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 병풍 – 화려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전한 유교의 덕목

정병모 교수의 명품 민화 순례⑥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 병풍
화려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전한 유교의 덕목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 병풍>은 문자 안의 특별한 무늬와 색채로 인해 유교문자도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문자 속 펼쳐진 각종 꽃과 줄무늬의 패턴은 청색 바탕에 적색의 가는 선으로 표현한 촘촘하고 세밀한 패턴으로 어른어른할 정도로 잔상이 비치는 것이 특징이다. 청색과 적색의 대비는 문자도에 더욱 강렬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민화는 본그림이 아니다

민화는 매우 창의성이 풍부한 그림이다. 같은 모티프라 하더라도 그 변화상은 매우 다양하다. 흔히 민화를 ‘본그림’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다. 민화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인 그림도 드물다. 조선시대 민화본도 다른 부류에 비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궁중회화나 문인화에서는 고전과 정통을 중시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지향하다 보니, 기존에 정해진 규범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했으나, 민화에서는 그 틀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펼쳤다. 현대 민화작가들이 민화본에 의존한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민화가 본그림이란 잘못된 인식이 심어진 측면도 있다. 문자도도 마찬가지다. 다른 그림에 비해 교조적이고 형식적이기 쉬운 모티프인데, 놀랍게도 그 변화상은 다양했다. 지역별로 다르고 작가별로 달랐다. 그 변화는 이미지와 이야기에 따라 변해갔다. 어떤 때는 이야기가, 어떤 때는 이미지가 민화의 변화를 주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 병풍>은 외형상 문자도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지만, 색채, 패턴, 구성 등 그 안에서 이뤄진 변화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러한 변화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가능했고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 병풍>은 유교문자도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 이유는 문자 안의 무늬와 색채에 있다. 문자 속 펼쳐진 각종 꽃과 줄무늬의 패턴은 어른어른할 정도로 잔상이 비친다. 그것은 청색 바탕에 적색의 가는 선으로 촘촘하고 세밀한 패턴으로 그런 시각적인 효과를 낸 것이다. 이런 장식 패턴의 유례는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굳이 찾는다면 옷감의 무늬를 연상케 한다. 더욱이 그 패턴은 청색과 적색의 대비를 활용하여 더욱 강렬하고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청색과 적색의 대비는 서양에서 보색이라 하여 뚜렷한 대비를 강조할 때 사용하지만, 조선의 채색화에서는 상생의 색채 조화로,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는 색채의 대비로,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색채의 쌍으로 즐겨 활용했다. 이토록 화려한 문자도를 평원 위에 붕 떠있는 모습으로 나타내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행서의 정연한 문자 속에 도상들을 배치하여 언뜻 보수적이고 형식적인 그림으로 보기 쉽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화려하고 환상적인 장식이 보석처럼 빛난다.

