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음악 이야기 – 조선의 혼, 광대판의 꿈 단원 김홍도의 <무동>

민화와 풍속화, 불화와 같은 우리 그림 속에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문화와 상징, 흥과 정취가 녹아 있다. 때로 우리는 작은 화폭에서 조선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어릿광대의 혼과 만나거나 신명나는 춤판을 체험하기도 한다. 음악평론가이자 기획연출가 그리고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태균 평론가로부터 전해 듣는 그림 속에 깃들어있는 우리 가락 이야기. 향후 1년여 동안 이어질 연재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조선 4대 화가로 꼽히는 김홍도의 그림 <무동>에 얽힌 가락을 풀어본다.(편집자 주)


김홍도의 <무동舞童>.(도1) 조선을 대표하는 삼현육각三絃六角(국악의 대표적 악기 편성법)을 잡고 어린 무동이 춤을 춘다. 어느 판의 놀음일까. 판의 배경은 없고 무슨 광대판인지도 알 수가 없다. 조선후기의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 강세황姜世晃으로부터 ‘근대명수近代名手’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는 칭송을 받은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의 그림 <무동>의 이면은 무엇인가. 무동이란 제목대로 춤추는 아이가 중심이지만, 이 춤판의 배경을 확장하면 어마어마한 신명놀이판이 열릴 듯한데. 그 판이 중심을 이루는 춤과 삼현육각패만 찝어 간결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원형 구도 위에 흡사 절정의 순간을 실사하듯 생생히 남겨 놓았다. 김홍도 자신 또한 생황은 물론 거문고에 있어서도 절세의 연주자였다.

<무동>의 화폭 안으로 들어가다

이제 슬슬 김홍도의 화폭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처음에는 좌고座鼓가 보인다. 흡사 판을 이끄는 으뜸잽이로 보인다. 지금과는 다르게 양손에 가는 채를 들고 무릎을 꿇고 판을 채근하는 듯 보인다. 옆으로 장구杖鼓, 궁편은 손바닥으로 그리고 채편은 대나무로 만든 열채로 두들기고 있다. 수염 난 얼굴에 머리를 숙이고 있어 다소 불만이 있는 듯. 그리고 옆에 향鄕피리 혹은 목파리. 제대로 피리를 운지 하지만 약간 옆으로 삐어 물었다. 그리고 세細피리 혹은 곁피리는 둘 다 양 볼이 두툼하다. 향피리는 힘이 좋아 튀지 않게 소리를 놀리는 듯하고 그리고 옆에 대금처럼 풍류 있게 웃음을 짓고 있다. 좌고를 중심으로 대금과 세피리가 화답하는 소리를 놀리며 무동의 춤과 어울리는 구도가 나온다. 근데 옆에 해금을 보면 역시 김홍도 특유의 해학과 비틀음과도 같은 풍자가 있다. 일단 유일하게 뒷모습만 나오는데, 영 소리가 서운한지 농협弄絃하는 왼쪽이 줄을 안 놀리고 아예 손등을 보이며 줄을 막고 있다. 역삼각형 구조로 해금과 장구, 향피리는 판의 흥에서 좀 비껴난 듯하다.

