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도 8폭병, 모자의 정 되새기게 하는 걸작 고사인물도

구운몽도 8폭병

*구운몽도 8폭 병풍, 각 28×58cm, 지본채색

구운몽도 8폭병

<구운몽도>는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평북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던 1687년(숙종 13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 사이에 지은 소설 『구운몽九雲夢』의 내용을 담은 그림이다. 『구운몽』 원본에 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운몽』과 <구운몽도>는 저작된 이래 독자층을 확대해가며 왕실에서 서민들에게까지 폭넓게 읽히고 감상 되어온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널리 사랑받아온 우리 소설과 그림, 구운몽

한국민화뮤지엄 소장품 가운데 그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온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구운몽도 8폭병>이다. <구운몽도>는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평북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던 1687년(숙종 13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 사이에 지은 소설 『구운몽九雲夢』의 내용을 담은 그림이다. 『구운몽』 원본이 국문본인지 한문본인지, 그리고 현존하는 이본 중에서 원본과 가장 가까운 이본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나 이본 필사자의 개작 여부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각각 다른 이본의 동음이의어 표현의 등장과 같은 다양한 추리와 해석이 가능한 증거로는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운몽』이 저작된 이래 초기에는 식자층을 중심으로, 그리고 조금씩 독자층이 확대되어 영조로 대표되는 왕실에서 서민들에게까지 폭넓게 읽히며 사랑받았다는 점이다.
『구운몽』을 교훈적으로 읽는 것은 현대적 관점일 뿐, 당시에는 애정소설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18세기 사대부들이 남긴 기록은 김만중이 어머니 윤 씨 부인을 위해 소설을 창작했으며 일장춘몽이라는 깨달음을 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적어도 소설이 읽히기 시작한 초기에는 풍류뿐 아니라 교훈적인 측면도 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노론 중 준론의 대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李縡(1680~1746)가 어린 시절부터 소설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이 소설이 애정소설로만이 아닌, 교훈적 용도로도 읽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자료이다.
19세기에 『구운몽』은 독자층이 크게 확대되면서 방각본이 제작되었고 여항 문인들을 비롯하여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에게 인기를 끌면서 20세기 초에 활자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소설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본이 생겨났는데, 초기 필사본이 교훈적이라면 이후 방각본과 활자본은 다양해진 후원 층의 취향에 맞게 풍류를 중심으로 한 애정소설로서의 내용이 강조되었다. 또한, 소설의 대중화와 함께 『구운몽』은 사설시조, 춘향전의 남원고사, 봉산탈춤, 무동패 공연, 각설이타령 등에 활용되거나 『옥루몽』, 『옥선몽』과 같은 아류작으로 탄생학기도 하고 민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소설에도 삽화가 실리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소설 내용이 그림의 주제가 된 경우는 <삼국지연의도>와 <구운몽도>를 제외하면 극소수인데 <삼국지연의도>가 중국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소설 중 『구운몽』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화원의 솜씨로 보이는 뮤지엄의 <구운몽도>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구운몽도 8폭병>은 늦어도 19세기 후반에 제작되어 왕실 내에서 또는 왕의 하사품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진과 팔선녀의 석교 위 만남 장면을 담고 있는 족자본인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구운몽도>가 「한양가」 등의 19세기 중반 기록에서 묘사된 내용과 부합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다양한 <구운몽도>의 초기 형태 그림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화가 왕실 사대부로 대표되는 상류층 소장 그림이 저변화되는 과정에서 형태나 표현이 제작하기 용이하게 변모되었다는 점과 『구운몽』이 상류층에게 먼저 읽히기 시작한 이후 다양한 계층에게 수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필자는 초기 <구운몽도>는 서민층도 구매 가능한 낱장 그림보다는 상류층을 위해 제작된, 능숙한 필치로 정교하게 장면들을 묘사한 병풍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더욱이 18세기에 이미 영조를 포함한 상류층에게 소설 『구운몽』이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18세기와 19세기 전반에도 <구운몽도>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늦어도 19세기에는 상류층을 위한 양질의 병풍 작품과 중인을 비롯한 다양한 수요자를 위한 좀 더 저렴한 족자 형식 및 작화 기량이 뛰어나지 않은 작품들이 혼재했을 것으로 본다. 한국민화뮤지엄 소장본은 장지에 당채와 금분을 사용하여 그려졌고 작화 수준 또한 출중하여 도화서 화원의 솜씨로 보이며 물감이나 장지의 고조古調를 통해 기메박물관 소장품과 비교했을 때 시대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리라고 추정된다.
한국민화뮤지엄 소장 <구운몽도>의 내용은 오른쪽부터 성진과 팔선녀의 석교 위 만남, 양소유와 진채봉의 만남, 양소유에게 자기 집을 안내하는 계섬월, 정사도의 집에서 거문고를 타는 양소유, 대원수가 된 양소유와 자객 심요연의 만남, 꿈속 양소유와 남해 태자의 결전, 낙유원의 잔치, 일장춘몽을 깨달은 양소유와 육관대사의 만남 장면을 그리고 있다. 언뜻 보면 양소유와 팔선녀의 만남을 비롯한 남녀 관계를 강조하여 기획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장춘몽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양소유와 팔선녀의 만남 장면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직 양소유와 팔선녀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육관대사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이다. 즉 양소유가 육관대사를 알아보고 꿈에서 깨어 불교에 귀의한 팔선녀와 함께 경문 강론을 듣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당시의 관람자에게 양소유가 육관대사를 만나기 직전의 클라이맥스로 장면을 마무리함으로써 긴장감을 유발하고, 이후에 이어지는 깨달음을 통한 교훈적 장면을 상상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 오히려 교훈적인 소설의 주제를 강조한다.

