ê³ ë ¤ 공민왕과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 그림 – 한국의 위인 고사도

민화에서 다루어진 고사인물도는 대개 중국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었지만, 근대기 들어서는 한국 이야기도 등장하였다. 고려말 개혁정치를 단행했던 공민왕과 조선후기의 의로운 암행어사로 알려지게 된 박문수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보다는 전설에 입각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성황을 이루었던 대중적 역사소설과 이를 극화한 영화 등의 인기가 이러한 인물도를 등장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의 개혁군주 공민왕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1351-1374)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이었다. 어머니 명덕태후가 원나라 공주가 아닌 고려인이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에서 번번이 밀리자, 원나라 위왕魏王의 딸 노국대장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여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공민왕은 14세기 후반 국세가 기울어가는 원나라의 정세를 간파하고 고려를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나라로 세우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원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을 폈고 잃었던 고려의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국내적으로도 원나라 기황후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남용하던 기황후 일파와 이 외의 친원파 권문세족들을 제거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공민왕과 관련된 전설들

공민왕은 개혁군주로서의 긍정적 출발을 했지만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이어져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특히 1360년 2차 홍건적의 침입 때는 궁궐을 버리고 멀리 안동으로 몽진하는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공민왕이 안동에서 지낸 기간은 석 달 가량이었는데 이 지역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에 얽힌 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 중 하나는 공민왕 일행이 안동에 도착했을 때 안동 주민들이 크게 환대한 가운데 노국대장공주가 냇물을 건너려 하자 부녀자들이 나서서 허리를 굽히고 엎드려 등을 밟고 건너갈 수 있도록 인교人橋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놋다리밟기라는 민속놀이로 지금도 안동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공민왕과 관련된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는 것은 원나라의 세력을 물리치고 고려의 자주성을 찾고자 했던 공민왕의 개혁 드라이브가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민왕은 사후에는 무속에서 신으로 모셔졌는데, 그를 신격으로 모신 국신당國神堂이 안동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한 것도, 개혁 군주로서의 긍정적 이미지와 신하의 손에 비참하게 죽은 그의 비극적 죽음이 민중의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민왕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그림

전주역사박물관 소장의 고사인물도 병풍 중에는 공민왕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한 폭 포함되어 있어 주목된다(도1). 공민왕이 전각에 앉아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고 노국대장공주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화폭 상단에는 “고려 공민왕은 8월 15일 밤 밝은 달 아래에서 원나라 공주의 무용을 사랑한다(高麗恭愍王은 八月十五夜明月下에 元國公主 舞踊을 사랑한다).”라고 적혀 있다.
공민왕의 노국대장공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신돈이라는 승려를 가까이 하며 퇴폐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공민왕의 드라마틱한 생은 작가들의 창작열을 자극하여 역사 소설의 주제가 되었다. 김동인은 1935년 1월 중앙일보에 ‘낙왕성추야담落王城秋夜譚’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실었는데, 이는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잃고 그 충격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며 마침내 실성하여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이 소설은 1941년 ‘왕부의 낙조(王府의 落照)’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매일신보사). 또한 이광수는 1937년 5월 28일부터 조선일보에 ‘공민왕’이라는 제목의 역사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미완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지만 이 역시 노국대장공주 사후의 공민왕의 행적을 소설화한 것이었다. 이처럼 공민왕의 사랑과 비극적 결말이 대중적 소설로 널리 독서되면서 민화의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주역사박물관 소장의 고사인물도 병풍에는 공민왕 고사도 외에 태공조위도, 원포귀범, 이백의 시의도, 심청도, 상산사호도, 패왕별희도, 춘향도가 있다. 전통적으로 고사인물도 병풍을 구성한 강태공, 이백, 상산사호 등의 고사도와 함께 새로운 주제가 등장한 점이 눈에 띈다. 심청과 춘향, 공민왕 그림은 한국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이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구성이다. 춘향(도3)과 심청(도4)은 판소리로, 공민왕은 대중적 소설로 일제 강점기 이래 지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대중문화와 민화의 접목이라는 특징이 부각된다. 동아대박물관 소장의 또 다른 고사인물도 병풍에도 동일한 도상의 <공민왕> 그림이 있어 이에 대한 수요를 말해준다(도2).

전설적 암해어사 박문수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역사적 인물 중에 어사 박문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영조 연간의 실존 인물로 경상도 관찰사, 호조참판, 병조판서,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는데, 특히 4차례에 걸쳐 어사로 파견되었던 그의 행적이 후에 허구로 각색되면서 많은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를 낳았다. 그는 백성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기지로써 해결해주는 어진 위정자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전주역사박물관 소장의 고사인물도 병풍 중에는 박문수의 설화를 담은 그림이 있다(도5). 산길에 말을 달리며 길을 재촉하는 인물이 보이는데 멀리 산등성이에 해가 지고 있다. 이 그림은 박문수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낙조落照> 라는 제목의 시를 주제로 한 것이다. 화면 상단에 적힌 제시題詩인 ‘나루를 묻는 길손은 발길이 바쁘고問津行客鞭應急’는 이 시 중의 한 구절이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落照吐紅掛碧山 지는 해는 붉게 물들어 푸른 산에 걸려있고
寒鴉尺盡白雲間 차가운 하늘 갈가마귀 자로 잰듯 흰구름 사이로 날아가네.
問津行客鞭應急 나루를 묻는 길손은 발길이 바쁘고
尋寺歸僧杖不閒 절 찾아 가는 늙은 중의 지팡이 또한 쉼이 없네.
放牧園頭牛帶影 목장의 언덕위에는 소떼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望夫臺上妾低鬟 지아비 기다리는 아내는 자꾸만 쪽진 머리가 낮아지는데
蒼煙古木溪南里 깊은 마을 저녁 연기 피어 오르는 계곡 아랫 마을에
短髮樵童弄笛還 더벅머리 초동이 피리 불며 돌아오네.

이 시는 박문수가 과거보러 갈 때의 일화와 관련되어 있다. 길을 가는 도중에 그는 주막에서 잠을 잤는데, 꿈 속에 초립을 쓴 한 아이가 나타나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한양에 과거 보러 간다고 답했더니 아이는 ‘과거는 사흘 전에 끝났다’고 하였다. 박문수가 그럼 시제試題가 무엇이던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낙조’라 하면서 시를 줄줄 외는데 7연까지 외고 나머지는 잊었다고 하고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 한양에 도착한 박문수는 과거장에 들어갔는데 과연 시제는 ‘낙조’였다. 아이가 읊은 대로 7연까지 쓰고 마지막 연은 자신이 지어내니 장원급제하였다는 내용이다.
설화 중에서 박문수는 조선 팔도를 다니며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한을 풀어주기도 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기도 한다.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도 있는데 어린 아이나 귀신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그는 임금의 신임을 받고 음으로 움직이며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의의 사도이다. 그런데 백성의 고충을 기지로 해결해주는 어사 박문수의 이미지는 대략 일제 강점기에 형성되었고, 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소설 《박문수전》의 출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15년에 한성서관漢城書館과 유일서관唯一書館에서 《박문수전》 초판본을 간행하였고, 그 이야기는 1930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조선일보 1930년 10월 25일자 기사)

대중적 소설과 연행演行 그리고 민화의 접목

1930년대에 등장하여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신문연재소설, 그것을 토대로 한 영화의 제작과 상영은 민화의 주제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공민왕과 박문수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도는 기존에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었다. 대중문화와 접목된 민화, 우리의 위인을 주제로 한 고사도의 출현은 중국적이기만 했던 고사인물도의 판도를 바꾸어 진정한 한국적 고사인물도를 이루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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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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