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절개와 지조를 담다 – 송학도

학과 소나무가 그려진 송학도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으며 군자君子로 살겠다는 선비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 선비라는 계층이 사라진 오늘날, 송학도는 어떤 의미로 변용될까.


소나무의 의미

소나무는 , , , 등에서 중심역할을 맡고 있는 아주 중요한 조형요 소이다. 특히 송학도에서는 세 가지 요소 즉, 소나무, 학, 아 침 해가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작품에 따라서는 소나무와 아침 해의 의미가 중복된다고 여겨 아침 해가 빠진 채로 표 현되기도 한다. 소나무는 백두산부터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시에 우리의 삶과 깊은 관계 를 맺고 있다. 소나무는 눈서리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푸 름을 잃지 않아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선비들에게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칭송되었다. 소 나무가 절개의 상징으로 그려진 대표적인 그림으로 김정 희의 를 꼽을 수 있다. 소나무는 추위가 오면 잎 을 떨어뜨리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사시사철 푸르므로 장수, 불멸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또한 애국가 2절 가사 중 “남산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 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 소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에 대한 불굴의 상징이기도 했다. 실제 로 소나무가 벼슬을 하사받은 일화도 있다. 중국의 진시황 은 산행길에 비를 피하게 해준 소나무에게 정일품의 벼슬 을 내렸고, 조선시대 세조는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 소나무에는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마을에서는 동제洞祭를 지낼 때 어귀에 금 줄을 치고 그 사이에 솔가지를 꽂았고, 아기를 낳은 집은 집 대문에 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매어 두었다. 장을 담근 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장독에 금줄을 쳐서 밖에서 들어오 는 잡귀의 침입과 부정을 막고자 하였다. 추석 때는 솔잎을 켜켜이 깔아 찐 송편을 차례상이나 조상의 묘소에 올렸다.

학의 의미

학鶴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로 몸길이가 140cm 정도의 두루미과에 속하는 대형 조류이다. 우리말 로는 두루미라 하며 선학仙鶴, 선금仙禽, 노금露禽, 태금胎 禽, 단정학丹頂鶴 등으로도 불린다. 두루미는 소나무에 절 대 앉지 않고 습지에서 서식하는 생태적 습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에 앉는 백로, 왜가리 등을 모두 학이라 칭한다.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흔히 표현되 며, 천년을 장수한다 하여 학수鶴壽라고도 표현된다. 학은 한번 맺은 부부의 연을 죽을 때까지 변절하지 않고,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보호하고 돌본다고 한다. 그래서 학의 구애 求愛동작을 본딴 민속춤 ‘학춤’이 탄생되기도 했다. 학은 전통회화와 민화에서 자주 선택되는 소재로 소나무 와 함께 그려진다. 그림에서 소나무와 학의 관계는 연화와 오리, 백로의 관계처럼 하나의 틀로 정형화되어 있다. 학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에서 대부분 구름 속을 날고 있다. 학이 그려진 그림 한 쪽에는 일품대부一品大夫라는 화제畫題가 적혀있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학이 다른 날 짐승과는 달리 고매하고 깨끗한 존재로 여겨져 조용히 은 거하는 지조 높은 선비에 비유되거나 혹은 가장 높은 품계 를 지니는 ‘일품의 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관 에서는 학이 일품에 해당하므로 학과 소나무와 함께 그려 진 그림은 장수를 염원함과 동시에 높은 벼슬에 올라가기 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다. 학은 전체적으로 흰 몸통을 지녔고, 특히 목과 꼬리의 검 정색과 대비되어 더욱 희게 부각된다. 백의민족白衣民族, 백두산白頭山 등에서 알 수 있듯,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흰색을 신성시했다. 조상들은 희다는 학의 외형적 특징 때문에 일찍부터 학을 신령한 존재로 여기며 ‘새중의 군 자’라 하였다. 흰색은 태양을 상징하는데, 민화에서 태양은 흰색 혹은 빨 간색으로 표현된다. 또한 흰색은 지혜와 경험이 많은 늙은 이를 상징하는 색이다. 민화에서 보이는 신선이나 산신령 은 모두 백발과 흰 수염을 한 노인으로 백호白虎, 백학白 鶴, 백록白鹿과 함께 그려진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두루 미를 타고 있는 신선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으로 보 아 흰색 두루미는 삼국시대부터 신성시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요지연도(瑤池宴圖,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 요 지의 연회모습을 주제로 한 신선도의 한 종류)에는 신령과 동자가 두루미에 함께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 인다. 그 옆에는 아름다운 선녀를 태운 두루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학이 하늘과 인간세 계를 연결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학이 천년을 살면 몸이 청색으로 변하여 청학靑鶴이 된다 고 한다. 지리산 청학동靑鶴洞이나 경기도 포천 청학대靑 鶴臺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천년을 사는 학 을 통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신선처럼 고고하게 살고자 했 던 선비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청학이 다시 천년을 더 살면 검은색 학(玄鶴)으로 바뀐다는 전설도 있다. 조선 후 기에 그려진 장생도에는 청색, 금색의 두루미가 나오는 데 이는 두루미를 더욱 신령스러운 존재로 표현한 것이다. 에는 학이 은하수까지 날아오를 수 있고 1,600년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암수가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잉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학은 신령스런 존재로 여겨져 다른 새 들과 달리 외진 곳에서 조용히 은거하며 고답高踏을 추구 하는 현자賢者로 비유되었다. 이처럼 학은 선비의 높은 절 개와 지조, 신선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조선시대 덕망 있는 학자가 입었다는 ‘학창의鶴氅衣’는 가장자리를 검은 색으로 꾸민 옷으로, 이름을 통해 선비들이 학과 같은 고 매한 삶을 얼마나 꿈꾸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문관의 흉배(胸背, 조선시대 왕·왕세자·문무백관 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표장)에 학을 수놓은 것 역시 학이 일 품一品을 표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근·현대의 송학도, 의미가 더욱 풍부해지다

