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古宮 속 상징무늬 여행 ⑥ 문양이 있는 사색의 공간, 향원정과 집옥재

늘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경복궁에도 문화재 복원 정책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 2017년부터 복원·보수작업이 시작된 향원정香遠亭과 10월말까지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있는 집옥재集玉齋는
주변의 수목들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뽐낸다.
지난 시간에 이어 향원정과 집옥재에서 상서로운 문양을 찾아보며 고궁 속 상징무늬 여행을 마친다.


찬영이와 영국에서 온 제임스 일행은 경복궁 교태전과 자경전을 둘러보면서 길상무늬를 아름답게 꾸민 굴뚝의 조형미에 감탄했다.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더듬어볼 수 있었다. 그들은 향원정이 있는 아름다운 연못을 감상하기로 했다.
“교태전 후원後苑으로 꾸며진 아미산峨嵋山 뒤쪽에는 대왕대비(익종왕비), 왕대비(헌종왕비), 대비(철종왕비) 삼전이 거처하였던 많은 내전內殿이 있었어. 네모난 연못과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나중에 고종 임금이 건청궁乾淸宮을 지을 때 여기에 큰 연못을 파고 작은 섬을 만들어 정남쪽을 향해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정자를 세웠어. 섬을 건너는 구름다리를 취향교醉香橋라 하는데 임금님이 이 다리를 건너며 산책을 즐겼다고 해. 우리도 한번 건너가볼까?”
찬영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우는 오빠의 등을 떠밀며 다리를 건너가자고 졸랐다. 다같이 구름다리를 향해 걸음을 옮겨 바라본 연못에는 황금잉어들이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찬우는 신나서 소리쳤다.
“와, 잉어다! 우리 여기서 사진 찍자.”

연꽃 향기가 멀리 퍼지는 향원정

향원정香遠亭(보물 제1761호)은 오른쪽으로 인왕산이 학이 날개 핀 것처럼 펼쳐지고, 뒤로는 북악산이 병풍처럼 우뚝 서있다. 산자락을 배경으로 연못의 섬 한 가운데에 세워진 2층의 육모정(여섯 모가 난 집)이다. 밖에서 보면 2층집이지만 누마루 밑의 구조까지 합치면 3층집이 된다.
장대석 댓돌 위에 세워진 기둥 밖으로 난간인 교란交欄과 헌란軒欄이 육각으로 빙 둘러졌고, 육모지붕 꼭대기에 절병통(호로병 같은 장식 기와)을 얹어 웅건한 위풍과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본래 연못을 가로지르는 취향교醉香橋는 건청궁에서 건너갈 수 있도록 향원정 북쪽에 세워졌으나, 6·25전쟁 때 파괴된 뒤 1953년 남쪽에 다시 세워졌다.
이 다리는 난간 궁판에 능형(菱形: 마름모꼴이나 다이아몬드 꼴인 형태)의 풍혈이 장식되어있고, 다리 중간으로 갈수록 곡선을 이루어 오작교烏鵲橋를 연상시키는 것이 퍽 운치가 있다. 이전에는 동남쪽에 담장이 설치되어 기린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인유문麟遊門이란 일각문(一角門: 문짝을 하나만 있는 작은 중문)이 있었고, 남쪽에는 봉황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봉집문鳳集門이 있어서 향원정의 아늑한 정취가 한층 더했다고 한다.

집옥재 답도의 용두와 해태

찬영이 일행은 향원정을 뒤로하고 고종 임금의 서재였던 집옥재로 향했다. 경복궁 북쪽의 신무문神武門 안에 있는 집옥재는 왕의 서재書齋와 서고書庫를 갖추어 국왕이 학문을 탐구하던 곳이다. 집옥재 일원은 집옥재와 협길당, 팔우정 3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집옥재의 2층 행랑으로 통하는 팔각형 누각인 팔우정八隅亭에는 청대淸代에 간행된 도서가 소장되어 있었다. 찬우가 집옥재 앞에서 말했다.
“여기에도 해태가 있네. 엎드려있는 짐승은 뭐지? 용 같기도 하고.”
찬영이는 조각상에 대해 설명했다. “맞아, 이 해태도 광화문 앞에 있는 해태처럼 화재를 막기 위해 장식된 거야. 돌짐승은 용의 일종인데, 흔히 ‘이무기’라고도 하고 ‘미르’라고도 하지. 이무기는 전설상의 동물로, 용이 되려다 못되고 깊은 물속에 산다는 큰 구렁이야. 건물 계단 난간에 꾸며져 외부에서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한 돌짐승을 석리두石螭頭(또는 이무기돌)라고 불러. 이무기가 지키는 이곳은 수중에 있는 용궁에 비유된 것이지.”

