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古宮 속 상징무늬 여행 ④ 근정전의 어좌와 일월오봉도

조선 건국의 기반을 다진 정도전은 《서경書經》을 인용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勤] 잘 다스려진다[政]’는 뜻에서 근정전勤政殿의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태종, 세종, 성종 등 역대 임금들이 근정전에서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지난 시간에 건물의 기단인 월대나 계단 주위에 조각해놓은 동물 신상들의 의미에 이어, 근정전의 건축과 어좌 뒤의 일월오봉도를 통해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한 상징물을 살펴본다.


이번엔 제임스가 물었다. “궁궐 지붕에 저런 조각상을 올려놓은 건 무슨 뜻이 있는 걸까?” 찬영이는 설명을 계속했다. “잡상은 악을 쫓고 상서로움을 부추기는 목적 외에도 왕의 위엄을 드높이고 왕실의 번영을 위해 지붕마루에 장식됐어. 보통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잡상이라고 부르지만, 13개까지 장식된 것도 있지.”

우리나라 건축물에 잡상이 장식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고 여겨지지만 실제 나타나는 것은 조선조 말엽, 즉 19세기 이후 것만 볼 수 있다. 중국과 다르게 우리나라의 사찰건축에는 잡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선 말기 궁궐건축에 실제 남아있는 예로서는 선인상仙人象(또는 당나라 때 서역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 삼장법사 현장玄奘의 조각상)이 없고, 손오공상이 가장 앞에 놓여 있다. 조선시대 《궁궐의궤宮闕儀軌》에도 잡상雜像이 기록되어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천장과 어좌

근정전의 추녀(목조건축물에서 처마와 처마가 만나는 부분에 걸치는 나무 부재)와 사래(蛇羅: 추녀 끝에 덧달아 겹처마를 이루는 나무 부재), 화려한 귀공포(栱包: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짜 맞추어 댄 나무 부재로, 장식의 기능도 겸한다)는 조선시대 말의 장식적 양식을 나타내며, 이러한 지붕 구조를 팔작지붕(팔작집)이라 한다. 아래층은 전체적으로 문으로 개방되어있고, 문 위에는 교창(交窓: 격자창)이 설치되었다. 창살은 세살로 빗살무늬를 섬세하게 짜서 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찬영이 일행은 근정전 안을 들여다보았다. 밖에서 볼 때는 2층 전각이었는데, 내부에서 보면 통층으로 위가 높게 트여있다. 건물 안쪽에서 본 고주(高柱: 높은 기둥)가 시원스럽게 솟았다. 이 굵고 긴 기둥이 한 나무로 되었다니 모두 신기해했다. 천장을 아름다운 소란반자(반자틀을 ‘井’자를 여러 개 모은 것처럼 소란을 맞추어 짜고, 그 구멍마다 네모진 개판蓋板 조각을 얹은 반자)로 짜고 화려하게 단청丹靑하여 임금의 권위를 과시하는 듯 했다. 아래위층이 구분되는 곳에는 어좌(御座: 궁궐의 편전과 정전의 중앙에 위치해 왕이 앉아 집무를 하는 좌석으로, 옥좌玉座라고도 불린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운궁雲宮을 꾸며 치장하였다. 찬우는 우람하고 높은 기둥들을 올려다보고 감탄을 연발하며 오빠에게 물었다. “그런데 운궁이 뭐야?”
찬영이는 대답했다. “운궁은 구름으로 둘려 싸인 천상세계의 궁전같이 꾸며졌다고 해서 생긴 명칭이야. 우리나라 건축에서 기둥 위를 장식하며 공포를 받치는 넓적하고 네모진 주두柱頭라는 것이 있는데, 주두 위에 중첩해 설치한 살미[山彌] 내부의 겹쳐진 부분을 운궁이라고 하지. 옛날 사람들은 임금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자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 궁전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

