피안의 세계가 펼쳐졌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들이 전통에 발목 잡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무명 화가들은 장돌뱅이처럼 5일장을 돌아다니며 장터에 자리 잡고 주문받은 그림을 그려냈다. 그들은 궁중화나 문인화와는 달리 권위에 매임이 없이 순수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그들이 그렸던 민화에는 과감하면서도 천진함과 무심함이 엿보인다. 그들의 그림은 오랜 세월 구속했던 전통에 대한 도전이었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반항이었다. 신분의 굴레,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갖 상상을 동원하여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표현함으로서 현실에서의 꿈과 소망을 화면에 펼치고야 말았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주인공 네오(Neo)처럼 그들은 가상세계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친 것이다. 그들은 네오가 되어 억압받고 천대받던 하층민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궁중화에서 출발하여 양반사대부를 거쳐 서민들에 의해 비로소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시대와 공동체의식을 반영하다

얼마 전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는 한 TV매체에서 ‘민화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라는 주제로 강의한 바 있다. 민화에 대한 가장 짧으면서도 정확한 명제이다. 시간의 흐름은 공동체적 의식이나 삶의 형태도 변화시킨다. 민화가 당대의 공동체적 시대정신과 시대적 특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획일적이고 보편성만 추구하게 된다면 민화의 앞날은 암담할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인 민화를 대중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민화가 단지 예술성과 조형성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당대의 공동체의식이 생생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감상과 장식만을 위해 제작되었다면 진정한 민화라고 보기 어렵다. 그 속에 상징적 의미까지 갖추어야만 민화로서의 자격이 있다 하겠다.
현대는 획일성과 대중성을 추구하는 대중문화의 시대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며, 보편 타당적인 삶을 지향하는 부분이 많다. 대다수가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시청률 높은 드라마를 보며, 관객이 많이 몰린 영화를 감상하고 베스트셀러를 구독한다.
대중이 먹고 느끼고 보고 입고 거주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맞추어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지식과 획일화된 집단속에서 적당히 사회와 타협하며 살고 있다. 바다 속의 물고기가 무리지어 이리저리 헤엄치듯 보편화된 무엇을 향해 끌려 다닌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 의하면 세상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망이 잘 짜인 가상假想, 즉 거짓의 세계로 보았다. 그 세상은 보편이 강제되는 세상이며 원작이 없는 복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그 대상을 똑같이 닮게 그렸느냐에 따라 그림실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옛사람들이 그린 민화와 똑같이 그린 그림만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면, 변화의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는 현대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옛날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기만 하는가.

양명성, <국태민안>, 75×97㎝

창조를 위해 과거로부터 배우다

옛것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昌新은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최근 들어 현대민화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데생 실력이나 기량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구태의연한 것처럼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창작민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전통민화를 모사하고 재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왜냐하면 전통민화의 기본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성급하게 창작의 길로 가는 어줍잖음이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비바람을 견디고 실한 열매를 맺는 이치를 그 누가 비켜갈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반복과 경험 속에서 다져지는 기량과 기법들을 밑천삼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창작의 즐거움과 성취감도 기꺼이 따라올 것이다. 민화의 다양성과 개별성은 민화작가들이 현실의 안주에서 탈주를 시도할 때 가능한 일이다. 민화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테마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베껴 그리는 그림’이라는 오명은 벗어야 하지 않을까!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20세기 후엽에 유럽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으로 기존 예술의 개념 자체가 의심을 받게 되고 절대적인 예술이념은 철저하게 부정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지적 풍토에서 그동안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오던 우리 것,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이 폭넓게 싹트기 시작한다.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W.Benjamin, 1892~1940)은 전통과 현대에 관하여 “과거는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또 다시 오늘날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어떤 계기를 만나게 되면 그 전통은 단순한 과거 사실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을 살려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전제하고 있다. 전통은 과거의 사실이지만 현재 속에서 면면히 살아 움직이며 앞으로 나갈 권리가 있다. 그리고 과거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는 어떤 소망들을 구제할 힘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민화, 시대 흐름에 맞는 미술로

오늘날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은 디지털 영상 산업의 발달로 인한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문화 소비성향은 우리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민화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역사성, 전통성, 창조성은 시대적 흐름에 부합되는 미술 장르로 자리매김하여 전통 민화의 가치를 살려 내어 우리의 생활에 활용한다면 더욱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전통미술이 고인 물처럼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흔적도 없이 말라 버릴 것이다.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기존의 전통위에 우리의 삶을 접목하고자 할 때 민화는 비로소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와 공존할 것이며 마침내 다음 세대와의 소통으로 이어져 역사 속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임태원, <부귀영화Ⅰ, Ⅱ>, 각 71×59㎝


글 금광복(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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