조선시대 최고의 흥행사 삼현육각

무동의 춤판을 대하는 삼현육각의 소리에 뭔가 어깃장이 있다. 김홍도의 귀에 들린 그들의 소리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장구는 뭔가 맵시 없이 무겁고 향피리는 자꾸 소리가 새고, 기가 찰 정도로 앙증맞은 해금은 먹통 같은 소리로 갔는지 모른다.
그런 소리의 어울림과 함께 삼현 치는 잽이들 차림새를 보면 또 재밌다. 당시 삼현육각은 최고의 흥행사였다. 하루 종일 굿판, 궁중연희나 양반잔치, 기로연이나 회혼례, 과거급제 삼일유가 잔치, 굿중패든 산대패든 남사당패든 빠지는 곳이 없었다. 실로 조선 최고의 흥행 밴드답게 이 그림에도 잽이들의 바쁜 일상이 보인다. 소위 군영軍營에 속해 있는 세악수細樂手와 민간의 악사들이 함께 패를 이루고 있다.
보통 세악수는 전립과 다른 검기전립이라 부르는데, 주로 검기무劍器舞 즉 검무에 사용하던 모자를 썼다. 깔때기같이 뾰쪽한 모자에 금속정자를 달고 공작 깃과 상모象帽를 꽂으며 둘레에 성성전猩猩氈 즉, 털로 짠 모직물을 두르고 청색 명주끈을 매는데 검기건립을 쓴 세피리와 해금은 군영에 소속된 세악수이고, 장구와 향피리, 대금잽이는 민간악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좌고잽이는 검기전립을 쓰고 있는데 민간악사의 복장을 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있어 보인다. 연륜처럼 여러 판을 주무르며 세악수 중 고참이고, 또한 동네 풍류악사들을 이끌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이 화판의 또 하나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 보면 군영에 속해 있으므로 늦은 오후에 이루어진 놀이판이라 생각된다.
세악에는 본디 행진의 앞에 가는 불고, 치는 관악기와 타악기 위주의 취고수가 있다면, 삼현육각 구성의 세악수도 있었다. 영조 이후 각 군영에 바로 이 세악수의 배치가 본격화된다. 조선조 중앙군영으로서 훈련도감訓練都藍·어영청衛營廳, 금위영禁衛營과 융아청潤我廳, 수어청守瓚廳 등 5군영 편제에 따라 세악수 또한 군영에 편재되고, 신청이나 재인청 등 전국적인 광대 집단 그리고 궁중의 장악원 등으로 악단이 편재됐다. 세악수는 궁중과 민간 그리고 군영에 이르는 공간을 아우르며 수많은 음악을 창출했다. 세악細樂이란 말대로 풍악을 울리며 춤과 굿과 잔치와 놀이, 의례와 의식에 이르는 조선의 풍류판을 누볐다. 오늘날 장악원이 궁중의례에 따라 움직였다면 세악수는 민관民官을 넘는 조선 최대의 악단을 만든다. 가히 천하의 판을 움켜 쥔 셈이다.

해와 산, 강으로 어우러진 무동의 춤선

이제 <무동>으로 넘어가자.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춤빨’은 여전히 살아 오늘 우리와 놀고 있다. 어줍지 않지만 요즘의 서울특별시 휘장인 ‘춤추는 서울’을 상징하며, 무동이 상징이 될 줄이야 몰랐지만 해와 산과 강으로 어우러진 서울과 무동의 춤선이 어우러진 서울시 상징으로 무동이 숨어있다.(도2)
무동이란 말은 궁중정재宮中呈才를 추던 여악女樂에 대비되는 무동이 있고, 남사당의 무동놀이를 하던 새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김홍도의 <무동>은 없다. 무형문화재라 하여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쳐 파괴된 조선 문화의 흔적을 6-70년대에 정리했으니 어찌 이것을 원형으로 논하겠는가. 오늘날 무형문화재 원형에서 화폭의 <무동>은 없다. 그리고 산대나 탈춤판을 찾아봐도 없다. 김홍도가 살 때 놀던 무동이니 찾을 수도 없다.
위는 날리고 흐드러지게 추는 폼이 예사 가락은 아니다. 춤을 추는 무동의 풋풋한 웃음에 오른발을 살짝 밀듯 옥죄고 왼발도 도듬세로 비틀고, 몸집보다 풍성한 장삼 같은 옷을 걸치고 한삼자락 치렁치렁 놀고 있다. 벙거지 같은 둥근 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이른바 무아의 경지로 넘어 갈듯하다. 길게 땋아 늘인 떠꺼머리 선머슴아 같기도 하다. 그러나 춤에는 아주 노가 난, 하여튼 떠꺼머리총각이 쓴 모자의 정체도 신분을 밝히는데 중요하지만 아직 확증할 수는 없다.
이 총각이 혼자 출 리는 없다. 계속 찾아가보자. 김홍도가 살던 때 저잣거리 판을 휘어잡는 광대 집단은 남사당 사당패, 굿중패, 초라니패, 대광대패, 중매구패, 소리광대패, 애기장사패 등 수많은 패들이 휘돌아다녔다. 그런 패들의 모습이 한참 뒤인 19세기 말,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에서도 보인다.
여자로 구성된 사당패와 달리 남자들로만 구성된 ‘굿중패’가 있는데 양반계층의 경사에 불려가 연희를 팔고 살았다. 굿중패의 기량은 대단했는데 풍물, 버나, 땅재주, 줄타기에 1인 창극 같은 한량굿도 있었다. 굿중패는 판굿 또한 하였는데 이자진 등 진을 짜서, 소리를 어울리거나 또는 각 악기의 기량을 돌아가며 뽐내었다.(도3)