궁전 내부의 천장 중심부에는 보개寶蓋를 설치했다. 어좌의 장엄 장식물인 보개는 네모난 틀 안쪽에 다출목多出目의 작은 공포를 짜고 네 귀 모접이를 반복해서 뚜껑인 개판蓋板을 덮었다. 개판 밑에는 한 쌍의 용이 여의보주如意寶珠를 가운데 두고 광풍이 휘몰아치는 기세로 서로 희롱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조각했다. 용의 비늘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조각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어좌가 있는 보좌寶座는 연화대좌를 받침으로 한다. 대좌의 옆면을 3단의 궁판으로 나뉘어, 풍혈(風穴: 바람구멍)을 새기고 그 사이에 보상화문(연꽃의 변형으로, 2개의 팔메트(palmette) 잎을 합성하여 문양화한 상상의 꽃무늬)을 조각했다. 보좌의 정면과 양옆에는 보계寶階가 설치되어 있는데, 보계의 난간에는 부용꽃 넝쿨무늬를 투각透刻했다. 앞의 계단은 임금이 오르내리고 양옆의 것은 신하들이 사용한다. 보계에 오르면 중앙에 높직이 단이 있고, 임금이 좌정할 어좌와 어좌 위를 덮는 닫집이 있다. 닫집은 하늘을 상징하여 꾸며진 천장 덮개라 하여 천개天蓋라고도 한다. 어좌는 등걸이가 3절형으로 꺾어져 용머리의 의각猗角이 있고, 뒤에는 일월오봉도 병풍을 놓아 위엄을 갖추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제임스는 어좌 뒤편의 일월오봉도 병풍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좌 뒤에 저 그림은 뭐지?” 찬영이는 대답했다. “저 그림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라고 불리는데,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이 진채眞彩를 써서 치밀하고 화려하게 그렸어. 그림에는 겹겹이 펼쳐진 높은 산봉우리. 계곡 양쪽으로 굽이쳐 내리는 힘찬 폭포수, 산 아래 동심원을 이룬 물굽이와 거품을 일으키는 세찬 물결, 좌우 언덕에 우뚝 솟아 가지가 늘어진 우람한 소나무, 검푸른 하늘 양쪽에 떠있는 붉은 해와 하얀 달을 묘사했지. 해와 달은 각각 임금과 왕비를 상징하지만, 산수와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표상으로서 나라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마음도 담겨있다고 할 수 있어.”
찬영이는 덧붙여 설명했다. “우리 선조들이 숭상하던 산은 본래 삼신산三神山인데, 이 그림에서는 도교의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오봉산五峰山을 나타냈어. 오봉산은 신선이 산다는 중국의 전설적인 곤륜산을 상징해. 궁궐 장식그림인 일월오봉도는 우주 만물의 생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음양은 우주 만물의 이원二元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는데, 곧 해[日], 남성 등은 양이고, 달[月], 여성 등은 음이 되는 거야. 오행은 금(金: 쇠)·목(木: 나무)·수(水: 물)·화(火: 불)·토(土: 흙)로서 우주 만물을 형성하는 다섯 가지 원기元氣인데, 오행의 순환을 통해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 이치로 우주 만물을 지배한다고 하지.”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하늘이 뒤에서 임을 받드니
흥성하기 않음이 없으리다.
산과 같고 또 언덕과 같사오며
작은 언덕, 큰 언덕 같사옵니다.
넘실넘실 흐르는 강 같으며
나날이 느는 복은 한 없으시리.
달이 점점 차 가듯이
해가 차츰 드높이 솟아오르듯
남산의 수함이 영원함 같이
이지러지고 무너짐이 없으리다.
소나무 잣나무 무성하듯이
임의 자손 무궁하게 이어지리다.

한편, 일월오봉도와 비교해 우리 선조들의 장생사상과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 상징물을 그린 ‘십장생도十長生圖’가 있다.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바다 가운데 신선이 사는 해옥海玉이 발해渤海에 있다고 생각해 항상 동경했는데, 명나라 때 유기劉基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수산복해가壽山福海歌>에는 “오래 살기를 남산에 비기고, 복 받기를 동해와 같이 할지니”라는 구절이 있다. 동양 사상에서 산山과 수水는 장수를 상징하며, ‘수산복해壽山福海’는 오래 장수하고 바다같이 복을 많이 받기를 축원하는 말이다. 주로 생일을 축하할 때 쓰인다. 이렇게 옛 사람들은 천문을 숭배하고 산하를 신령스럽게 여겼으며, 아울러 길흉의 조짐을 중요시했다. 예를 들어 소나무 ‘송松’과 높을 ‘숭崇’은 발음이 같다고 하여 신령하게 여기는 식이었다. 원시신앙과 고대의 신선사상에서 유래된 십장생도의 열 가지 상징물은 장수를 기원하는 자연 숭배의 대상으로 시문·그림·조각 등에 이용됐다.〔계속〕


글, 그림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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