세밀한 필치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일품

특히 이 작품은 세밀한 필치가 돋보이는데 첫 번째 폭의 성진과 마지막 폭 육관대사 옷의 파선을 통한 누빔, 얼굴 수염과 짧은 머리의 고슬고슬한 표현, 그리고 일곱 번째 폭에서 꼬리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서 작가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또, 바위나 등장인물들의 옷 주름에 바림을 올려 명암을 드러낸 점과 배경이 되는 누각이나 휘장 안쪽 바닥의 격자무늬와 다리 난간 장식 등의 묘사에서도 작가의 세밀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낙유원 잔치 장면을 제외하면 매 폭마다 구름이 그려져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것은 양소유가 꿈속에서 또다시 꿈을 꾸면서 남해 태자와 결전을 벌이는 장면을 묘사한 여섯 번째 폭에서 극대화된다. 여기서는 하단의 잠을 자고 있는 양소유 머리에서 시작된 구름이 상단의 결전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관람자의 시선을 인도하면서 두 장면을 나누는 동시에 꿈속의 꿈이라는 복잡한 소설의 내용을 표현하는 장치로 이용되었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어렵게 다루어진 꿈속의 꿈이라는 복잡한 내용을 그림 한 폭에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상단 오른쪽의 잉어, 새우, 게 등을 재미있게 의인화한 표현도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필자는 얼마 전 아들을 출산했다. 늘 박물관에서 보던 작품이었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보는 <구운몽도>는 소설 『구운몽』을 쓸 당시 김만중과 그의 어머니 윤 씨 부인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지극한 효자였던 김만중이 한 때 승승장구하던 자신이 유배에 처한 현실을 마음 아파했을 어머니에게 현실의 기쁨도 슬픔도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소설이라는 선물에 담아 드리는 것보다 더 극진하게 어머니를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윤 씨 부인 또한 아들의 그런 마음이 담긴 소설을 받아 들고 몇 날 며칠을 읽고 또 읽으며 아들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새벽,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과 나를 이 만큼 정성으로 키우셨을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은 보는 이마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살아가는 철학, 사상, 믿음 등 배경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마련이지만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구운몽도>를 통해 독자들이 잠시나마 자식을, 그리고 어머니를 돌아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글 : 오슬기(한국민화뮤지엄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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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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