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음악 이야기
– 강유剛柔의 농담濃淡, 거문고 현에 풍류를 엮다 ①

자연의 소리를 재현하는 거문고. 거문고는 만물을 표상하는 《주역》의 괘가 6효로 구성되어 있듯이 여섯 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 속 옛 사람들은 거문고 현 위에서 풍류를 엮으며 물아일체의 깨달음을 얻었다. 도연명이 말한 ‘줄 없는 거문고’는 어떤 소리를 냈을까? 이번호와 다음호에 걸쳐서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풍류를 즐겨본다. (편집자 주)


달 아래 거문고를 탄다. 바람의 숨결을 따라 거문고 소리가 강함과 부드러움, 짙음과 옅음이 반복되면서 흡사 돈오점수頓悟漸修(부처가 되기 위해서 진심의 이치를 먼저 깨친 뒤에 오랜 번뇌를 제거하여 가는 수행방법)의 경지처럼 흐른다. 강유剛柔의 농담濃淡으로 줄을 누르며 놀고, 술대로 벼락 치듯 누르다가 바람처럼 살랑하게 놀려가며 거문고의 청징한 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풍류風流다. 바람의 흐름을 타는 절로절로의 경지. 산중 언덕 너머 교교한 달빛 아래 바람은 청아한 양금洋琴(18세기에 유럽에서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현악기) 소리처럼 불어온다. 선비는 줄을 고르고 천하제일의 줄 풍류를 탄다. 세월은 느짓한데 바람은 촉급을 타며 흘러가고, 달과 내가 하나의 경지에 이르는 찰나에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은 누굴 상상했을까.(도1) 조선 중기 산수인물화의 대가인 그는 누구를 그린 것일까! 그림에는 인생에 대한 회한이 가득하지만, 마음의 풍류를 얻은 도道의 경지에 이르러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절경을 구가하고 있다. 노자가 말한 ‘도가도비가도道可道非可道(도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의 순간이 느껴진다. 도인데 도가 아닌 그런 경지의 음악처럼 줄 없는 거문고를 타고 있다. 풍류의 경지에 든 도인의 숨결이 은은한 달처럼 다가온다.

하늘의 기운을 담은 신의 악기

거문고를 흔히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한다. 모든 음악의 으뜸이라는 의미다. 거문고는 선비의 악기로 대별되지만 멀리 고구려의 악기이다.(도2) 고구려의 제2재상 왕산악王山岳이 창제해 소리를 타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하여 현학금玄鶴琴이라 했다. ‘현玄’의 의미대로 하늘과 우주의 기운을 담은 신의 악기이다. 신물神物인 셈이다. 그런 만큼 거문고 소리는 비곡秘曲의 경지로 이어진다. 통일신라 시대 지리산 계곡에 집거한 악사樂士 옥보고玉寶高의 거문고 소리를 어렵게 전승하고, 고려와 조선을 이어 백악의 으뜸으로 정좌해있다.
다음 그림은 조선 성종 때 집성된 음악문화백과사전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설명된 거문고의 모습이다.(도3) 거문고는 여섯 줄로 이루어져 있다. 천부경天符經(환웅이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와서 교화할 때 우주 창조의 이치를 풀이한 경전)의 중심 수가 바로 육六이다. 육생六生, 즉 모든 것을 생성하는 여섯 줄이 거문고 위에 있다. 그 첫줄이 문현文絃이요, 마지막 줄이 무현武絃이다. 소리가 주로 노는 문현 다음 줄 유현遊絃에 이어, 벼락 치듯 대점大點으로 내리 꽂히는 대현大絃, 그리고 개방 줄로 소리가 청청하게 터져 나가는 괘상청棵上淸, 괘하청棵下淸이 있다. 줄 밑에 열여섯 개의 괘棵가 산처럼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리고 오죽烏竹이란 단단한 대나무로 만든 술대를 잡고 줄을 탄다. 여섯 줄 열여섯 괘 위에 세상을 펼쳐놓고 거문고 풍류를 엮어 나간다. 나는 94년도쯤 거문고에 대한 글을 쓰며 소위 정악正樂이라 칭하는 음악의 경지를 ‘거문고 현 위에 주제와 변주로 노는 강유의 농담이다’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하나의 텍스트가 도드리라는 반복을 통해 돈오점수의 경지처럼 빙빙 돌아드는 변주야말로 변증법적 이중성으로 펼쳐지는 놀음이라 생각했다.

