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古宮 속 상징무늬 여행 ⑤ 교태전과 자경전의 굴뚝

왕비의 침전으로 지어진 교태전은 1394년에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에는 없었으며 그 이후에 지어졌다. 임진왜란 등으로 거듭 소실된 것을 1888년에 다시 복구하였고, 1920년 일본인들이 불타 없어진 창덕궁 대조전을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헐어 부재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교태전 뒤뜰의 아미산 굴뚝만은 500년을 버티고 그대로 남아있어 우리에게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시간에 이어 교태전과 자경전에서 문양으로 역사를 되짚어본다.


찬영이 일행은 사정전을 둘러보고 ‘경회루慶會樓’로 향했다. 경회루는 태조太祖 임금이 지었다고 하는데 직사각형의 연못 안에 널따란 직사각형 대臺를 쌓아 2층 누각樓閣을 세웠다. 동쪽에 세 개의 문을 내어 누대樓臺로 건너가는 돌다리를 통하게 되어 있다. 경회루를 나와 왕이 잠자는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과 왕비의 중궁전中宮殿인 ‘교태전交泰殿’을 돌아 뒤뜰에 있는 그 유명한 아미산峨嵋山으로 향했다.

경복궁 아미산과 연가(굴뚝)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後苑으로 조성되었다. 경회루 연못을 판 흙을 쌓아 만든 인공의 산으로, 불교도의 영지靈地로 알려져 중국의 사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아미산의 이름을 상징적으로 붙였다. 2단씩 장대석 석축을 네 층으로 쌓고 그 위에 괴석의 돌 화분과 돌연못[石池] 등 석조물을 배치하였으며 주위에 화초들을 심었고, 이 남쪽에 육각형으로 만든 굴뚝 4기가 세워져 있다. 이 교태전 후원의 굴뚝은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제임스와 찬우가 굴뚝을 보고 마냥 신기해하자 찬영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굴뚝은 연가煙家라고 하는데, ‘연기 나는 집’이라는 뜻이야. 왕비가 잠자는 교태전 건물의 구들에서 연결되어 있어.
벽돌을 육각형으로 쌓고 목조건물의 형태를 따라한 기와지붕을 얹은 다음, 맨 윗부분에 점토로 만든 굴뚝을 만들었지.
굴뚝 벽에는 여러 색감의 질흙을 구워 다양한 무늬를 배열했어. 마치 나전칠기에 자개를 박아 무늬를 놓는 방법과도 비슷한 방법이지. 왕실 후원의 장식물이자 굴뚝으로서의 기능성도 겸비한 훌륭한 예술품이라 할 수 있지.”

경복궁 아미산 굴뚝에는 화강석 지대석(받침돌) 위에 벽돌을 30단 정도로 쌓고 육각의 각 면에는 4가지 무늬를 구성하였다. 제일 아래에는 벽사辟邪를 상징한 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 사각형의 벽돌을 끼웠고, 그 위에는 직사각형의 회벽灰壁 안에 십장생, 사군자, 완자卍字 무늬로 구성하였다. 그 위에 봉황과 학, 도깨비 등 도드라지게 새겨진 네모난 벽돌을 끼웠고, 맨 위에는 구름을 상징하는 당초무늬를 구성하여 꾸몄다.
굴뚝 각 면에는 해·산·물·구름 등 장생물과 더불어 자손만대가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포도덩굴, 연꽃, 물새 등 무늬로 구성됐다. 둘레에는 불가살이와 박쥐무늬, 장수를 뜻하는 인동단초무늬와 길상문자를 장식했다. 마치 나전칠기나 고려 상감청자처럼 상감象嵌 기법으로 표현한 소나무와 사슴, 괴석과 대나무, 매화와 달, 국화와 나비 등 무늬들은 대체로 나라의 행복과 안녕, 왕가의 만수무강과 부귀다남 등 길상의 의미로 동양화에서 즐겨 다루어진 소재들이다.