학과 소나무는 한국의 근·현대시기에도 지속적으로 그려 졌다. 대한제국 시기, 보통학교는 도화圖畫과목을 필수과 목으로 지정하면서 전통시대의 사의寫意적 회화에서 탈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사생(寫生, 실물이나 경 치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하는 미술교육을 지향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생은 거의 1세기 동안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근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송학松鶴 은 여전히 길상의 의미로 다른 그림의 도상과 결합하여 이 전보다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조석진의 (1912) 2,4폭에는 소나무와 영지를 배경으로 한 쌍의 학이 표현돼있다. 이는 소나무와 학이라 는 전통적 도상에 영지를 결합시킨 것으로 송학도에 십장 생도의 도상을 차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 말기 화가 채 용신은 1920년대 화조도에 십장생도의 도상을 결합하여 화조영모를 8폭으로 제작하였는데, 여기서 채용신은 태양 이 뜨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안에 학이 나타나는 전통적 인 도상과 십장생도에서 등장하는 거북이와 같은 소지들 을 결합하여 화려한 장식적 화면을 만들어 냈다.
조석진의 에는 소나무와 학이 그 려져 있고 소나무 뒤편에는 모란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이 처럼 학과 소나무, 모란이 결합된 도상은 안중식의 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안중신의 작품 속 ‘소나무 의 지조와 학의 자태’는 비록 국권이 침탈당했지만 조선시 대 선비처럼 학과 소나무의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살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1920년 조석진, 안중식의 제자 김은호는 창덕궁 대조전 서 쪽벽에 두 그루의 노송과 16마리의 학, 모란, 대나무, 불로 초, 파도를 그렸다. 특히 파도와 소나무는 백학의 군상과 함께 결합되어 왕이 통치하는 이곳이 바로 이상경理想境 임을 표상했다. 로 유명한 김기창, 오방색을 이용하여 민화에 내포된 민족의 정서와 염원을 현대적 미감 으로 조형화한 박생광, 학춤을 추는 사람들을 그린 김봉준 등은 학의 전통적 도상을 현대적으로 변주하며 새로운 관 계를 모색하였다. 학을 통해 전통을 표상함으로써 한국적 모더니즘을 이룩하고자 했던 김환기, 안동숙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위의 내용에서 봤듯, 근·현대에 들어서 송학은 다양한 의 미로 표상됐다. 송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길상, 군자의 삶, 신선의 세계를 넘나드는 선학仙鶴의 등의 이미지로 나타 났지만, 그 과정에서 상서로움의 주체는 왕조에서 국가로 변모하였다가 관계적인 측면에서 공동체적 단위인 작은 마을이 되기도 하고 부부애로 표현되기도 한다. 군자의 삶 을 표방하고 있는 소나무와 학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상징 성은 선비가 존재하지 않는 현 시대에도 지식인들의 자화 상과 결합되면서 삶의 지향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많은 화가들이 송학을 변용하는 과정에서 지금 시대가 추구해야 할 다양한 조형적 실험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송학도를 복고적인 옛 그림의 귀환이 아닌 생명력 있는 당대 회화로 자리매김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글 금광복 (민화작가, (사)한국민화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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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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