이야기에서 상징으로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의 여덟 가지 덕목을 내세운 유교문자도는 이야기와 이미지의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18세기 후반 유교문자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뚱뚱한 해서체의 글씨 안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배치했다. 효자도의 경우, 효자 안에 중국 역대 유명한 효자 가운데 4인의 이야기를 인물화로 그려 넣었다. 왕상王祥이란 어린아이가 겨울철에 계모인 어머니를 위해 꽁꽁 얼은 강물을 도끼로 깨다가 여의치 않아서 엎드려 우는 장면, 맹종孟宗이란 어린아이가 겨울철에 계모인 어머니를 위해 눈 덮인 대나무 숲에서 죽순을 찾아보다가 없어서 우는 모습, 황향黃香이란 어린 아이가 여름철 아버지가 잠자기 전 더울까 걱정되어 침상을 부채질하는 모습, 대효大孝라고 칭송 받는 순舜임금이 역산歷서 밭을 가는 모습 등이 세세하게 그려졌다. 이들 장면은 효자, 열녀, 충신, 붕우, 종족, 사생 등의 행적이 실려 있는 오륜행실도와 같은 행실도에서 그 이미지를 빌려온 것이다.
이러한 효자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자, 다음 단계에서는 각 획 안에 인물화가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획 자체가 그 인물화의 대표적 상징으로 대체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 중 <효자도孝字圖>에서도 이러한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1획이 왕상의 잉어, 2획이 맹종의 죽순, 4획이 황향의 부채, 6획은 순임금의 오현금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들 상징도 주와 종이 있다. 잉어와 죽순은 대표적인 상징으로 내세웠고, 부채와 오현금은 획의 장식 패턴으로 활용했다. 효자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1획과 2획은 붉은 기가 도는 잉어와 청색기의 죽순 및 대나무를 교차시켰다. 그 아래 4획은 살짝 꽂힌 부채로 대신했고, 7획의 오현금은 획 가운데 삽입하여 장식을 겸했다. 힘차게 교차한 잉어와 죽순이 효자의 전체적인 형세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유교문자도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효는 모든 행실의 시작이자 근본이다. 효가 이뤄져야 충이 되고, 효가 이뤄져야 예가 갖춰지는 것이다. 공자는 인仁의 근본이 ‘효제孝悌’에 있다고 했다. 효제란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다. 모든 일은 가까운 이들부터 챙기는 데부터 시작된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인 대업을 맡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효의 다음인 <제자도悌字圖>를 보자. 요즘 뉴스를 보면 무엇보다 가슴에 새겨야 할 덕목이 있다.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라는 의미의 ‘제悌’자다.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돈과 권력 앞에서는 욕망 앞에서는 남보다도 못한 처신을 보이는 세태를 볼 때, 이 문자의 의미가 새삼 두드러진다. 제자도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할미새다. 이 새는 새 가운데 가장 형제간의 우애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벌레 하나를 잡아와도 서로 나눠먹는다. 왼쪽의 심방心변은 이러한 할미새로 구성했다. 1획의 어미 할미새는 여유롭게 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당당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2획과 3획의 새끼 할미새들이 잡아온 곤충을 서로 나눠 먹고 있다. 오른쪽 위의 4획과 5획을 보면, 화분에 녹색의 잎과 붉은 꽃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산앵두꽃이 등장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 그림에서는 모란과 모란꽃잎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나머지 획에는 초서체로 그리고 그 안을 아름다운 꽃무늬의 패턴으로 장식했다. 할미새 가족을 제자의 대표적인 상징을 나타내고, 빨간 모란꽃이 제자도의 문장처럼 돋보이게 표현했다.
이쯤 되면, 아마 할아버지가 아직 이야기를 모르는 손주를 무릎에다 앉혀 놓고 문자도 병풍을 가리키며 왕상이 어쩌고저쩌고, 맹종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재미있게 효자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유교문자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확산되고 보편화되자 문자도를 굳이 구체적으로 인물화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대표적인 상징으로 기호화되었다. 백성들은 효자도에 깃든 물상만 보면 이내 그 효자 이야기를 떠올릴 만큼 오랫동안 학습되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조 표현으로 장식된 문자도