집옥재集玉齋는 높은 기단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이다. 건물의 양쪽 벽은 중국 건축 양식을 따라 벽돌을 사용해 쌓았다. 집옥재 전면 돌층계 중앙에는 판석 모양의 답도踏道가 있는데, 쌍용이 가운데에 여의주를 두고 아래위로 감싸 돌고 있는 조각 무늬가 보인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근정문, 창덕궁 인정전의 답도에 봉황이 쌍으로 새겨져있는 것과 달리 쌍용이 새겨져있어 특별하다. 또한 궁판처럼 테두리를 두른 모양이라든가 조각 수법, 단면端面에 구름을 상징한 보상당초무늬와 화면 구도가 이색적이다. 집옥재 석계의 짐승머리 조각도 보통 해태로 표현된 것과 달리 용두龍頭처럼 표현되었으며, 좌우 소맷돌에는 엎드린 모양의 서수와 해태상이 조각되었다.

판벽의 봉황무늬와 창살

집옥재는 다른 전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의장意匠을 보여준다. 그중 한가지로 괴이한 용무늬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옛 동기銅器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서로운 짐승무늬로서 상상 속 짐승이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형체이다. 집옥재에 중국 고대 문양인 ‘기봉夔鳳무늬’와 ‘기룡夔龍무늬’가 많이 보이는 것은 건물이 지어질 당시 청나라의 건축 기술자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건물 전면의 툇간은 기둥만으로 이루어진 개방된 형식이다. 문짝은 분합(分閤: 대청 앞에 들이는 네 쪽으로 된 창살문)으로 달았는데 창살무늬가 다른 전각과 다르며, 양측면 인방(引防: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로재) 윗부분 판벽에
도드라진 봉황무늬가 다른 전각과 다르다. 문짝 아래 청판 윗부분에는 기룡무늬, 아랫부분에는 파련화波蓮華무늬와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우리나라 분합 창살무늬는 띠살무늬, 소슬빗살무늬, 넉살무늬가 일반적이고 꽃살무늬가 가장 화려한 편에 속한다. 집옥재의 창살무늬는 중앙에 사각형, 가장자리에 十자형 무늬를 두어 다른 문짝과 방구(方區: 네모 칸)를 이루도록 짜여진 이른바 만자卍字(혹은 완자)무늬를 꾸민 것이다. 이러한 창호를 아자교살창[亞字交窓]이라 부른다. 건물 내부의 통로 역할을 하는 장방長房 뒷벽에는 둥근 달 모양으로 꾸민 만월창滿月窓이 각 칸마다 설치되어 있다.

우물천장의 쌍용·쌍봉무늬

집옥재 대청 천장은 화려한 종다라니(단청에서 우물 반자의 반자틀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린 꽃무늬)로 꾸며진 우물천장이다. 우물천장 중앙에 귀접이 방식으로 팔각형의 보개천장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안에 쌍용雙龍무늬와 쌍봉雙鳳무늬가 단청채색으로 그려졌다. 우물반자의 사각형 모서리에는 구름무늬를 그리고, 중앙의 원곽圓廓 안에는 두 마리 기룡夔龍이 서로 맴도는 모양을 그려 놓았다.
기룡무늬는 예로부터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몽골,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궁궐건축, 가구, 기물 장식무늬로 흔히 쓰였으며, 왕가王家의 상징 문양이 되기도 했다. 중국 고대에 전하는 《용경龍經》에서는 “기룡은 뭇 용들의 우두머리로 먹고 마시는데 절도가 있으며, 혼탁한 땅에서는 노닐지 않고 마른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 이른바 맑은 데에서 마시고 맑은 데에서 노니는 것이다”라고 한다 .

팔우정의 태극팔괘무늬 보궁천장

팔우정八隅亭은 집옥재에 딸린 서고書庫이다. 팔우전 천장의 단청그림은 집옥재 대청과 마찬가지로 팔각형의 귀접이 천장으로 꾸며졌다. 천장은 건물의 팔각 구조에 따라 큰 팔각형 안에 우물반자를 넣고, 중앙에 다시 팔각형을 구성한 모양이다. 팔각형의 곽 안에는 팔괘八卦가 중심에 태극을 두고 배치되었다. 종다라니로 꾸민 우물반자에는 팔엽 중판 연화무늬가 단청되었다. 궁궐의 일반적인 우물반자 무늬와는 다른 특이한 사례이다. 태극무늬는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태극문 둘레에 자연계와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음양陰陽을 겹쳐서 여덟 가지 상象으로 나타낸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배열했다. 팔괘는 오른쪽 방향으로 건乾·손巽·곤坤·이離·태兌·간艮·진震·감坎 순으로 그려졌으며, 사이마다 불로초 같이 생긴 보운무늬를 배치하였다.
청나라 건축양식이 가미된 집옥재의 다양한 상징무늬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려 한 시대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고궁 속 문양을 눈여겨보는 동안 우리는 역사는 물론, 선조들이 전해준 삶의 지혜와 안목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그림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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