조선 성리학과 거문고 미학

조선 후기 거문고 명인이자 학자인 오희상(吳熙常, 1763∼1833)은 거문고를 탈 때 오불탄五不彈(다섯 가지 상황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켰다.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할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는 연주를 안했다고 한다. 또한 오능탄五能彈이라 하여 앉은 자세를 안정감 있게 하고, 시선은 한 곳을 향하며, 생각은 한가롭게 하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며, 지법指法을 견고히 한 후에야 연주에 임했다. 그는 거문고 연주를 철저한 자기수양의 자세로 임했다. 조선 선조 때의 음악가 양덕수梁德壽는 임진왜란 이후 흐트러진 세상을 다듬듯 《양금신보梁琴新譜》를 만든다. 그 첫머리에 ‘거문고를 탄다는 것은 사악하고 헛된 것을 금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琴者禁也 禁止於耶以正心也]’이라 했다. 거문고를 통해 자연과의 부단한 물아일체를 이루며 성정性情을 바로 세우는 성리학의 성정미학性情美學을 구현하였다.
조선 왕조 성리학의 꽃은 거문고 미학과도 상통할만하다.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는 뜻이다. 늘어진 줄을 다시 고쳐 매는 것은 갑오경장甲午更張처럼 부단한 세상살이가 아닌가. 우리는 매일같이 집을 나서며 구두끈을 풀고 조이는 해현경장을 하며 산다. 거문고의 줄을 풀고 묶는 과정에서 부단한 자기 연마를 이룬다. 늘 경장하는 초심으로 줄을 고른다. 도드리장단이 수양의 경지다. 그런 망아忘我의 상태에서 도를 깨우치고, 본성을 회복하는 이부기성以復其性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풍류다. 성리학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가지 도덕적 능력과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일곱 가지 자연적 감정)이란 성정性情을 바로 세워나가는 것, 이를 놓고 조선의 성리학은 주기主氣, 주리主理를 논하고 품격론品格論을 논하는 성정미학의 세계를 연다. 대단한 것은 바로 그런 강호가도江湖歌道(조선 시대 현실을 도피하여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면서 일으킨 시가 창작의 한 경향)의 경지가 성리학이고 미학론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풍속화에는 가야금을 타는 여인의 모습이 많은데,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이 그린 그림에는 거문고 줄을 고르는 여인의 모습이다.(도4) 왼손으로는 괘 위의 줄을 고르고, 오른손으로 거문고 밑동의 돌괘(줄조임새)를 만지고 있다. 옆의 여인은 거문고 장식줄인 부들과 안족雁足(거문고의 줄을 떠받치는 받침대)을 만지는 것처럼 보인다. 신윤복이 그릴 정도의 여인이라면 대단한 거문고의 명인인 듯하다.

물아일체를 깨닫는 무현금의 세계

이제 거문고를 타보자. 줄을 골랐으니 둥둥 문현 소리에 슬기둥 소리(연주자가 왼손의 식지로 대현을 누르고 나서 오른손의 술대로 문현에서 유현을 거쳐서 대현을 차례로 튕길 때 생기는 소리)가 열린다. 고려가요 〈풍입송곡風入松曲(태평성대를 기원하고 왕덕王德을 찬양하는 노래)〉의 아름다움은 조선에도 여전히 이어진다.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가사에서도 ‘거문고 줄에 얹어 풍입송이로구나. 손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 버렸도다. 창공에 떠 있는 학이 고을의 참 신선이라. 요대瑤臺의 달빛아래 행여 아니 만나지 않았던가’라고 노래할 정도였다. 아직도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가면 고려가 살아있다.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이 타던 거문고가 유전한다.(도5) 조선 후기 화가이자 금석고증의 전문가였던 육교 이조묵(六橋 李祖默, 1792∼1840)이 정유년(1837년)에 이 거문고에 새긴 찬문에 따르면 공민왕이 거문고를 만들어 즐기다가 후에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공민왕의 슬픈 애가가 담겨 있을 이 거문고는 지금까지 현존하며, 고려의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만든 고려의 천재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시와 술을 좋아하고, 거문고 연주에서 일가를 이루는 삼혹호三酷好 선생이었다. 이규보가 쓴 금명琴銘이 있다. 거문고에 직접 새기거나 혹은 새기기 위해 지은 운문형식의 글이다. “거문고를 켜면서 거문고와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상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오히려 거문고 하나를 간직하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이어서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어 그에 의해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반드시 옛 사람을 본받아야 하겠는가?” 줄 없는 거문고든 줄 있는 거문고든 이규보는 절대 경지에서 거문고를 즐겼다. 앞서 〈월하탄금도〉에서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선인이 바로 이규보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학문의 절대 경지처럼 거문고 또한 줄이 아닌 마음의 줄을 타는 경지를 조선의 학자들은 구가하고 있다.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이나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도 무현금無絃琴의 세계를 구가했다.