이야기의 상징조차 지루하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선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문자도라면 꼭 담아야 할 고사나 상징의 교조를 훌훌 떨쳐 버리고 꽃의 패턴만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문자도까지 등장했다. 상징화되고 기호화된 문자도에서 길상적인 의미의 꽃들로 장식된 문자도로 바뀐 것이다. 문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효자 위에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피어 있고, 신자 위를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가 석류 알갱이들을 드러내었다. 또한 예자도 위에 난데없이 연꽃이 소담스럽게 연잎 위에 담겨 있고, 의자도 위에 다시 모란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유교적인 교훈도 얻으면서 부귀, 다산처럼 행복을 빌어주는 길상의 효과도 함께 얻으려는 배려다. 개인소장 <문자도>가 이 단계를 대표하는 문자도다. 이 작품은 2016년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문자도·책거리전’에서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더욱이 예전에 안목이 높은 수장가이자 화가인 김기창과 김종학 씨가 소장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검은 획 속에서 울긋불긋한 꽃 장식이 화려하게 돋보인다.
이 문자도는 마치 현대의 그래픽 디자인 같다. 조선시대의 작품이란 사실을 깜빡 잊을 만큼,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긴다. 그렇다고 현대의 디자인마냥 상큼하고 경쾌한 것만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켜켜이 쌓인 전통이 굳건하게 받치고 있다. 오랜 전통의 전서 가운데 직선으로 된 상방대전上方大篆과 곡선의 버드나무 잎처럼 된 유엽전柳葉篆을 절묘하게 조합했다. 이 그림이 현대적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그동안 문자의 의미와 아무 상관이 없는 화조도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원래 <예자도禮字圖>에는 중국 최초의 문자인 낙서를 등에 진 거북이가 첫 획에 그려져야 하나, 이 그림에서는 예와 아무 상관이 없는 연꽃, 해당화, 새와 같은 화조도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듣기 좋은 육자배기도 한두 번이라. 오랜 세월동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적으로 학습시켜서 피로현상이 밀려올 때쯤, 어느 지혜로운 민화 작가는 생뚱맞은 이미지로써 분위기 쇄신을 꾀한 것이다. 초기에는 ‘문자도+고사인물도의 조합’이었는데, 그 다음 단계에선 ‘문자도+화조도’로 바뀐 것이다. 묵은 관례에서 벗어난 과감한 변신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현대적이고 조선적인 문자도’란 양면적인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현대적인 문자도의 출현을 기대

유교문자도가 거쳐 온 이런 변화과정을 두고 볼 때,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는 어디에 위치할까? 기호화한 문자도에서 화조의 패턴으로 장식된 문자로 변해가는 그 과도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자도에는 획 자체를 각 이야기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대체하는 형식을 지나 획의 내부를 꽃이나 새로 꾸민 장식성의 단계로 접어서고 있다.
<염자도>를 보면 첫 획이자 첫 점이 게로 변모했고, 나머지 획 안에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상징하는 국화와 소나무와 육적의 울림석을 그려 넣었다. 게는 염계濂溪라는 호를 가진 송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를 상징한다. 그는 벼슬자리에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게에 비유했다. ‘게걸음 친다’란 말이 있듯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제자리걸음이란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게의 모습을 가리킨 것이다. 도연명은 관직을 떠나 고향에 은거하며 국화, 소나무와 더불어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냈다. 중국 오나라 육적陸績은 울림태수鬱林太守를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날 때 가진 물건이 없어 배가 무게를 잡지 못하자 돌을 실어 가까스로 건넜다. 이를 울림석鬱林石이라 한다. 이들은 나아감과 물러남이 분명한 행실로 추앙 받는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다른 문자와 달리 도연명을 상징하는 국화의 흰 꽃으로 장식되어 독특한 색채의 효과를 맛볼 수 있다. 효제충신예의염치 가운데 끝 문자인 <치자도恥字圖>는 다른 문자와 달리 첫 획이나 첫 점이 아니라 끝 획에 대표적인 상징을 배정했다. 위에는 달 속의 옥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달을 놓고 그 아래 비석이 보이는 백이숙제의 사당을 배치했다. 또한 이들을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로 길게 뻗쳐 지붕처럼 뒤덮어 마무리했다. 맹자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인 치가 의로운 마음의 시작이라 했다. 또한 죄를 짓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면 동물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는 의리를 지키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 백이와 숙제를 손꼽는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다가 두 사람 모두 나라를 떠났고 둘째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그 무렵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고 주왕조를 세우자, 두 사람은 무왕의 이러한 행위를 비판하다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는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캐어 먹고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

효제충신예의염치의 덕목은 고리타분한 옛 일로 현대에 맞지 않을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필요한 덕목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일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달라지는 인륜은 아니다. 재산분배를 두고 형제간에 낯 뜨겁게 싸우는 일이 매스컴을 장식하는 일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상황이 나빠졌다 신의를 저버리고 고발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도 가슴이 아프다.
에티켓을 지키는 일은 점차 좋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의에 목말라하고 공직사회에서 청렴결백을 요구하는 김영란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무겁고 중요한 메시지를 환상적이고 화려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전달하는 지혜를 국립민속박물관 <문자도>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현대에 맞는 신선하고 창의적인 문자도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글 정병모(경주대학교 교수)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