기산의 풍속화에서 느껴보는 개항장의 풍경

굿중패 중에는 그림의 무동이 있을까? 연상해 본다. 그리고 ‘본산대패’는 경기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탈놀이패이다. 국가적 행사에 차출되었던 산대잡희 집단과 관계있으며, 이들은 산대놀음에 바탕으로 두고 연행하였다. 반주하는 북잽이 1인에 소고잽이만이 등장하기도 한다. 산대패의 탈 쓰고 그림에서 무동 같은 춤이 펼쳐진다.(도4), (도5)
그리고 기산의 풍속화 중 <광대 줄 타고>에서 줄광대와 어릿광대 그리고 삼현육각패가 나온다. 고깔을 쓰고 부채를 든 줄광대의 춤이 보인다. 기산은 생몰연대 미상으로 구한말 부산·인천·원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풍속화가로, 서양의 유명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어 당시 조선의 풍경을 읽는데 큰 도움을 준다.(도6)
비록 시기적으로 김홍도 시절에 비해 한참 후인 구한말이지만, 이 시기 광대패의 흔적을 통해 <무동>의 흔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동>은 누굴까. 어느 광대패였을까. 분명한 것은 김홍도의 무동은 하나의 판에서의 호흡이 아니라 조선을 대표하는 광대 집단의 춤과 소리를 한 폭에 담은 것이다. 여전히 무동이 누군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허나 그 시대 놀이판에서 김홍도가 본 인물일 것이다. 굿중패일수 있고 본산대패일수도 있고, 어름산이일 수 있고 아니면 그야말로 동네 걸립패나 각설이 일수 있다. 더 아니면 무동은 처녀일 수도 있다. 여하튼 모자의 나라라고 하는 조선에서 무동이 쓴 모자를 찾으면 알 수도 있을듯하다.

조선 광대의 혼이 깃든 김홍도의 무동

천지신명天地神明. 하늘의 뜻[神]을 땅에 밝히는[明] 광대의 길. 삼현을 치라는 타령打令에 장단이 천지를 합궁 하듯 척하니 내딤세 들어 무동이 신명을 올린다. 바람보다 넓게 하늘보다 높게 춤을 올린다. 타령 장단에 풍악을 울리라는 영令에 피리가 바람을 부르고 대금이 흘리는 판에 해금이 잉에걸이처럼 춤을 부른다. 장구의 장단에 흥을 내며 좌고가 척척 올리는 신에 머리끝이 곤두서며 춤 또한 곧추선다. 삼현타령에 염불, 군악과 계면가락도드리로 돌다 허튼 타령으로 흥과 신명이 오르면 자진타령으로 자질게 몰다 당악으로 내뺀다. 허틀게 세상을 비틀며 그리고 저절로 신명으로 차오르면 판을 뒤집었다 놨을 것이다.
김홍도의 <무동>에는 조선 광대의 혼이 있다. 광대패의 무동과 삼현육각. 그들이 하나의 판으로 모인 굿판이다. 김홍도는 무동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문득 인왕산 국사당에 단군과 함께 계신 광대신이 그려진다.(도7) 창부신倡夫神. 절 지키는 사천왕상이 아닌 단군성조 이래 굿당을 지키는 풍류의 신. 피리를 불며 춤을 추며 허공을 나는 듯한 붉은 빛이 나는 광대의 신을 그렸는지 모른다. 무동은 삼현과 춤을 추며 유교의 덫에 걸린 조선과 천지신명의 굿판에서 꿈을 펼쳤다. 그런 상상을 하며 춤판을 접는다.


글 김태균(음악평론 및 기획연출가, (사)전통예술교육문화협회 대표,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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