“거문고의 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줄의 줄을 나는 거라네. 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음의 음을 즐기는 것이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네.”
– 서경덕의 〈무현금명無絃琴銘〉
“쓸쓸하고 적막한 외로운 오동나무, 맑고 시원한 옛 소리여, 한번 연주함에 귀를 깨우고, 두 번 연주함에 마음이 맑아지네. 줄 없으면 너무 담백하고 번거로운 곡조도 너무 지나치네. 내 이 거문고 안고 있지만 누가 내 마음 줄까나?”
– 이이의 〈금명琴銘〉

최고의 지음지교가 여는 풍류판

19세기에 활동한 성협成夾의 그림에서 아주 섬세한 손가락 사이를 넘나드는 거문고 연주가 생생히 들려온다.(도6) 아름다운 음을 내는 요금瑤琴을 한가로이 타고 있는데, 곡은 차츰 느짓이 돌아가고, 가는 구름 따라 물길 또한 차오른다. 흡사 시절을 논하듯 눈빛이 살아있다. 제발題跋(책이나 그림에 그 유래나 펴내는 뜻, 감상, 비평 등을 적은 글)의 ‘지음소명월知音少明月’은 소리를 알수록 세상은 작아진다는 말인 듯하다. 지음知音. 종자기鍾子期라는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가 죽자, 절현絶絃을 한 중국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의 ‘지음지교知音之交’를 줄여서 지음이라고 칭한다.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벗을 뜻하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대명사이자 극치이다.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 역시 알아주는 거문고 연주자였다. 윤선도와 권해權海의 지음은 여전히 기억된다.

탐욕이 마음에서 절제되면 천기가 손가락 아래서 울려
산수의 흥취로 하여금 늘 종자기와 함께하도록 할 것이네
부용의 병든 늙은이가 반금에게 지어주다
오세손 준이 새기다 고요히 중화의 기운 기르니
성나고 욕심스런 마음이 사라진다

윤선도가 자신이 직접 만들어 연주했던 거문고 하판에 새긴 시다. 그리고 제증반금題贈伴琴은 ‘반금에게 지어주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반금은 권해의 호이다. 거문고를 잘 탔기 때문에 호를 반금伴琴이라고 했다. 반금은 고산과 지음을 이루었다. 윤선도가 지은 〈증반금贈伴琴〉이란 시에서 “소리는 혹이신들 마음이 이러하랴, 마음은 혹이신들 소리를 뉘하나니, 마음이 소리에 나니, 그를 좋아 하노라”며 노래하고 있다. 반금은 당시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다. 또한 순조 때 거문고 명인 이금사李琴師라는 이가 연주를 하면 슬퍼서 끝까지 듣지 못할 정도로 절창이었다 한다.
어느 양반집의 후원인 듯, 생나무로 둘러친 취병翠屛으로 된 후원에서 흡사 최고의 금객琴客(조선 시대에 거문고 연주에 능했던 전문 음악인)을 초청하여 연주를 듣는 모습이다.(도7) 대금 부는 이가 무릎을 괴고 음을 맞추고 있다. 주인인 듯한 인물은 소리 삼매경에 빠져 있고, 주변 사람들도 숨죽이며 소리를 듣고 있다. 밖에는 두 선비와 여인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말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금객은 가객歌客이었다.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하고, 때로는 대금과 병주倂奏를 하기도 한다. 철학으로서의 거문고가 이제 연주로서 말문을 튼다. 그림 속 18세기 세상이 열리고, 거문고는 시회詩會와 악회樂會를 열며 풍류판을 새로 연다.

<다음호 계속>


글 김태균(음악평론 및 기획연출가, (사)전통예술교육문화협회 대표,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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