굴뚝에 새겨진 불가살이와 용

굴뚝에 새겨진 무늬를 하나씩 살펴보던 찬우가 손가락으로 아랫부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동물은 뭐지? 코끼리 같기도 하고.”
찬영이는 대답했다.
“그것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불가살이不可殺伊’라는 상상 속의 짐승인데, 민화에도 많이 등장해. 불가살이 그림은 개 그림으로 유명한 조선시대 궁중화가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이 그린 병풍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림과 함께 적힌 글에는 ‘곰의 몸통에 코끼리의 코, 무소(코뿔소)의 눈, 쇠톱 같은 이빨, 황소의 꼬리, 범의 다리를 가졌으며 온몸에는 바늘처럼 생긴 털이 나있다’고 되어있지. 불가살이는 인간 세상에서 역질(疫疾: 돌림병)을 쫓아내고 악귀를 물리친다고 해서, 해태처럼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동물인 것 같다고 덧붙였어. 굴뚝 위쪽에 비슷한 크기로 꾸며진 도깨비 무늬는 사실 용의 얼굴이야. 궁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

조선후기에 쓰인 것으로 추측되는 작자미상의 《불가살이전不可殺爾傳》이라는 한글소설에서는 고려 말 불교의 퇴폐로 인해 나라살림이 극도로 어지러울 때 쇠를 먹고 악몽과 사기邪氣를 쫓는다는 짐승인 불가살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어느 가난한 과부가 던져준 바늘을 주는 대로 집어먹고 몸집이 커진 불가살이는 온 나라를 다니며 병기兵器와 무기 등을 삼키고 산사의 쇠부처, 쇠종을 먹어 없앴다는 것이다. 이러한 짐승을 궁궐 안에 장식무늬로 나타낸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귀감으로 삼기 위함인 듯하다.

“궁궐의 화재를 막으려고 용의 얼굴을 만들어 놓는다니?”
찬우가 다시 묻자 찬영이가 말했다.
“용이란 짐승은 물의 신[河神]이야. 옛날에는 비가 오지 않거나 화재가 나서 물이 필요하면 용신에게 비는 풍속이 있었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것도 같은 이치야. 용은 구름을 몰고 나타나고, 구름이 모이면 비도 내리는 거지.
그래서 건물 용마루나 굴뚝에 용을 배치하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은 거야.”
찬영이의 설명을 듣고 모두가 감탄했다.

자경전의 꽃담과 십장생 연가

‘자경전慈慶殿’은 왕의 모친인 대비大妃가 거처하던 침전이다. 자경전 서쪽 뒤뜰에는 나지막한 꽃담(화초담)이 있는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담장의 한 면을 돌출시켜 굴뚝으로 고안했는데, 굴뚝 벽면 중앙에 십장생을 배치해 왕실 최고 여자 어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아미산을 둘러본 찬영이 일행은 오른쪽 협문을 통해 자경전에 이르렀다.
찬우가 꽃담의 무늬를 손으로 만져 보려 하자 찬영이는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만지면 안 돼. 잘못하면 훼손될 수 있거든. 이 담장은 십장생 무늬가 전면에 새겨져있어 보통 십장생 굴뚝이라고 불려.
십장생을 중심으로 박쥐, 해태, 불가살이 같은 여러 가지 벽사 무늬도 곁들여졌지. 아미산의 굴뚝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어. 이 무늬들은 각 모양대로 판 회벽에 다른 색의 흙을 구워 채워 넣은 거야. 이러한 기법은 분청사기의 조화문彫花紋 혹은 박지문剝地紋, 칠공예의 나전기법 등에서 착안한 것으로,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취향이 물씬 풍기는 민중미술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찬영이의 설명을 들은 제임스가 맞장구쳤다.
“정말 독특한데? 담장이면서 굴뚝으로도 사용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더해서 벽화의 역할도 했다니.
한국인의 선조들은 참 훌륭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것 같아.”

주황색 벽돌로 축조한 꽃담은 외벽에 꽃과 새, 길상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정교하게 꾸며졌다. 꽃담의 무늬 중 하나에는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 가지에는 둥근 보름달에 걸려 있고, 달 안에는 가지에 앉은 작은 참새가 있어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형문자는 장長·춘春·만萬·수壽·다多·손孫·부富·귀貴 등으로 오래도록 복을 누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문자도안 가운데 ‘春’자는 흰 회벽 바탕에 붉은 빛깔의 벽돌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십장생 굴뚝에는 영지靈芝를 입에 물고 학이 날고 있다. 천년수千年壽의 길조吉鳥가 불로초를 물었으니 익수益壽를 누리라는 뜻이 된다. 〔계속〕


글, 그림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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